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배추가 ‘금추’가 되었습니다.”
뉴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한때 배춧값이 금값에 견줄 만큼 오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배추를 ‘금추’라고 불렀다. 늘 흔하게 밥상에 오르던 배추가 하루아침에 귀한 몸이 된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배추는 귀한 채소였다. 다만 그 귀함은 가격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늦가을의 어느 날, 우리 집은 김장으로 분주했다. 전날 어머니는 이웃들과 무를 채 썰고 각종 양념을 준비하셨다. 저녁에는 배추를 절이셨고, 밤늦게 마당으로 나가 절인 배추를 뒤집어 놓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 밤새 몇 번이나 더 들락날락하셨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김장 당일은 새벽부터 더 분주했다. 어머니는 절인 배추를 씻어 수돗가에 차곡차곡 쌓아 두셨다. ‘산더미 같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족히 수백 포기를 준비하셨다. 겨울부터 봄 채소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먹을 양식이었다. 사시사철 채소를 구할 수 있는 요즘과는 김장의 의미부터 달랐다.
아침이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멍석을 깐 마당에는 금세 김장판이 벌어졌다. “배추가 덜 절었네.” “속이 좀 싱거운 것 같은데.” “고춧가루를 더 넣어야지.”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언제나 맛있는 김치가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 틈을 노려 노란 배추 속잎을 떼어 양념을 얹어 먹는 재미에 김장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그 시절 김장은 별미를 만드는 행사가 아니었다.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긴 겨울, 가족의 밥상을 미리 마련해 두는 생존의 준비였다. 그래서 김장은 가족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웃들은 서로 품을 나누며 김장을 거들었고, 담근 김치는 김장독 속에서 겨울을 보내며 조금씩 밥상에 올랐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배추는 우리 식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금추’라는 말이 생겨난 데에는 배추의 특성이 한몫한다. 배추는 원래 서늘한 날씨를 좋아하는 채소다. 그래서 폭염과 장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수분이 많아 오래 저장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김치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 공급이 조금만 흔들려도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배추 한 포기에는 계절의 변덕과 농부의 수고, 그리고 김치와 함께해 온 우리의 생활이 얽혀 있는 셈이다.
김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겨울을 버티기 위해 김치를 마련했다면, 이제는 취향에 따라 김치를 고른다. 누군가는 깊이 익은 묵은지를 찾고, 누군가는 풋풋한 겉절이를 좋아한다. 배추김치뿐 아니라 갓김치, 물김치, 파김치 등 다양한 김치를 계절과 입맛에 따라 골라 먹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즐기느냐’가 식탁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나 역시 먹고사는 일을 먼저 해결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생계를 꾸리는 동안에는 좋아하는 일을 돌아볼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돌보는 삶으로 조금씩 옮겨 왔다. 생활에 작은 빈틈이 생기자, 바카라을 읽고 숲을 걷고 글을 썼다. 생업에만 마음을 쏟던 데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들에도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채워 온 시간이 어느새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김장독 속 배추를 보며 나는 먼저 견디는 삶을 배웠다. 오늘 식탁 위에 놓인 배추 앞에서는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생존은 나를 오늘까지 데려왔지만, 기호는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배추는 십자화과(科)다. 예전에는 속이 덜 찬 재래종이었으나, 1950년대 우장춘박사의 품종 개량으로 속이 찬 결구배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추위에 강한 편이나, 생육 초기에 오래 저온에 노출되면 꽃대가 올라오는 ‘추대’가 일어나 상품성이 떨어진다.
배추도 잎·줄기·뿌리가 구분된다. 흔히 줄기라고 생각하는, 희고 두꺼운 부분은 대부분 잎자루이고 줄기는 뿌리 바로 위의 짧고 단단한 부분이다. 배추의 흰 줄기에 깨처럼 검은 점이 박힌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곰팡이로 판단하기 쉽지만, 병이 아니라 생리적인 이상으로 생긴 ‘깨씨무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