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에 동의하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 정보 비대칭, 자기결정
진료실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67세 김 모 씨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무릎 퇴행성 관절염으로 5년째 고생 중이고, 이미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의사가 한 가지 새로운 치료법을 권합니다.
“줄기세포를 활용한 줄기세포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의사는 동의서 한 장을 내밉니다. 거기에는 이런 항목들이 적혀 있습니다.
“자가 지방유래 중간엽 줄기세포”
“세포 배양”
“자가이식”
“장기 추적관찰”
“이상반응 보고”
김 씨는 한참 동안 동의서를 들여다보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동의하려는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단순히 한 환자의 개인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이 야시로 모델의 다섯 동그라미 중 가장 큰 동그라미, 시민의 시선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한국의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이미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첨단재생의료 치료를 실시하려는 의료기관은 환자에게 서면으로 동의를 받아야 하고, 동의서에는 선택 가능한 다른 치료법, 단계별 예상 소요시간, 개인정보 관리, 치료 중단에 관한 사항, 분쟁의 조정·중재에 관한 사항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합니다.
법조문만 보면 완벽한 보호입니다. 문제는 이 법조문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입니다.
첨단재생의료는 고도의 전문 지식을 요하는 분야입니다. 환자와 의료 전문가 사이의 정보 격차가 엄청나게 큽니다. 살아있는 세포를 원료로 하는 치료의 특성, 장기적 부작용의 불확실성, 과학적 근거의 제한성
이 모든 것을 환자가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동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근래의 의학윤리는 있는 그대로의 ‘동의’가 아니라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라는 개념을 쓰고 있습니다.
세계의슬롯 헬싱키 선언은 동의를 구할 때 의사 또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잠재적 참여자가 정보를 이해한 것을 확인한 후”
자발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이해를 확인하지 않은 동의는, 형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윤리적으로는 빈 종이입니다.
시민의 시선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연구와 치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문제입니다.
첨단재생의료는 기술적 불확실성이 크고 근거 기반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환자에게 연구가 치료로 오인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체 치료법이 없는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자의 경우,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연구’를 ‘치료’로 오인할 위험이 큽니다.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밝혀낸 연구가 있습니다.
교토대학 iPS세포연구소(CiRA)의 후지타 미사오(藤田 みさお) 교수 연구팀이 2022년 국제학술지 Cell Stem Cell에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의 자유진료로 제공되는 줄기세포 치료의 실태를 분석했습니다.
후지타 교수팀은 단호하게 지적했습니다.
“본래 ‘치료’는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증명된 뒤에 비로소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자유진료라는 틀 안에서 의사와 환자의 합의만 있으면, 안전성·유효성의 증명이 충분하지 않은 치료도 제공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되었습니다.
2023년 후속 연구에서 후지타 교수팀은 자유진료로 제공되는 재생의료의 치료계획 351건과 첨부 문헌 2,495건을 분석했는데, 전체의 25.1%(88건)에서 안전성의 과학적 근거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학술지(predatory journal)에 게재된 논문을 인용한 계획이 8건,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임상연구 논문 인용이 아예 없는 계획이 45건이었습니다. 가장 아픈 사실은 그 다음 문장입니다. 환자들이 “합법이니까 안전하고 유효하다”고 오해한 채 치료를 받게 되는 위험성을 후지타 교수팀은 경고했습니다.
이게 일본만의 이야기일까요?
한국도 2025년 2월부터 첨단재생의료 치료제도가 시행되면서, 유사한 경계 모호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에 들어섰습니다.
시민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더 있습니다. 적어도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도달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도달’ 자체부터 우연에 맡겨져 있습니다. 6편에서 한 번 보았듯, 2026년 2월 기준 197개 실시기관 중 서울 11곳, 경기 5곳, 부산 2곳, 수도권에 64%가 몰려 있습니다.
지방에 사는 환자가 어떤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KTX를 예매해야 합니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4조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국가는 첨단재생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때 모든 환자들이 슬롯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법문입니다. 다만 수도권 64% 집중이라는 현실은 이 법문의 취지와 거리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알파요한 사실은, 이 지역적 불평등이 결국
“일본행 비행기에 오르는 수만 명”
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1편 참조).
의료경제학에는 오래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want(원하는 것)와 need(필요한 것) 의 구분입니다.
‘want’는 환자의 판단입니다. “나는 이 치료를 받고 싶다”는 강렬한 욱심입니다. ‘need’는 의료 전문가의 판단입니다. “이 환자에게 이 치료가 실제로 필요한가,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가,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라는 전문적 판단.
이 둘이 일치하면 가장 좋은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자주 어긋납니다.
환자는 절박한 상황에서 강렬한 want를 가집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요.”
그러나 그 치료가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환자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환자의 want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대한 맹목적 기대로 전환될 위험이 있음을 앞서 본 후지타 교수팀의 연구가 실증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want가 한국에서 충족되지 못하면, 환자는 일본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1편의 풍경, 7편의 신뢰 위기, 그리고 이번 편의 정보 비대칭은 결국 한 가지 이야기의 다른 장면이었던 셈입니다.
이번 편에서 다룬 시민의 시선을 8편에서 만난 ELSI의 세 차원으로 표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한 편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절박함은 환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다. 그러나 절박함만으로는 안전한 치료를 보장받을 수 없다.
절박함이 슬롯적 지혜로 전환되려면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첫째, 시민이 want와 need를 스스로 구별할 수 있도록 정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재생의료포털(saiseiiryo.mhlw.go.jp)처럼, 어떤 치료가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시민이 확인할 수 있는 공식 포털이 필요합니다. 17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둘째, 그 판단이 정바카라에 반영될 수 있는 참여 구조가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일본 재생의료학회(JSRM)의 환자·시민 참여 모듈(PPI Module)과 KOBE 선언 2026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니다.
셋째, 연구와 치료의 경계가 흐려질 때, 환자에게는 그 차이를 제대로 설명해 줄 의무가 의료 전문가에게 있어야 합니다.
일본의 후지타 교수팀이 밝혀낸 “합법이니까 안전·유효하다”는 오해는, 한국에서 절대로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시민의 시선은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시민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시민이다.
그렇다면 이 의사결정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이 바카라이 제목으로 삼은 ‘다섯 가지 시선’의 가장 첫 번째 자리에 시민을 둔 이유입니다.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의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출처는,
『첨단재생의료의 다섯 가지 시선과 ELSI』(BOOKK, 2026)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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