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과 인플루언서가 무지를 상품으로 만드는 시대
세상에서 가장 값싼 것은 의견이고, 가장 비싼 것은 의심이다.
누군가 카메라 앞에서 “이게 정답입니다”라고 말한다.
근거는 없다.
그러나 얼굴은 반듯하고 조명은 훌륭하다.
댓글에는 “역시 배운 사람”이라는 찬사가 달린다.
말이 옳아서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유명해서 말이 옳아진다.
순서가 뒤집힌 시대를 불편하게 바라본다.
과거에도 허풍쟁이는 있었다.
장터의 약장수는 만병통치약을 팔았고, 황색신문은 공포를 팔았다.
하지만 오늘날 약장수는 주머니 속에 살면서 아침마다 우리를 깨운다.
간판은 팔로워 수이고, 증명서는 조회수다.
인스타그램은 이 장사를 세계 규모로 키웠다.
유네스코가 2024년 45개국 콘텐츠 창작자 500명을 조사했더니, 62%가 정보를 공유하기 전에 체계적으로 사실을 검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42%는 좋아요와 공유 수를 신뢰도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이쯤 되면 농담이 아니다. 박수 소리가 논문을 대신하는 것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48개 조사 시장 평균 응답자의 54%가 소셜미디어·영상 플랫폼에서 뉴스를 접한다.
릴스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입구다.
이제 전문가가 반박해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20년 연구한 사람의 조심스러운 설명은 지루하고, 방금 검색한 사람의 단호한 결론은 통쾌하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보다 “절대 하지 마세요”가 잘 팔린다.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 없어 보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확신을 팔면 카리스마가 된다.
누가 이런 시장을 만들었을까.
인플루언서만 욕하면 절반만 본 셈이다.
그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광고주가 있고, 관심을 광고로 환전하는 플랫폼이 있고, 스스로 생각할 피로를 남에게 맡긴 우리도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2024년 주요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과 광고 중심의 수익 구조를 비판했다.
플랫폼이 파는 것은 우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단서다.
물건을 팔 때도 기묘하다.
“내돈내산”이라는 말은 인격 보증서처럼 쓰인다.
화면 속 인물이 먹는 것을 먹고, 입는 것을 입고, 그가 말하는 성공의 모양을 빌린다.
그사이 취향은 추격이 된다.
남의 하이라이트를 내 비하인드와 비교하다 보면 평범한 하루조차 실패처럼 느껴진다.
모두에게 같은 일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26년 발표된 20개 연구의 메타분석에서도 문제적 소셜미디어 사용과 슬롯적 비교의 관련성은 크지 않았고,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랐다.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선 청소년의 48%가 소셜미디어가 또래에게 대체로 해롭다고 보면서, 자신에게 해롭다는 응답은 14%였다.
남에게는 위험하지만 나는 괜찮다는 믿음.
가장 강력한 필터다.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내던지는 일이 답일까.
아니다.
2025년 학술지 《Nature Human Behaviour》의 실험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참여자 3,395명에게 믿을 만한 뉴스 계정을 팔로우하게 했더니 시사 지식과 참·거짓을 가리는 능력이 높아졌다.
같은 화면이 사람을 얕게도, 깊게도 만든다.
문제는 무엇을 보상하고 무엇을 습관으로 만드는가에 있다.
전문지식을 쉽게 설명하고, 가려진 사람을 세상에 소개하며, 기존 언론이 외면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인기가 전문성으로 둔갑하는 순간에는 가차 없이 따져 묻고 싶다.
당신이 잘 아는 것과 잘 팔리는 것은 같은가.
그 주장을 검증한 사람이 있는가.
광고라는 사실을 독자가 알아도 똑같이 믿겠는가.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거창한 지능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용기, 공유 버튼을 누르기 전 원문을 여는 수고,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도 반론을 허락하는 태도다.
플랫폼에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왜 사실을 확인한 사람보다 사람을 오래 붙잡은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얻는가.
생각하기 전에 반응하고, 알아보기 전에 믿으며, 판단하기 전에 구매하도록 유혹하는 시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시대의 가장 무서운 장면은 바보가 마이크를 잡은 광경이 아니다.
마이크 앞에 선 우리 모두가, 질문하기를 그만둔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