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절대적인 빈곤보다 상대적인 차이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배가 고픈 것보다, 옆 사람이 더 좋은 음식을 먹는 사실이 더 큰 불만을 만든다. 집이 없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더 넓은 집에서 사는 현실이 더 큰 상실감을 준다.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래서 인간 슬롯에서 가장 강력한 감정은 가난이 아니라 비교이며, 가장 강력한 불만은 절대적 결핍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은 실제로 무언가를 빼앗겼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을 갖지 못했다고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현실보다 기대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격이 커질수록 박탈감도 커진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은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의 문제이며, 동시에 정치학의 문제다. 정치는 바로 그 기대를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현대 슬롯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워졌다. 의료는 발전했고, 교육은 확대되었으며, 평균 수명은 늘어났다. 과거 왕족이나 귀족만 누릴 수 있었던 생활 수준을 오늘날의 평범한 시민들이 누리는 시대가 되었다. 냉난방이 되는 집에서 생활하고,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으며,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삶은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행복은 그만큼 커지지 않았다.
왜일까.
비교의 기준이 함께 높아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기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부유해져도 만족은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교 대상이 가까워질수록 질투와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과거에는 왕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너무 먼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가 성공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던 동료가 더 빨리 승진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던 사람이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은 견디기 어렵다. 비교 대상이 가까울수록 상대적 박탈은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여기서 평등이라는 언어가 등장한다.
정치는 이러한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람들은 절대적 성장보다 상대적 공정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경제성장을 이야기하기보다 격차를 이야기하고, 성장보다 분배를 이야기하며, 미래보다 현재의 비교를 자극한다. "왜 저 사람은 더 많이 가져야 하는가.", "왜 당신은 그것을 받지 못하는가.", "국가가 그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러한 언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린다.
상대적 박탈감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치적 자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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