기적의 증거

어버이날, 예정에 없던 연차

by최다함


금요일 어버이날이다. 365일 밤낮으로 돌아가는 쿠팡 물류센터에 나간다. 주말이 일할 때도 있고, 주중에 놀 때도 있다. 원래 휴무일이 아닌 출근일이었는데. 연차를 썼다.


월요일 근무시간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2000년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려 평생 약 먹으며 산다. 약 타러 갈 때가 되기는 했는데. 그동안 병원에서 전화가 온 적은 없었다. 근무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점심시간에 전화를 했더니 통화 중이었고, 받지 않았다. 화요일은 어린이날이라 병원이 쉬었다. 휴무일인 수요일에 병원에 갔더니 긴급한 사정으로 진료 쉰다고 붙어 있었다. 약 탈 때가 지났다. 남은 약도 다 먹었다. 병원에 갈 수 있는 다음 휴무일은 다음 주 금요일이나 되어야 하는데. 금요일 회사에 차 끌고 출근해서 정시퇴근 하고 병원에 가려고. 목요일에 전화를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입원하셨다고. 처방전 줄 테니 선생님 안 계신 동안 다른 병원에 가서 약 타라고. 퇴근 후에만 시간이 되는데. 병원 문은 오전에만 연다고 했다. 남은 약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휴무일이 너무 멀어, 계획에 없던 연차를 썼다. 계약직이 된 지 1년이 되어 4월에 재계약을 하고 연차 15일이 들어왔다. 지난주 토요일 아들 요한이 데리고 논산 시골집에 가느라 연차 쓰고, 다음 주 교회에서 야유회 가느라 연차 쓰고, 벌써 연차 3일을 썼다.



휴무일에는 내가 요한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어버이날이라고 어린이집 마당 놀이터에서 카네이션 액자 증정식을 했다. 마당에 네컷사진 부스가 설치되어 있어 줄을 서 아들과 시진을 찍었다. 휴무일에는 내가 요한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어버이날이라 어린이집 마당 놀이터에서 카네이션 액자 증정식을 했다. 어린이집 마당에 네컷사진 부스를 가져도 놓았고, 오래 줄을 서 아들과 추억을 만들었다.


요한이를 데려다주고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 집은 수원이고 병원은 봉담인데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조금 돌지만 한 번에 병원 앞까지 간다. 2014년 가을에 조울증이 재발하여 병점의 입원병원에 입원했었다. 지금 선생님이 그때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때는 좋은 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딱 보아도 아파 보이신다. 인터넷 리뷰를 보면 최근 평도 좋지 않다. 이 선생님과 끝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이제 끝이 왔나 싶기도 했다. 이미 안정이 되어 지금 약 성분과 용량 그대로 먹으면 되기 때문에, 사실 큰 상관은 없다. 휴무일이 규칙적이지 않은데, 휴무일날 병원에 왔는데 문이 닫혀 있는 일이 앞으로도 있다면 곤란할 뿐이다.


집에서 가까운 수원역 병원에 갈까,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 갈까 고민이었다. 어차피 같은 약 먹는 거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 가자 싶었다. 갔더니 처방전이 있어도 초진에는 우울 불안 검사를 해야 하고 초진비가 5만 원이 든다고 했다. 요즘 많이들 그렇다. 다른 과는 X레이나 피검사하고 진단을 내리듯이, 요즘은 개인 정신과 클리닉도 심리검사를 필수로 하는 데가 많다. 그걸 이해 못 하는 환자도 있다. 나는 이해는 하는데, 나는 사실 그런 검사가 필요 없는 단계다. 수원시청역의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 갔다. 내 기억으로는 10년 도 더 전이었는데, 기록상으로 그 병원에 마지막 간 것이 2018년이었다.


지금 선생님 전에 그 병원에 다녔었다. 내 기호의 변화로 병원을 옮긴 것은 아니다. 조울증이 재발해서 입원을 했다. 입원 병원은 따로 있다. 지금 선생님이 그 병원의 페이닥터로 있었다. 선생님이 그 병원에 계신 동안에는 퇴원 후에도 외래 진료를 그 병원으로 다녔는데. 선생님이 병원을 떠나시면서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다시 입원을 했고. 그때는 지금 선생님은 그 병원에 안 계셔서 다른 선생님이 나를 보았는데. 원장 선생님이 나 주치의가 개원했다고 원하면 주소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같은 의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고. 어차피 입원하면 그 병원으로 가지만, 그 선생님이 아니면 외래는 거기로 가지 않으니까.


예전 다니던 병원에 갔다. 두 선생님이 서로 안다.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우호적이다. 지금 다니는 병원 선생님이 입원하셔서 왔다고 하니까 아프시냐고 놀라셨다. 거기 다니다, 입원병원 갔다가, 입원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개원하셔서 거기 갔다가, 대충 설명드렸다. 예전 선생님은 다른 약은 안 먹냐고 하셨다. 이것만 먹냐고 하셨다. 그 이후로 재발 안 했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선생님이 지금 약이 최소량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최소인가 하는 작은 의심은 있었다. 오늘 처방전을 보고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약이 작동하는 정말 최소량이었다. 지금 선생님이 약을 최소량으로 쓰는 분이라 최소량은 아니고, 시간의 변화 속에 나의 병세도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안정이 되었고, 약을 꾸준히 먹었고, 이일 저일 계속 내 삶을 살아왔다. 아들 요한이도 생겼다.


그때 먹던 약과 지금 먹는 약이 지금 나의 상태를 말한다. 예전 나를 알던 예전 선생님은 놀란다. 지금 선생님이 항상 내 병의 경과가 놀랄 만큼 좋다고 했고, 조울증 환자 중 0.1%라 라하셨지만, 얼마만큼은 동의가 되면서도 얼마만큼은 덕담이라 생각했다.


마흔여섯에 쿠팡 물류센터나 다니는 비루한 인생이지만. 사실 나로서는 지금도 기적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귀여운 아들이 생겼고, 조울증 재발하지 않고 별일 없이 산지 8년이 되었고,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돈 번다. 예전 먹던 약과 지금 먹는 약의 차이가 기적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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