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고양이가 들어왔다.
회사에서 팀장에서 밀려나 있다가 3개월 전 다시 팀장이 되었고,
지난 3개월 동안 2개의 프로젝트와 3번의 해외 출장은 내 일상과 건강을 갉아먹었다.
평온한 일상을 꿈꾸던 나의 은퇴 계획이 불과 3개월 만에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는데
지금 돌아보면 내 삶은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열정의 시간과 좋았던 시간이 있었고, 가족을 소홀이 했던 시간과 싫었던 사람들과의 시간들까지,
내 지난 시간들은 내 계획과 상관없이 채워지고 또 비워졌다.
4개월 남은 2026년, 그리고 퇴직 목표일까지 3년의 시간이 내 계획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의 바쁜 삶이 나쁜 것이라 규정하고 싶진 않다. 회사 내에서 팀장은 팀원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는 별로인데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여전히 몰입하고 속도를 줄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업무 방식이 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 업무가 두 아들이 집을 떠난 허전함을 채운다면 최악이다.
또 하나의 반전은 2개월 전 입양한 고양이 '엘리'다.
결혼 초부터 와이프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는데
사는 곳이 국내, 해외로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여건이 안되었다.
와이프는 둘째가 대학을 입학한 올해 초부터 고양이 입양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민간 분양 가게, 입양 센터 등에서 정보를 알아보고 있었다.
2개월 전에 경기도에 있는 동물구조관리협회에서 와이프가 찾고 있던
브리티쉬 숏헤어 입양 공고가 떴는데 찾아가서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동물구조관리협회는 구조된 반려 동물을 2주간 인터넷에 공고하고
2주가 지나도 주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입양할 사람을 찾는 공고를 하였는데
와이프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는지 입양 공고 당일 엘리를 데려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엘리가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덩치가 커서 당황스러웠는데, 원래 결정을 잘하지 못하는 와이프가
이번에는 단호했는데 이런 경우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 본 경험이 없다.
어려운 집안에서 아이들 키우기도 힘들었던 부모님에게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동물과의 교감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이름을 '엘리'라고 지었는데, 몇 일간은 낯선 환경에서 경계감을 보였는데
어느새 내가 퇴근하고 나면 내 발밑에서 가만히 앉아 있거나 잠을 잔다.
사람과의 교감에도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가끔 '엘리' 사진을 보기도 하고 가끔 미소 짓기도 하는 나를 발견한다.
작지만 큰 변화이다.
내 삶을 꽉 채우고 있던 두 아들이 집을 떠나고, 그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하던 나에게
'엘리'가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회사 업무보다는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