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을에는 다시 바람이 불었는가 보지.

by마른틈
아, 가을이 떠나고 있구나. 이 가을의 생명력이 온 힘을 다해 마지막을 외치고 있구나.

나는 이토록 애처롭고 아름다우며, 어쩌면 조금은 대담한 그 가을을 온 마음으로 사랑했다. 그러니까 이 가을이 싫어진 건 순전히 나의 탓이다. 나의 모나고 뾰족한 마음 때문이다. 가을은 여전히 쓸쓸하고 아름답거늘, 지치고 고단한 마음이 그 쓸쓸함을 미워했다. 그 아름다움을 투기했다.


속이 답답하다. 이 지난한 마음을, 수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빈다. 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지만, 요즘처럼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란 적이 없다. 그저 이 모든 일들과 마음이 과거형이 되기만을 바란다. 언젠가 “그때 사실 내가 그랬었어”라고 말하는 내 얼굴엔 조금의 피로감이 묻어 나오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꽤 괜찮아. 나 잘 해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날이 오기만을 바라는 나날이다.
집 근처에 난데없이 붕어빵을 파는 곳이 생겼다. 정작 붕세권인 회사 앞에서는 살 수 없어 처량하다 여겼는데 의외의 수확이다. 이 또한 나 같다고 여긴다. 어찌어찌 해내는 꼴이 퍽.
그래 이렇게 어찌어찌 해내다 보면 슬퍼할 틈도 없이,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시간이 흘러가겠지. 곡식이 익어 수확할 날처럼, 나의 모든 일들도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겠지.


끝없이 쌓인 일들을 세 알리며 “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차라리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바쁜 일정에 조금은 감사하고 있다. 문득문득 차오르는 슬픔에 가슴이 꽉꽉 들이 막히는 요즘이지만, 마치 네가 지금 슬플 틈이 어디 있냐며 들들 볶이는 기분이다. 이에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하니 “지금 말고 좀 한가해지면 기회를 봐서 슬퍼하라”는 누군가의 말에 무방비하게 웃어버렸다.
그렇게 능력도 부족하고 머리도 모자라서 몸만 혹사하는 주제에 어찌어찌 큼지막한 일 하나는 끝내서 오늘 밤은 조금 뿌듯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이딴 글이나 쓰고 있으니, 사실 조금쯤 자축하는 거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또 살아진다. 사람이란 게 그런 거지. 10만큼의 불행이 죽음이라면, 9.5만큼의 불행에 가까웠던 내가 아주 조금의 위로와 행운들로 상쇄되는 그런 나날들이다.
고작 이틀의 연락 두절로 ‘무슨 일이 있느냐’며 걱정하는 당신의 1만큼의 다정. 절박했던 마음에 화답해 주는 1만큼의 행운. 네가 힘들었던 것은 절대 유난 따위가 아니라며, 그간 어떻게 버텼냐는 1만큼의 위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랬으니까, 수확을 기대하는 1만큼의 설렘.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불행을 상쇄해 가며 나는 또 살아남았다.
나의 불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조금의 행복으로 상쇄되어도 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위태롭겠지. 그래서 그 불행을 해결하기 위한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우선 지금은 그것만이 최선인 거로, 그렇게 결론 내렸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다. 더 이상 내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밀며 탓하고 몰아세우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것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바야흐로 상실의 가을과 결심의 겨울이다.




추적추적, 어느 계절에도 속하지 못한 비가 이틀쯤 내리더니 마저 남아있던 여름의 기척을 말끔히 몰아냈다.

아침 출근길, 젖은 도로 위로 은행 열매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아직 노랗게 물들지도 못한 이파리 사이서 떨어진 열매는 바삐 걷던 사람들의 발끝에 밟혔는지 형편없이 짓뭉긴 채였다. 떨어지기에는 일러서, 가을이라 부르기에는 아직 풋내조차 풍기지 못하는 어설프고 미진한 것들.


그것들을 보며 문득 한 해 전의 은행나무 길을 떠올렸다.


까만 밤하늘을 빼곡히 수놓던 노란 잎사귀들. 바람이 일 때마다 무성한 가지가 흔들리고, 그 아래로 장엄한 금빛 비가 쏟아지던 길. 나는 그 낭만적인 길을 바삐 오가며 단지 시간이 지나기만을 간절히 소망했더랬다.


그렇게라도 염원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타 죽을 듯 치사하고 유독스럽던 마음이 한 해가 지나 이제는 “그래도 이제는 꽤 괜찮아. 나 잘 해냈어.”라고 할 수 있게 된 모양이지.

그렇게 어찌어찌 살아보니 바야흐로 조금은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이지. 이제는 슬픔을 애도할 시간 또한 가질 수 있게 된 모양이지.

10만큼의 불행이 곧 죽음이라면, 이제는 아주 조금의 위로와 행운만으로도 제법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모양이지.

쓸쓸함을 미워하고, 아름다움을 투기하던 마음에도 어느새 무언가를 기다리는 바람이 불었는가 보지.

작가의 이전글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