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무지개에는 연두색이 없다.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서주양

비가 온 후 햇빛이 작은 물방울에 닿으면, 빛은 서로 다른 각도로 굴절된다. 이 과정에서 빛은 분산되어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총 일곱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이 색깔들을 뉴턴이 발견했다고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다. 원래 그 시간에는 자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날은 과학 선생님이 쓰지 않는 나의 우뇌를 어떤 질문으로 자극했다.


“무지개 좋아하니?”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왜 무지개에는 연두색이 없을까? 그 때문인지 연두색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선호하지 않는 색이 되어 버렸다. 봄이 되어 세상이 온통 연두 밭이 되어도, 연두색은 이상하게 자투리처럼 느껴졌다. 스물다섯 살쯤 남자친구가 원피스를 선물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색을 물어봤다.


“연두색 빼고 다 좋아”

“왜 연두색을 싫어해?”

“무지개 색에서 탈락한 것이, 꼭 나랑 닮아서...”


그래 내 인생도 이 놈의 몸뚱이도 연두색처럼 낙오자다. 특히 내 자궁이 그렇다. 올 겨울, 생리를 중단하는 대포주사를 맞았다. 생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렸지만, 때 이른 갱년기를 경험했다. 대포주사의 효과는 딱 3개월. 정확하게 세 달이 지나면 기적은 끝나고, 붉고 괴로운 매직이 시작된다. 신데렐라의 마차는 호박으로 돌아왔고, 화려한 파티드레스를 입은 공주도 구두를 잃으며 재투성이가 되었다.


“오늘은 병원 갔어?”

한 달 내내 엄마가 전화로 물었다.


“현조야 그래도 병원은 가야지.”

이건 경순이가 하는 잔소리고.


보름 전, 대포주사를 맞은 지 3개월이 지나 예정된 진료 일에 맞춰 병원을 갔다. 초진 때처럼 또다시 불편한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대기석에 앉아 두려움에 떨며 내 이름이 모니터에 뜨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긴장을 안고 기다린 끝에, 마침내 김영한 교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난소 두 쪽 중, 한쪽에 혹이 사라졌고. 자궁벽에 크게 붙어있는 근종 크기가 3센티 줄었네요?”


나는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기쁨으로 솟구치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덩실거리는 어깨를 붙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다시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 세계에서 김 교수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렇게 말한다.


- 적출 수술 안 해도 되겠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자궁과 난소 아주 깨끗해졌어요. 당장 학회에 보고 하겠습니다.


그런 드라마를 머리로 찍고 있을 때, 김교수는 차갑고 냉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평생 대포주사를 맞고 살 수는 없어요. 뼈 검사 해봐야 알겠지만 골다공증도 진행될 거예요. 그리고 주사를 멈추고 생리를 시작하면 사라졌던 혹들은 다시 생겨요.”


아무래도 김 교수는 나의 망상의 세계로 들어 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무릎이 아프거나, 짜증이 솟구치거나 안면홍조 등에 부작용은 없었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부작용은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면, 뭔가 희망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할 줄 알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부작용이 없다고 대포주사를 계속 맞을 순 없죠.”


사람에 실망이 너무 크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대포주사 맞고 뼈가 약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괜찮은지, 검사해보도록 하죠.”


상상했던 희망이 결국 망상에 그치고 말았다.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지는 것 같은 참담함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는.....”

"수술하는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놔뒀다가 암으로 전이될 수 있어요. 그때 말씀 드린 것처럼 난소는 살리고. 자궁은 혹이 붙어 있는 아래쪽만 절제하는 겁니다. 사실상 박현조 님 자궁상태는 임신할 수가 없어요. 몸을 아프게 하는 역할만 하고 있죠.”


나는 그렇게 또 두 번째 사형선고를 받았다. 망상이었지만 행복했던 상상도.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던 소망도. 이젠 모든 것을 멈추고 현실에 눈을 떠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교수님! 엄마 친구 딸에게는 어떻게든 자궁을 살려보자 했다면서요? 왜 나한테는 한 방울 정도의 기적도 권하지 않는 겁니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본다.


“일단 뼈 검사받고, 결과 나오는 날 다시 얘기하죠.”


옆에 서 있던 간호사는 망연자실한 내 어깨를 잡아 진료실 밖으로 부축하면서, 연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여자 마음 여자가 아는가 보다. 무슨 정신으로 검사 복으로 갈아입고 MRI촬영실 앞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엄마나 경순이 없이, 혼자 온 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댈 이가 없어 그런지, 눈물은 나질 않았다.


