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를 잘 쓰는 마케터일까
현직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며 매주 마케팅 뉴스레터를 챙겨 읽습니다. 읽고 흘려보내는 대신, 실무자 시선으로 곱씹어보고 기록합니다.
지난 번, G마켓의 턴어라운드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에 걸리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새로 합류한 리더가 안정된 조직 대신 변화가 필요한 조직을 택한 이유를 'Incrementality(순증분)'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이미 잘 굴러가는 곳에서 작은 개선을 반복하기보다, 내가 들어감으로써 얼마나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는 얘기.
이 문장을 읽는데 이번 달 새로 합류하게 된 회사가 떠올랐다.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분위기도 아니고 데이터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과는 조금 멀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환경에서 답답함을 먼저 느꼈을 것 같은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회사가 안 바뀐다고 나까지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것.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내가 먼저 AI를 더 똑똑하게 쓰는 사람이 되어, 조직 안에서 그 순증분을 만들어볼 수 있는 시점 아닐까.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막상 콘텐츠를 AI에게 맡겨보면 아쉬운 순간이 꽤 많다. 결과물이 어딘가 무난하고, 내가 원하는 톤이랑 미묘하게 다르고,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비슷한 답만 돌아올 때, 이게 AI가 부족해서인지, 내가 질문을 잘못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 많았다.
찾아보니 이 답답함은 나만 겪는 게 아니었다. 마케터들이 AI 결과물에 실망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AI가 약해서가 아니라 브리핑 자체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반복됐다. 많은 사람들이 키워드 하나만 던져놓고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거나, 구조 없이 두루뭉술하게 요청한 다음 결과가 별로라고 실망한다는 거다. 나도 되짚어보니 '이런 느낌으로 카피 좀 써줘' 정도로 던지고 끝낸 적이 많았다. AI 입장에서는 정보가 너무 없으니 무난한 답을 낼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서 몇 가지 방법을 정리해봤다.
"SNS 카피 써줘"와 "25~34세 여성 타깃, 캐주얼한 톤, 계절감 반영, CTA 포함, 50자 이내로 3가지 시안"은 같은 AI를 쓰고도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낸다는 얘기부터 나왔다. 나도 되짚어보니 전자에 가까웠다. 콘텐츠 마감이 촉박할수록 "이런 느낌으로 하나만 뽑아줘" 하고 던진 다음, 결과가 밋밋하면 "역시 AI는 이 정도구나" 하고 그냥 내 손으로 다시 썼다. 돌이켜보면 그건 AI의 한계가 아니라 내가 브리핑을 안 한 거였다. 타깃도, 톤도, 분량 제약도 다 내 머릿속에만 있었으니 AI는 짐작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거다.
두 번째 기준: 숫자를 해석하는가
이 부분이 제일 뼈아팠다. AI가 ROAS 3.2라는 숫자를 정리해주는 건 쉽지만, 그게 계절적 요인 때문인지 크리에이티브가 좋아서인지 경쟁사가 광고비를 줄여서인지는 숫자만으로 알 수 없다는 것. 'CTR이 올라가서 전환이 늘었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정말 CTR 상승이 전환 증가의 원인일까?'라고 한 번 더 물어보는 것 사이엔 꽤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데이터 중심 조직이 아니다 보니, 사실 이 부분을 훈련할 기회 자체가 적을 수 있다. 지표를 봐도 그 뒤에 있는 원인까지 파고드는 습관이 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 결국 AI가 리포트를 아무리 빠르게 만들어준다 해도, 그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판단하는 눈은 내가 따로 길러야 하는 것 !
