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선거에서 지고 옆 나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야기
열 살 때 반장 선거에 나갔다. 잠실의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이었고, 나는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만큼의 정견을 준비해 갔다. 그런데 키가 작은 아이 하나가 앞에 나와서, 중국의 등소평은 작은 키로도 10억 인구를 다스리고 있다는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혼자 생각해 낼 수 있는 문장은 아니었고, 집에서 누군가 정성껏 준비해 준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부반장이 됐다.
떨어진 것이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 아이가 말한 나라가 궁금했다. 중국이 어떤 나라이길래 저런 사람이 저런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인지,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된 셈이다.
그럴 만도 했다. 1986년의 한국에서 중국은 아직 '중공'이라고 불리던 나라였다. 1970년대 초에 핑퐁외교와 미중 수교가 있었고, 1978년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하면서 세상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때이긴 했지만, 냉전은 여전히 한창이었다. 우리 정부는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싶어 했지만, 중국 쪽에서 보면 북한과의 관계도 있었고, 당시 한국의 경제 규모로는 미국과 일본만 상대해도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1983년 중국 민항기가 납치되어 춘천에 내렸을 때 한국 정부가 승객들의 송환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지 겨우 3년이 지난 때였다. 초등학생이 옆 나라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중국은 초등학생의 기억 속에서 곧 잊혀 갔다. 다시 떠오른 것은 중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등굣길에 본 TV 뉴스에서 1989년 베이징의 광장 소식이 나오고 있었고, 그 장면은 열세 살의 머리에 아주 깊이 박혔다. 그때 나는 막연하게 이렇게 생각했다. 중국이 지금 큰 변화를 겪고 있구나. 우리나라도 1980년에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한국이 중국보다 10년쯤 앞서가는 나라인가 보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국에서는 한국이 최근 10년 동안 겪은 변화가 비슷하게 일어날 것이고, 10년쯤 지나면 중국도 아시안게임을 하고 올림픽을 열고 경제도 커지겠구나. 그러면 중국을 좀 공부해 봐야겠다.
열세 살의 예측이 얼마나 맞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중국은 1990년에 아시안게임을 열었고, 2008년에 올림픽을 열었고, 경제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커졌다. 다만 한 가지는 틀렸다. 한국이 걸어온 길을 중국이 10년 뒤에 그대로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중국은 다른 길을 갔고, 그 다른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나는 그 뒤로 30년을 썼다. 열세 살에 세운 가설이 틀린 이유를 찾느라 인생의 절반을 쓴 셈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마침 외고 열풍이 강하게 불던 때라, 고등학교부터 중국어를 시작하면 남들보다 한발 앞설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1992년 한영외고 중국어반에 들어갔고, 그해 8월에 한국과 중국이 수교했다. 열 살에 이름만 들었던 나라가 열여섯 살에는 정식으로 이웃이 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열 살의 나는 중국이 무엇인지 몰랐고, 열세 살의 나는 중국을 한국의 과거로 이해했으며, 열여섯 살의 나는 중국을 기회로 골랐다. 셋 다 틀렸거나 반만 맞았지만, 그 틀린 이해들이 없었다면 그 뒤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옆에서 자고 있던 거대한 용의 존재를 반장 선거에서 진 날 처음 알게 된 것은,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진 선거였던 셈이다.
다음 글은 1996년, 처음 중국 땅을 밟은 여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