“박현조 님! 촬영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내 방송에서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촬영실이 아닌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고, 그 길로 도망을 쳤다. 다들 왜 그랬냐고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주대학병원 탈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 벌써 보름 전 일이다. 현재는 갇혀있던 선혈이 생리대가 낭자하도록 신나게 쏟아지는 중이다. 허리가 부서지게 아프고 자궁에 주리를 트는 것 같은 통증과 밑이 빠지는 것 같은 고통까지 수반된 월경이다. 물론, 병원은 다시 가지 않았다.


“어차피 현조 님 자궁은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그런 말을 내뱉은 김 교수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그런 아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아프다, 허리도 아프고, 자궁도 아프고, 현실도 아프다.


“약... 약이 필요해.”


바카라상까지 엉금엉금 기어가, 경순이가 약국에서 브랜드별로 사다준 진통제를 꺼내 목으로 넘긴다. 속 쓰리지 말라고 위통 약까지 챙겨준 살가운 경순이가 옆에 있어서 암담한 시간을 견디고 있다. 목에 생선가지가 박혀있는 것처럼 갑갑하다. 알약이 중간에 걸렸나 보다. 물병을 보니 동이 났다. 밤새 먹은 진통제는 물 2리터가 필요한 양이었나 보다. 주방까지 나갈 기력도 없어서 그냥 누워버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에 저지른 만행들을 곱씹었다.


“자순아. 왜 그래. 왜 자꾸 우니. 진짜 힘들다.”

타일러도 보다가,

“자순이 너 진자 나쁜 계집애구나? 진짜 너는 나쁜 년이야. 나쁜 년!”

원망도 하다가.

“썩을 년! 씨 팔 년! 확 떼버릴 거야! 내 말이 농담인 줄 알아? 의사한테 가서 너 죽이라고 할 거야! 죽여서 갈기갈기 찢어버리라고 할 거야! 아아악!”

저주를 퍼부었더란다.


그렇게 밤새, 미친 여자처럼 악을 쓰고 아랫배에 주먹질을 해댔다. 경순이가 깰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주섬주섬 진통제를 털어먹었다. 잠에 들라치면 통증이 얄궂게 괴롭혀 깊이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 내내 이불 위에서 이리 뒤 척, 저리 뒤 척, 앉았다 누웠다가 스탠드를 켜서 바카라을 보다가 집어던졌다. 더군다나 그 아픈 와중에 나는 그놈을 생각했다. 밑에서는 밀린 생리가 미치도록 쏟아지고 기억 속에서는 그놈이 불쑥 튀어나왔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놈과 진주식당에서 칼국수를 먹고, 벚나무 길을 자주 걸었다.


“그거 알아? 연애의 제일 하이라이트는 이별할 때라는 걸. 우리 마지막은 영화처럼 하자.”


개소리를 참 진지하게도 하던 미친놈.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같이 있어도 더 함께 있고 싶고,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 무의미하게 여기는 내게 화장실 가는 그 몇 분도 헤어지기 싫어 생리현상까지 꾹 참는 내게 놈은 아주 쉽게 이별을 말했다.


“너와는 미래가 그려지질 않아.”


그 말에 나는 순종적인 애완견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왜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놈의 모습이 하나에서 두 개, 세 개로 늘어나도록 울기만 했다. 그러고는 동네 교회에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엎드려 폭풍 오열을 했더란다.


“하나님, 그 사람만은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나처럼 아프고 능력 없는 여자 말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사람 만나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때 내 기도는 진심이었다. 원수를 축복하면 그 축복이 내게도 임한다던 목사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한 기도도 아니었다. 내게 축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사람만 축복해 달라는 간절하고도 진실한 기도를 드렸다. 그랬더니 주님은 정말 딱 그놈만 축복하셨다.


[행복은 가족에게서.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자 인생을 논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사랑해 여보]

그놈, 페이스 북 게시물에는 하얀 백사장에서 부서지게 웃고 있는 남녀와 그 품에 안긴 예쁜 아기가 한 몸인 것처럼 서 있었다.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다. 질투도 나질 않았다. 질투는 사정이 엇비슷해야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놈이 사는 곳은 천국이고 나는 지옥 밑바닥인데, 어떻게 감히 질투를 할 수 있겠나. 그저 그들의 행복한 사진을 무력하게 훔쳐볼 뿐이었다.


비참하다. 내 인생이 창피하다. 내 몸이 절망스럽고 괘씸하다. 이렇게밖에 못 사는 나를 죽이고 싶다. 만약에 그놈이 나랑 결혼을 했다면 그놈도 불행했겠구나, 싶었다. 하나님이 그놈을 참 예뻐하나 보다. 나 같은 것한테 도망치게 해 주고. 그렇게 흐느끼면서 밤새 울다가 동이 틀 무렵 겨우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그의 손을 잡고 끝도 없는 길을 걷는 꿈. 머리 위로 벚꽃은 눈처럼 휘날리고, 우리는 같은 자세로 꽃눈을 보며 감탄했다. 그에게 바다를 가자고 말하려던 순간, 깨어났다. 일어나 보니,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울었다. 울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눈물이 났다.


