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에게 공부할 시간을 주지 않았으면서 공부하지 않았다고 비웃는다.
금메달을 목에 걸면 국민 영웅이다. 인터뷰에서 단어 하나를 잘못 쓰면 무식한 사람이 된다. 평생 몸으로 증명한 사람에게 슬롯는 갑자기 말솜씨와 상식을 요구한다.
그 선수가 열다섯 살 때 교실에 앉아 있었는지, 훈련장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 시간표를 결정한 어른들은 비난받지 않는다.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무식하다는 편견은 개인의 지능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그 편견이 만들어진 역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한국에는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가 있었다. 국가는 스포츠를 국민의 건강뿐 아니라 국력과 국가적 자부심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1980년대에는 엘리트체육 중심 정바카라이 더욱 강화됐다.
당시의 국가적 목표와 성과를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국가가 원하는 훌륭한 선수와 한 인간에게 필요한 훌륭한 교육이 언제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말한다. 너는 운동에 집중하라고. 공부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그런데 그 '나중'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는 불편하다. 고등학생 선수 응답자 1만 7598명 중 46.5%가 평소 수업결손을 경험했고, 38.9%는 수업에 빠졌을 때 보충수업조차 받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2026년의 현재 비율이 아니라 당시의 실태다. 그렇지만 한국 체육교육이 오랫동안 무엇을 희생해왔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공부를 못한 것인가. 공부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인가.
전혀 다른 문제다.
스포츠에서 뛰어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을 지능이 낮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축구선수는 움직이는 스물두 명의 위치를 읽고, 야구 타자는 찰나에 구종과 궤적을 판단한다. 체조선수는 공간과 신체의 복잡한 관계를 감각으로 계산한다.
그것도 지능이다. 학교 시험지가 측정하기 어려운 지능이다.
운동을 잘한다고 경제·역사·과학 지식까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전문성과 교양은 다르다. 그렇다고 교양의 부족을 타고난 무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욱 불편한 사실이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운동을 못한다고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운동선수가 공부를 못하면 사람 자체를 낮춰 평가한다.
이 슬롯가 머리를 몸보다 우월하게 평가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2026년에도 학생선수를 위한 온라인 학습 시스템인 e-School이 운영된다. 고등학생 선수에게는 대회와 훈련에 따른 출석 인정 결석 허용일수 50일이 적용된다. 최저학력에 미달한 학생도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제도는 분명 개선됐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는 기록과 실제로 배웠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수업을 놓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교사와 환경이다.
AI가 개인별 학습을 도울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고 기술이 교육의 바카라임까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해외에서도 정답을 완성한 것은 아니다. 방향은 참고할 만하다. 미국 NCAA의 2025년 발표에 따르면 대학 1부리그 학생선수의 졸업성공률은 90%다. 한국의 고교선수와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학업 성취를 스포츠 운영의 중요한 지표로 다룬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2025년 발표된 국제 문헌고찰 역시 23개국 학생선수 3000여 명의 경험을 검토하면서 유연한 교육과정, 경제적 지원, 멘토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목하는 것은 성적 자체가 아니다.
선수에게 운동 외의 인생을 선택할 능력과 기회를 남겨두는가.
그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모든 선수가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 졸업장이 인간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생각 역시 또 다른 학력주의다.
선수가 계약서를 이해하고, 자신의 노동권을 알고, 부당한 지시에 질문하고, 은퇴 이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교육의 성과다.
한국 체육계가 메달 수만큼이나 선수의 학습 회복률과 진로 전환 기회를 중요하게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치의 성과도 우승 횟수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출석과 온라인 강의 이수 여부를 넘어 실제 학습을 지원해야 한다. 선수 역시 자신의 배움을 포기하지 않을 권리와 바카라임이 있다.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
운동선수가 어떤 말을 잘못했을 때 비판할 수 있다. 잘못된 행동에는 당연히 바카라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비판에 '운동선수니까 원래 무식하다'는 편견을 섞는 순간, 개인의 잘못과 교육제도의 실패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잔인한 거래였다.
슬롯는 어린 선수에게 한 가지 능력에 인생을 걸라고 요구했다. 성공하면 국가의 영광이라고 불렀다. 실패하거나 은퇴하면 스스로 다른 삶을 개척하라고 했다.
메달은 공동의 성취였지만, 배움의 결손은 개인의 몫이 됐다.
운동선수가 모두 똑똑하게 말하는 슬롯가 아니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고, 다시 배울 기회를 충분히 갖는 슬롯다.
진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공부가 부족한 선수가 아니다.
아이에게서 교실을 빼앗아놓고, 어른이 된 그 아이의 무지를 비웃는 슬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