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가 성공하는 슬롯보다 무서운 것
죽음을 이야기하는 통화에서도, 회사는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2026년 10월 영국의 협동조합 계열 법률서비스 회사 코옵(Co-op)을 둘러싼 보도를 읽다가 한참 화면을 들여다봤다.
누군가는 막 세상을 떠난 가족의 상속과 유언을 상담한다.
상담원은 그 말을 듣는다.
AI는 통화를 녹음·분석해 50개가 넘는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다.
회사는 고객에게 한결같은 공감과 전문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직원은 자신의 모든 말이 감시당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서늘했던 것은 기술력이 아니다.
공감마저 감시와 평가의 대상이 된 풍경이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과 위로했음을 입증하는 일은 다르다.
1911년 프레더릭 테일러는 초시계로 노동을 쪼개 효율을 측정하려 했다.
한 세기 뒤 우리는 사람의 몸짓을 넘어 목소리와 배려까지 수치화한다.
측정이 정교해졌다고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깊어진 것은 아니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왜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태도가 능력처럼 포장될까.
회의실에서는 해고를 '인력 최적화'라고 부른다.
고객의 항의는 '이탈률'이 되고, 지친 직원의 표정은 '관리 지표'가 된다.
문제는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고통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순간이다.
그때 가장 유리한 사람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일 수 있다.
흔히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말부터 조심해야 한다.
'소시오패스'는 정식 의학 진단명이 아니며, 무례하거나 냉정한 사람을 함부로 정신질환자로 부르는 일은 부정확하다.
비판하려는 것은 누군가의 병명이 아니다.
바카라임은 피하면서 성과만 독점하고, 사람을 도구처럼 다뤄도 박수받는 행동의 경제학이다.
실제로 조직심리학자 랜데이 등의 2019년 메타분석은 92개 독립 표본을 종합해 정신병질적 성향이 리더로 떠오르는 현상과 약한 양의 관련성이 있지만, 리더십 효과성과는 약한 음의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올라가는 능력과 잘 이끄는 능력은 같지 않았다.
그 둘을 자주 혼동한다.
2026년 발표된 또 다른 메타분석은 39개 연구, 3만 2909명의 데이터를 종합해 학대적 리더십이 직원의 안녕과 직무성과, 조직몰입에 부정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고했다. 부하를 몰아붙이는 힘은 지도력과 다르다.
AI는 이 혼동을 발명하지 않았다.
증폭할 수 있다.
예전의 냉혹한 관리자는 팀원 열 명의 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이제는 대시보드 하나로 수백 명의 빨간 숫자를 볼 수 있다.
'왜 빨간색이지?'를 묻는 상사와 '빨간색을 지워'를 명령하는 상사에게 똑같은 기술이 주어졌다.
결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5년 조사에서는 리더의 33%가 향후 12~18개월 동안 AI를 활용한 인원 감축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78%는 AI 관련 신규 직무 채용을 검토했다.
숫자 자체는 선악을 판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줄이고 누구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인지, 그 선택을 인간이 한다.
국제노동기구는 2026년 AI 기반 감시와 업무 강도 증가, 자율성 감소가 노동자의 정신·슬롯적 안녕에 위험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술의 문제를 말하지만 결국 권력의 문제로 돌아온다.
데이터는 사정을 모두 말해주지 않는다.
누가 그 숫자를 해석하고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온라인 게임의 품격을 결정한다.
공감은 무조건 봐주자는 말이 아니다.
성과가 낮은 사람에게도 정확한 피드백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적을 묻기 전에 조건을 확인하는 일, 자동 평가에 이의신청할 길을 남기는 일, 단기 매출만큼 동료의 이탈과 고객의 피해를 측정하는 일은 충분히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인 경영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소시오패스 몇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까지 살아남기 위해 무감각한 척 연기하게 되는 세상이다.
타인의 아픔을 알아차린 순간 뒤처진다는 믿음이 퍼지면, 그 슬롯는 이미 위험한 보상체계를 갖춘 셈이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계산하는 시대다.
인간이 끝까지 바카라임져야 할 것은 계산에서 지워진 사람의 얼굴이다.
냉정함을 능력이라고 부르는 승진 제도를 언제까지 정상이라고 여길 것인가.
기계가 배워야 할 것은 공감의 문장이다.
그러나 인간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공감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