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하라주쿠 팝업 이야기
현직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며 매주 마케팅 뉴스레터를 챙겨 읽습니다. 읽고 흘려보내는 대신, 실무자 시선으로 곱씹어보고 기록합니다.
무신사가 도쿄 하라주쿠에서 연 팝업스토어에 대한 뉴스레터를 읽었다. 오프라인 매장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던 피팅룸을 아예 없애고, 매장을 쇼룸으로만 구성했다는 게 제일 눈에 띄었다. 만져볼 수는 있지만 입어볼 수는 없고, 현장 구매도 안 되고, QR코드를 찍어 온라인으로 주문해야 한다는 것. 보통이면 불편함으로 느껴질 이 설계까 오히려 더 나은 경험으로 이어졌다는 게 이번 사례의 핵심이었다.
피팅을 못 하게 막은 대신 생긴 일들이 흥미로웠다. 피팅 대기줄이 없어지니 방문객들은 더 자유로운 동선으로 매장을 둘러볼 수 있었고, 현장 인력도 재고 관리나 피팅 대응 대신 고객 응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따. 공간도 피팅룸 없이 더 많은 브랜드와 상품을 보여주는 데 쓸 수 있었고. 하나의 편의를 없애자, 그 자리에 다른 가치(더 넓은 동선, 더 많은 상품, 더 나은 응대)가 들어선 셈이다.
QR코드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QR을 찍고 휴대폰으로 상품을 확인하는 모습은 필자도 처음 봤다고 한다. 결국 제약을 주니까 오히려 그 제약을 메우기 위한 행동(QR 찍기, 온라인 스토어 접속, 앱 가입)이 자연스럽게 유도된 거다. 편리하게 다 해줬으면 안 했을 행동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하게 만든 셈이다.
이 사례를 곱씹어보면, 사람들이 진짜로 '불편함' 자체를 사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여백을 사는 거다. 시착이라는 편의를 걷어내니 그 자리에 더 넓은 공간, 더 많은 브랜드 경험, 요아정 같은 F&B 콜라보, 인플루언서 콜라보 에디션 같은 다른 콘텐츠가 채워질 자리가 생겼다. 열흘간 3만 명 넘게 방문했다는 숫자도, 결국 사람들이 시착을 못 해서 온 게 아니라 그 여백에 채워진 다른 경험들 때문에 머물렀다는 뜻일 거다.
무신사가 이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명확했다. 일본은 오프라인에서의 첫인상과 신뢰가 온라인 구매 전환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강한 시장이라는 것. 그러니까 굳이 시착을 시켜서 그 자리에서 팔지 않아도, 신뢰만 잘 만들어두면 온라인 구매로 이어질 거란 확신이 있었던 거다. 불편을 설계하려면 그 불편을 감수해도 될 만큼 확실한 다른 가치가 뒤에 있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요즘 회사에서 새로 만드는 브랜드에 마케팅 시선을 보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감도는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팔려야 하고, 마케팅은 좀 더 공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정작 쓸 수 있는 예산은 넉넉하지 않은, 숙박 브랜드다. 감도와 대중성, 공격적인 마케팅과 적은 예산. 언뜻 보면 다 갖추기 어려운 조합인데, 무신사 사례를 보고 나니 조금 다르게 접근해볼 여지가 보였다.
예산이 없다는 걸 그냥 '못 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무신사가 피팅룸을 없앤 것처럼 '일부러 안 하는 것'으로 재정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숙박업이 보통 갖추는 요소 중 하나를 과감하게 덜어내고, 그 자리에 이 브랜드만의 확실한 한 가지를 채우는 방식으로. 다 갖추려다 어중간해지는 것보다, 하나를 확실히 비우고 그 여백에 사람들이 SNS에 올리고 싶어할 만한 확실한 포인트 하나를 채우는 게 오히려 적은 예산으로 공격적인 인상을 남기는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무신사 사례에서 배운 전제 조건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불편을 설계하려면, 그 불편을 메워줄 만큼 확실한 신뢰나 대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냥 예산이 없어서 뭔가를 못 갖춘 것처럼 보이면 그건 그냥 부족한 브랜드가 되지만, '우리는 이걸 일부러 안 하는 대신 이걸 확실하게 준다'는 게 명확하게 전달되면 그건 오히려 개성이 된다. 이 브랜드에서 무엇을 과감하게 비우고,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이제 그 답을 찾는 게 다음 숙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