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작과 끝은 고통이었다.

"내가 네 임신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다."

by자연처럼

가끔은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 볼 때가 있다.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모르긴 해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날 때 "응애" 하고 소리를 발함으로써 자신이 고통의 늪에 빠져들었음을 세상에 알리며 태어난다. 이렇게 우리의 시작은 출발부터 고통이었다. 아마도 첫 조상인 하와가 범죄에 이르지 않았다면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하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임신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다.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그는 너를 지배할 것이다.~너는 평생토록 고통 속에서 땅의 소출을 먹을 것이다." (창세기 3:16,17 신세계역 성경)


​범죄의 대가는 참혹했다.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아담에게는 땅의 소출을 얻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고통은 어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만큼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탯줄을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동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지만, 세상에 나온 이상 상황은 달라진다.


​태어난 아기의 고통은 어떨까?

​생존에 꼭 필요한 공기는 물론 물과 음식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태어난 아기는 아직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엄마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와 포근함을 누린다. 하지만 아기는 성장할수록 세상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이제 스스로 발을 움직일 정도가 되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는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어떨까?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자, 현실의 고통을 인내해가며 미래를 설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교우 관계와 학업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시험 때마다 겪게 되는 심적인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모의 기대만큼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3 수험생의 경우,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나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기에는 이러한 불행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바다나 강에서의 익사 사고, 자동차나 오토바이 사고 등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오늘은 살아있다고 해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세상이 되었다.


​꽃망울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 꽃처럼, 이러한 죽음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청천벽력 같은 불행이 찾아오면 고통은 죽은 당사자로 끝나지 않는다. 이로 인한 후유증은 부모는 물론 형제와 주변 사람 모두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이 슬픔의 무게는 그림자처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노년이 되면 어떨까?

누구나 이 시기를 맞이해야만 한다.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듯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다. 좋은 음식과 건강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해 보지만 마음만큼 수명을 연장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신체적·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치매나 뇌졸중이라도 와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이가 육칠십 세가 되면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닌 자신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임을 깨닫는다. 이때가 되면 인생의 고통은 그림자처럼 항상 붙어다닌다. 우리의 이런 슬픈 인생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알려준다.


​"우리의 수명은 70년,특별히 강건하면 80년이지만,괴로움과 슬픔만 가득하고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 버립니다."

(시편 90:10 신세계역 성경)


​이렇게 인생을 돌아보면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다. 누구나 이 길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을까? 고대 중국의 진시황이나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꿈꿔왔던 생명의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도 우리에게 닥쳐온 슬픔과 고통을 피해 갈 방법이 있다. 비가 오면 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우산으로 비를 피할 수 있듯이 말이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이후 인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눈여겨보셨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 행한 기적과 수많은 가르침을 기록해 놓은 바카라이다. 성경에서는 죽음의 고통을 피할 방법을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그것은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16 신세계역 성경)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그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에게 순종하고, 그분의 발걸음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닥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