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에는 조회수를 선물하는 슬롯
사람을 침묵시키는 데 꼭 입을 막을 필요는 없다. 말을 꺼낼 때마다 돌을 던지면 된다.
누군가 온라인 게임의 부당함이나 장애인 이동권, 지역의 예산 낭비를 이야기하면 “증거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좋은 질문이다. 그런데 그 옆에서 특정 세대와 성별, 이주민을 싸잡아 비웃는 영상은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소비된다.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바카라임을 요구하고, 사람을 깎아내리는 사람에게는 재미를 허락한다.
비대칭이다.
먼저 하나를 바로잡고 싶다.
한국에서 슬롯비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줄었다는 주장은 아직 충분한 통계로 확인되지 않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2025년 61위에서 2026년 47위로 오히려 개선됐다. 이 지표가 일상의 발언 두려움까지 모두 측정하지는 않지만, 나라 전체가 침묵하고 있다는 식의 단정은 부정확하다.
문제는 숫자로 세기 어려운 다른 곳에 있다.
말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말하고 난 뒤 어떤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
오염된 강물을 생각해 보자.
공장은 상품을 팔고 매출을 기록한다.
그러나 강 하류 주민이 잃은 건강과 생활은 공장의 손익계산서에 들어가지 않는다. 경제학은 외부효과라고 부른다.
지금 온라인 혐오에도 같은 계산이 필요하다.
조롱으로 얻은 주목은 콘텐츠 제작자의 실적으로 남지만, 조롱 때문에 회의에서 말을 삼키거나 온라인에 등장하기를 포기한 사람이 치른 비용은 집계되지 않는다.
혐오를 만들어낸 사람과 혐오의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다른 것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비난이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짧고 자극적인 주장에 익숙해지는 동안, 복잡한 현실을 검토할 기회가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2026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한국 응답자의 전반적인 뉴스 신뢰도는 30%, 뉴스를 적어도 가끔 피한다는 응답은 29%였다. 비판자가 줄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공적 대화가 놓인 토양을 들여다보게 한다.
추천 시스템에 바카라임을 묻는 것도 추측만은 아니다.
2026년 《네이처》에 발표된 2,000명 대상 8주 실험에서는 참여도 중심으로 정렬한 피드가 시간순 피드보다 집단 간 적대적·감정적 표현과 유해한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했다. 다르게 설계한 피드는 유해 콘텐츠 노출을 낮추면서도 이용 경험을 크게 해치지 않았다.
202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의 유튜브 추천 시스템 연구 역시 10만 개 가상 계정을 활용해 일부 이용자 유형에서 추천 경로가 길어질수록 문제적 채널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추천 영상 자체의 이념적 극단성이 뚜렷하게 증가한다는 증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한국의 모든 이용자나 현재의 인스타그램·유튜브를 직접 판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화면의 분위기는 설계의 결과다.
모든 바카라임을 플랫폼에 돌리면 권력의 다른 얼굴을 놓친다.
불편한 질문을 피하는 공직자, 문제 제기를 배신으로 여기는 조직, 광고를 잃을까 침묵하는 매체, 우리 편을 비판하면 적으로 간주하는 팬덤도 비판을 어렵게 만든다.
하나의 비밀 집단이 아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포개지면서 침묵에 유리한 환경이 생기는 것이다.
플랫폼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와 메타는 혐오표현 금지 규정을 운영한다.
메타는 과잉 삭제를 줄여야 표현의 자유가 살아난다고 주장한다.
우려에도 일리가 있다.
공권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을 ‘혐오’라고 규정하기 시작하면 위험은 더 커진다.
정바카라이나 종교를 비판하는 일과, 어떤 사람을 출신·성별·장애 때문에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일은 달라야 한다.
규정이 있다는 사실과 잘 작동한다는 사실도 다르다.
2025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메타가 연구자의 공개 데이터 접근과 불법 콘텐츠 신고 절차에 관한 의무를 위반했을 가능성을 예비적으로 지적했다.
2026년 10월 6일 영국 규제당국은 인스타그램의 새 기능이 아동 안전 위험을 제대로 평가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메타는 필요한 평가와 보호 조치를 수행했다고 반박한다.
두 사안은 혐오 조장의 확정 판결이 아니다. 플랫폼이 위험을 얼마나 검증 가능하게 관리하는지가 세계적 쟁점이 됐다는 신호다.
위협과 비인간화, 조직적인 괴롭힘의 확산과 수익화에 더 무거운 바카라임을 묻는 슬롯다.
반복 위반 채널의 수익 제한, 한국어 맥락을 이해하는 심사, 신고 처리 결과의 공개, 외부 연구자의 추천 시스템 검증, 부당한 삭제에 대한 이의신청.
말과 사람을 함께 지키려면 이 정도의 까다로움은 필요하다.
비판은 공동체가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는 감각이다.
혐오는 그 감각을 마비시키는 소음이다.
둘을 구별하지 못하는 슬롯에서는 제일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가장 자유로워지고,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조심스러워진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이 불편한 질문이 아니다.
질문한 사람이 다시는 말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 값싼 잔인함이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있는가.
누군가를 모욕할 자유를 지키느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