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81년이 지나도 청산은 끝나지 않았다
1945년 우리는 해방됐지만, 1949년에는 친일파를 조사하던 사람들이 경찰에 끌려갔다.
1949년 6월 6일.
대한민국 경찰이 총을 들고 들이닥친 곳은 일본군 주둔지가 아니었다.
친일파를 조사하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이었다.
경찰은 조사 요원 35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조사하던 사람이 체포되고 조사받던 사람은 보호받는 기막힌 광경이 벌어졌다.
광복한 지 4년, 정부가 수립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설명하는 수많은 문장보다 이 사건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식민통치는 끝났는데, 식민통치에 협력했던 권력과의 결별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1948년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했다.
이듬해 반민특위는 친일 경찰, 관료, 기업인, 지식인 등을 조사했다.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경찰 노덕술도 체포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경력이 있었지만 해방 이후에도 경찰 간부로 일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정부가 처한 현실도 살펴야 한다.
분단이 굳어지고 좌우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행정과 치안을 유지할 인력이 필요했다. 기존 관료와 경찰 조직을 활용하는 선택에는 이러한 현실적 계산이 작용했다.
그러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와 과거의 가해 바카라임을 묻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경계가 무너졌다.
반민특위는 1949년 경찰의 습격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사실상 기능을 잃었고, 1951년 반민족행위처벌법마저 폐지됐다.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과 친일파를 청산하려던 제도가 무너진 것 중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였을까.
전자는 사람에 관한 문제다.
후자는 국가가 어떤 행동을 용납하고 어떤 바카라임을 끝까지 추궁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국가의 제도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슬롯의 규칙을 만든다.
친일 문제를 과거의 인물 명단으로만 이해해서는 부족한 이유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4부 25권에 걸친 보고서를 발간했다. 천 명이 넘는 조사 대상자의 행적을 기록했다.
해방 이후 60년 넘게 흐른 뒤에야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역사 조사 결과가 정리된 셈이다.
역사는 또 한 번 놀라운 장면을 보여준다.
2026년 6월 2일, 대한민국은 친일재산 조사위원회를 다시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특별법을 제정했다.
시행일은 같은 해 12월 3일이다.
2010년 기존 재산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끝난 이후 조사 기능의 공백을 메우고, 친일재산뿐 아니라 일정한 경우 그 처분 대가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한 것이다.
81년 전의 문제가 아직 재산권이라는 형태로 법률 속에 살아 있다.
역사 교과서에서 친일 청산은 과거형 문장이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친일재산 환수는 현재 진행 중인 제도적 과제다.
역사는 박물관에 보관되지만, 역사가 만들어낸 이해관계는 등기부와 법률 속에도 남는다.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늘의 개인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혈통은 범죄의 증거가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죄를 상속받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모든 생존 활동을 똑같은 친일 행위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강요된 협력, 생계를 위한 순응, 식민통치를 위한 적극적 가담과 독립운동가 탄압은 구별해야 한다.
친일 청산에는 역사적 사실과 법적 증명이 필요하다.
선의로 재산을 취득한 제3자의 권리 역시 보호해야 한다.
이 원칙을 무시하는 순간 청산은 정의를 구현하기보다 또 다른 부당함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후손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 과거에 형성된 부당한 재산의 기원까지 묻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개인의 바카라임과 재산의 형성 과정이다.
친일 청산의 본질이 드러난다.
친일 청산은 일본을 얼마나 미워하는가를 측정하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스스로 정한 법과 원칙을 과거의 권력자에게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또한 해방 이후 친일 청산에 실패했다고 해서 대한민국 전체를 친일파의 나라로 단정할 수도 없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 반민특위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 뒤늦게 기록을 찾아낸 연구자들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다.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역사의 주인공마저 사라진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이해하고 싶다.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 있었고, 식민통치에 협력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해방 이후 그 바카라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놓고 오랫동안 충돌해 온 나라.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둘러싼 분노를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록을 공개하고, 사실을 검증하고, 필요한 재산 환수를 법에 따라 진행하며, 잘못된 역사 인식에 근거로 대응하는 일이다.
애국심이란 국기를 얼마나 높이 흔드는가보다 국가의 잘못된 과거를 얼마나 정확하게 마주할 수 있는가에서도 드러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이 영원히 친일파의 나라라는 결론을 원하지 않는다.
청산이 끝났다고 쉽게 말하는 나라를 원하지도 않는다.
해방은 외부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의 바카라임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로 남았다.
81년이 지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누가 더 애국자인가가 아니다.
과거의 잘못을 기록하는 데서 멈출 것인가, 잘못이 남긴 문제까지 법과 증거로 바로잡을 것인가.
그 기준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