이 기준도 인상 깊었다. 혼자만 아는 프롬프트나 자동화는 결국 개인의 노하우에 머문다는 것. 문서화해서 동료도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어야 그때 비로소 팀의 역량이 된다는 얘기다. 지금 회사에서는 AI를 이용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요령이 쌓여도 그게 나만의 노하우로 끝나기 쉬운 구조다. CS 응대가 있을 때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면 기록해두기로 한 것도 사실 같은 맥락이다. 이걸 토대로 데이터를 쌓아 개선 필요성을 공유하기 위해서. AI 워크플로우도 이렇게 문서로 정리해두면, 회사가 아직 시스템을 안 갖췄어도 내가 먼저 그 틀을 만들어둘 수 있을 것 같다.
AI 덕분에 콘텐츠를 훨씬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AI가 만든 티가 나는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도 같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제작 부담은 줄었는데 오히려 기획에 대한 부담은 커졌다는 거다. 왜 이 메시지를, 왜 이 채널에서, 왜 지금 보여줘야 하는지를 먼저 설계하는 건 여전히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에 동의가 갔다.
여기서 눈에 걸린 건 GEO 얘기였다. 콘텐츠가 AI 검색 환경에서 명확하게 이해되고 인용될 수 있는 형태로 구성돼야 한다는 건데, 이건 예전에 알던 SEO랑은 결이 다른 문제다. SEO가 사람이 검색창에 뭘 치는지를 신경 썼다면, GEO는 AI가 내 콘텐츠를 어떻게 요약하고 인용할지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뜻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만든 콘텐츠들이 사람 눈에는 예뻐 보여도, AI가 봤을 때 '이게 뭘 말하는 콘텐츠인지' 명확하게 읽히는 구조였는지는 자신이 없다. 제목과 문단 구조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요즘 내 방 인테리어에 대한 내용으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테리어 브랜딩이나 체험단 콘텐츠 방향을 다시 잡아보려는 것도 이 문제랑 이어져 있다. AI로 초안을 여러 개 뽑아보면 확실히 예전보다 빠르긴 한데, 정작 그중 어떤 방향이 내 채널의 톤과 맞는지 고르는 데는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만들 수 있는 콘텐츠는 늘었는데, 그중 뭘 만들지 결정하는 기준이 아직 흐릿했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시안을 받기 전에 "이 콘텐츠가 답해야 할 질문 한 가지"를 먼저 적어두는 습관부터 만들어보려 한다. 그 질문에 제일 정확하게 답하는 시안을 고르면, 적어도 방향을 못 정해서 헤매는 시간은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기준은 결국 판단과 바카라임은 사람의 몫이라는 거였다. AI가 만든 카피에 저작권 문제가 생기거나, 추천한 타기팅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브랜드에 예상 못한 위험을 만들어도, 그걸 게시하고 결정하는 건 결국 나와 조직이라는 것. AI는 선택지를 제안할 뿐 그 결과까지 바카라임져주지 않는다는 문장이 계속 남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검수를 끝내는 순간 결과물의 수준도 거기서 멈춰버린다는 말도 뜨끔했다. 나도 마감에 쫓기면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넘긴 콘텐츠가 꽤 있었는데, 그게 결국 내 채널의 평균치를 낮추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 기준이 무서운 건, AI가 결과물을 대신 바카라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바쁠 때는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결과물이 그럴듯해 보일수록 검수를 서두르고 싶은 유혹이 커지는데,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한 단계를 더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걸 그대로 내 이름과 브랜드로 내보내도 되는가"를 마지막에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묻는 것.
다섯 가지를 다 읽고 나니, 내가 그동안 AI를 '잘 쓰고 있는가'를 도구의 종류나 사용 빈도로만 판단해왔다는 걸 꺠달았다. 정작 중요한 건 얼마나 구체적으로 요청하는지, 숫자 뒤의 맥락을 얼마나 의심하는지, 내 요령을 얼마나 남들과 나누는지, 무엇을 만들지 고르는 판단을 내가 여전히 하고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바카라임질 준비가 됐는지였다.
도구는 계속 좋아지겠지만,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남들과 비슷한 결과물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다음번엔 이 다섯 가지 기준으로 내 작업 방식을 하나씩 다시 점검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