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콘텐츠가 재밌는 이유
현직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며 매주 마케팅 뉴스레터를 챙겨 읽습니다. 읽고 흘려보내는 대신, 실무자 시선으로 곱씹어보고 기록합니다.
요즘 SNS를 보다 보면 '대체 왜 이게 유행하는 거지?' 싶은 것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최근에는 삐에로부터 시작해서, 할까 말까 고민하는 문자 밈,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장놀이까지.
서로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콘텐츠인데 이상하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계속 보게 된다. 그리고 댓글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한마디 보태고 싶어진다.
생각해보면 요즘 재미있는 콘텐츠에는 비슷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그냥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최근 가장 황당하면서도 재미있었던 건 단연 '삐에로 대란'이었다.
누군가의 진지한 결혼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정통삐', '품바삐' 같은 새로운 분류를 만들어내고, 급기야 '나는 어떤 삐에로와 결혼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밸런스게임으로 번졌다.
사실 삐에로라는 직업을 특별히 가까이에서 접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삐에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어릴 때 행사장에서 봤던 풍선 삐에로의 모습, 조금 과장된 화장과 의상,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이 익숙함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기준을 얹기 시작하면서 밈이 커진다.
“나는 정통삐까지 가능.”
“품바삐는 좀…”
“우리 강아지는 강아삐.”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게 요즘 콘텐츠의 재미인 것 같다.
콘텐츠가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얹으면서 완성되는 것.
'하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할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이 밈도 비슷했다.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의 마음이 1분 단위로 바뀌는 문자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웃긴데, 브랜드들이 이걸 빠르게 가져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바꿔냈다.
여기서 콘텐츠 마케터 입장에서는 다른 재미가 하나 더 생긴다.
'이걸 우리 브랜드에서는 어떻게 써먹지?'
스크럽대디는 연차를 청소와 연결했고, 네이버는 AI와 미용실 선택을 연결했다.
같은 밈을 가져왔지만 브랜드마다 결과물이 달라진다.
그래서 요즘 밈 마케팅은 단순히 유행하는 콘텐츠를 빨리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트렌드를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트렌드를 우리 브랜드의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케터의 센스가 드러난다.
물론 이런 밈은 수명이 짧다.
어제까지 모두가 따라 하던 밈이 오늘은 벌써 '아 그거 한참 됐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트렌드를 쫓는 콘텐츠 마케터들에게는 늘 시간과의 싸움이 따라붙는다.
빠르게 발견하고,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
가끔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속도감이 콘텐츠 마케팅의 재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 사례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국중박 분장놀이였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유물이 되어버린다.
청동방울이 되고, 반가사유상이 되고, 청동공양탑이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분장 이벤트처럼 보이지만, 참가자들이 제작 과정을 SNS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완성된 결과물을 구경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다음에는 어떤 유물이 나오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결국 사람들의 참여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예전의 의정부고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매년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다리고, 친구들과 웃고, SNS에서 다시 공유하던 콘텐츠.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결국 '사진' 한 장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지 보는 재미였다.
국중박 분장놀이도 비슷한 것 같다.
박물관이 콘텐츠를 모두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더 오래 재미있다.
삐에로와 국중박 분장놀이는 완전히 다른 콘텐츠처럼 보인다.
하나는 인터넷 밈이고, 하나는 문화기관의 이벤트다.
그런데 둘 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삐에로를 보고 나는 어떤 삐에로가 좋은지 이야기하고,
국중박 분장놀이를 보고 나도 어떤 유물을 표현해볼지 상상한다.
결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그 콘텐츠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요즘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면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만큼이나
'얼마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된다.
사람들이 댓글 하나를 달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
친구에게 보내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
내 방식으로 한번 해보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
그리고 브랜드가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면,
광고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브랜드가 기억된다.
콘텐츠 마케터의 역할도 조금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혼자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 브랜드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주는 사람.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재미있어하는지를 읽는 것.
그리고 그 재미를 브랜드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
요즘 SNS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밈에 웃고, 댓글을 읽고, 가끔은 직접 참여하면서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은 콘텐츠 자체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콘텐츠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놀 수 있다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삐에로부터 국중박까지.
요즘 콘텐츠가 유난히 재미있는 이유는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콘텐츠를 보기만 하지 않는다.
같이 만들고, 변형하고, 이야기하면서 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