“죽고 싶어. 정말 죽고 싶어.”


그때 경순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황해서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경순이가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눈만 보이게 이불을 살짝 내렸다. 조심스레 커튼을 내리고 있는 경순이 등이 보였다.


“경순아.....”

“현조 밤새 앓았지? 죽 좀 끓였는데, 먹을 수 있겠어?”


경순이는 커튼을 마저 내려주고는 곁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아서 내 아랫배를 문질렀다. 그러고는 쑥을 넣은 전기장판을 배 위에 올려주었다.


“경순아. 나 어릴 때, 엄마가 자꾸 강아지를 사줬어. 그래놓고 좀 정들라치면 누구한테 줘버렸어. 이사 가야 해서. 형편이 안 좋아서. 마당 넓은 집에서 키워준대서.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그래놓고 또 새 강아지를 데려와 품에 안겼어.”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 엄마한테.”

“알고 있어. 내가 외로울까 봐. 그런데 나는 강아지를 어떻게 사랑해 주는지를 몰랐어. 밥도 잘 안 챙겨주고. 혼자 두고 나가고. 산바카라도 안 시키고. 끈도 안 매고 혼자 다니게 하고. 자꾸 생각이나. 내가 했던 나쁜 행동이 자꾸 나를 괴롭힌단 말이야. 그때는 그게 나쁜 건지 몰랐어. 사랑해 주는 방법을. 챙겨주는 법을 몰랐단 말이야. 그래서 엄마도 나도 벌을 받나 봐.”


침대 맡에 동그마니 앉아 내 아랫배를 쓰다듬던 경순이가 손을 옮겨 가슴을 토닥인다.


“줬다 뺐었다. 줬다 뺐었다. 나는 한 번도 갖고 싶은 걸, 가진 적이 없어.”

“현조한테는 이젠 나비가 있잖아. 나비는 네 허락 없이는 그 어디도 안 떠나.”


경순이가 손을 거두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가지 빛깔에 연두색은 없어. 빛은 연두색을 버렸어. 연두색이 내 자궁 같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여 울었다. 그리고 경순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아주 고요히 나를 지켜줬다.


“현조야, 내 말 좀 들어볼래?”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흐윽, 흐윽, 흐흐흑. 진동 섞인 눈물의 잔재 같은 것들이 숨을 멈춰도 강제로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가을할머니 따라서 교회 갔거든. 거기서 들은 얘긴데. 바울이라는 사람도 엄청 질병이 많았데. 그래서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를 세 번이나 했는데. 하나님이 바울의 질병이 은혜라고 말했데. 그 약함이 강함이 된다고 했데. 그래서 바울이 뭐라 그랬게?”

“뻐큐 날렸어?”

“으이구, 아니~ 내 약한 것을 자랑합니다!라고 했데. 그 말을 듣는데, 나는 현조의 아픔이 자랑이 될 날이 올 것 같았어. 언젠가는 너의 아픔이 이야기가 되고, 태양처럼 빛날 날이 올 거 같았어.”

“몰라 그런 거...”

“현조야. 동네에 과일트럭이 왔어. 트럭 과일 맛있잖아. 딸기 이만큼 사서 한강에서 먹자.”

“샌드위치 만들어 줘.”

“당장 만들어 줄게. 나갈 수 있겠어?”

"응, 바카라방 혼자 보게 해서 미안해..."

"우리에게는 든든한 알바생이 있잖아!"


올해 화이트데이에 경순이 아이디어로 유리병 안에 시집과 사탕을 넣어서 팔았는데, 꽤 반응이 좋았다. 그 후로 단골손님이 늘어 바카라방이 꽤 바빠졌다. 그래서 가을 할머니가 아픈 나 대신 바카라방을 봐주고 있다.


“경순아, 홍시 태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안아 봐도 될까? 유모차는 내가 끌어도 될까?”

“당연하지! 이름도 지어주기로 했잖아.”

“나 그럼 아기 대모할게”

“좋아!”


나갈 채비를 하려는 경순에게 그놈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는 말도 꺼냈다. 이미 결혼도 했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놈을 그리워한다는 창피한 고백도 했다. 그리고.....


“나 이젠 자순이랑 이별해야 할 것 같아.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자 경순이가 울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빨개지도록 울었다. 경순이는 제 슬픔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면서 남 일에는 바보같이 철철 운다. 경순이는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모아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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