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논란, 총알보다 먼저 사라진 이름

52년 전의 죽음이 오늘의 정치가 되는 방식

byDataSopher

그날 국립극장에서 죽은 사람은 두 명이었다.

52년이 지나 다시 시작된 논쟁에서 한 사람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부서진 기억 속의 빈 의자.png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문세광의 총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또 한 사람이 있었다.


합창단원으로 참석했던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 2학년 장봉화.

열일곱 살이었다.

당시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경호원의 대응 사격에 희생됐다.


대통령도 아니고 영부인도 아닌 학생.

국가의 권력을 가지지도, 그 권력에 도전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늘날의 논쟁은 누구의 총알이 누구를 죽였는가보다 누구의 정치적 신념이 승리하는가에 더 관심을 쏟는 듯하다.


지난 9월 23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1974년 사건을 추적하는 극영화다.

작품에는 박정희 정권이나 중앙정보부가 사건의 배후에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설정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과 창작의 자유라는 반론이 충돌했다.


공식 수사 결과는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육영수 여사를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김영수 전 검사 역시 올해 10월 인터뷰에서 사건의 배후를 둘러싼 음모론을 반박했다.


그렇다고 당시 수사의 모든 판단이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국 수사당국은 북한과 조총련의 배후를 주장했지만, 일본 측은 그 배후를 입증할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 차이는 살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수사 결론에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이 곧 정권의 자작극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 논란에서 가장 위험하게 혼동되는 두 가지 명제가 있다.


'그 사건으로 누가 정치적 이익을 얻었는가.'

'그 사건을 누가 기획했는가.'


비슷하게 들리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피격 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유신체제를 공고히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사건의 정치적 수혜자가 곧 사건의 설계자라는 추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결과는 동기의 단서가 될 수 있어도 범행의 증거를 대신할 수 없다.


공식 기록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기록을 조사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금지해서도 안 된다.


역사적 질문은 허용돼야 한다.

역사적 주장은 증거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이번 논란의 첫 번째 본질이다.


두 번째는 더 불편하다.

영화는 법정의 판결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관객의 머릿속에서 언제나 허구로만 남는 것도 아니다.


2003년 엘리자베스 마시와 동료 연구자들이 발표한 실험 연구는 사람들이 허구의 이야기에서 접한 잘못된 정보까지 일반적인 사실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영화가 던진 가설을 관객이 역사적 사실로 기억할 가능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창작의 자유와 사실에 대한 바카라임은 서로를 없애야 하는 적이 아니다.

함께 논의해야 할 가치다.


토론 대신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냈다.


국민의힘 의원 109명은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암살자(들)>의 개막작 상영 철회를 요구했다. 영화제는 극적 재구성이라는 작품의 성격을 인정하며 상영 방침을 유지했다.


국내에서는 출연 배우 유해진의 집 앞에서 상영 중단을 요구하는 집회까지 열렸다.


작품에 대한 비판이 실제 인물의 사생활을 겨냥하는 일로 번진 것이다.


10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전국 17개 학교에서 영화를 단체 관람했거나 추진했고, 그중 6곳은 계획을 취소했다.

역사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학교의 교육적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영화를 보여주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당시 수사 기록과 영화의 가상 설정을 함께 비교하도록 하면 어떨까.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입증되지 않은 가설인지, 어떤 주장이 어떤 자료에 근거하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학생의 관람 선택권도 존중하면서 말이다.


다음 세대가 비판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논쟁적인 문제를 마주할 기회는 쉽게 빼앗으려 한다.

교육에는 바카라임이 따른다.

그렇기에 금지와 방임 사이에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있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1967년 「진실과 정치」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일이 정치적 자유의 토대임을 논했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지적은 유효하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과 역사 해석을 놓고 얼마든지 다툴 수 있다.

그러나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질문을 지워버리거나, 마음에 드는 가설이라는 이유로 증명의 부담을 면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이기 때문이다.


다시 장봉화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는 누구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죽은 사람이 아니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 역시 어떤 진영의 승패로 소비될 수 없는 비극이다.


정치적 바카라임을 밝히는 일과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일은 모두 필요하다.

사람의 죽음을 정쟁의 재료로 삼을 때 죽음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다.


국가가 지키지 못한 사람을, 국가는 어떻게 기억하고 바카라임지는가.

누가 영화를 이기고 누가 정치적 논쟁에서 이겼는지는 언젠가 잊힐 것이다.


그날 합창하러 갔던 열일곱 살 학생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52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그 이름을 낯설어하는 이유는 오래 물어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더 크게 부르는 일이 아니다.

그 시대에 가장 작은 목소리로 남은 사람의 이름까지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다.


이번 영화가 우리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누구를 기억하기로 선택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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