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응모일 마지막 날 저녁이 되어서야. 아 맞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지. 음, 그래도 이름을 넣기는 해야겠지. 라며 부랴부랴.
적당히 세 권의 온라인카지노 북을 선별했다. 기획 의도를 쓰라 하네. 선정 방식이 바뀌었다더니 원래 이런 항목이 있었던가 싶다. 조금 귀찮아 공란으로 둘까 싶다가 그럴싸한 소개문을 적당히 한 두줄 써 갈기고 제출했다.
조금 웃겼다. 아무리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고작 일 년 새에 이렇게까지 무던해질 수 있는 마음인가.
나는 작년에도 온라인카지노 북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리고 아주 대차게 떨어졌다. 떨어지면 떨어진 거지, ‘대차게’ 떨어질 건 또 뭐냐고 묻는다면, 경쟁률이 1000:1이 넘는다는 그 공모전에 나는 꽤 자신 있게 이름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동네방네 떠들기까지 했다.
“나 붙으면, 제주도 다녀올게. 최소 일주일, 길면 한 달. 회사든 뭐든 따지지 않고. 항공권부터 끊을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아주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은 붙을 자신이 있었다기보단, 붙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심정을 그따위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아주 어렵게 이혼을 결심했지만 손에 쥔 건 단돈 200만 원이었다. 뭔가 단단히 이상했다. 나는 열아홉부터 일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열심히 살아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딱히 사치 따위를 부려본 적도 없어서, 남들 다 아는 명품 브랜드 이름도 모르고 서른 살이 되었는데, 욕심도 많아 늘 양손에 쥔 것 중 무엇 하나 놓지 못해 마음 한번 편해 본 적 또한 없었는데.
다만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인데. 늘 뽑기 운이 나빠 원가족은 단 한 번도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고, 가끔은 그럼에도 씩씩하게 일궈놓은 내 울타리마저 부수려 들었으며,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어 조금 착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게다가 조금 지지부진하게 아팠을 뿐인데.
그렇게 결혼생활 7년을 마무리하려니 내게 남은 건 애매하게 끊긴 경력과 변변찮은 ‘개인사업자’라는 이력, 그리고 현금 200만 원이 전부였다. 내 나이 서른하나, 친구들은 어엿한 아기엄마가 되어있거나,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대리님” 소리를 들을 때였다.
200만 원으로는 어디 방 한 칸도 구할 수 없겠지. 부끄럽고 쪽팔려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자신도 없었다. 인생이 참 덧없게 느껴졌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만 딱 그만큼만 살고 싶었다. 실로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쓸모’라던가, ‘자기효능감’ 같은 것에 미친 사람이 되어갔다.
그쯤부터는 매주 로또를 샀다. 말로는 “로또 당첨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정작 불확실성을 믿지 않아 로또에 일절 돈을 쓰지 않고 살았음에도.
로또에 당첨됐을 때의 계획은 항상 같았다. 1등이어도, 2등이어도 몸 뉠 방을 구할 천만 원만 남기고 나머지 돈은 모두 남편에게 넘겨줄 것. 아니면 이렇게 박살 난 몸뚱이가, 그 맥박이, 어느 날 돌연 멈추어 그에게 내 사망보험금이라도 몇천만 원쯤 쥐어지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같은 거랑 사느라 시간을 낭비한 그가 너무 불쌍했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인생을 씹창 낸’것이 죄스러워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려웠다.
매일 밤 쓸모를 증명하려는 강박과 죄바카라감에 허덕이던 몸뚱이는 섭식장애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인생 최저몸무게를 찍으면서도, 고철 덩어리와 기계 부품처럼 의무적으로 굴러다녔다. 그때 나는 뽑기에 또 실패한 탓에, 어떤 회사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공모전이란 온갖 공모전에 모두 뛰어들었다.
새벽 네다섯 시에 잠들어 여닐곱시에 일어나 출근했다. 그러다 쏟아지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던 어느 날에 골목 끄트머리에서 발이 꼬여 넘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려는 추위 속에서 비현실적으로 울리는 경적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몽롱한 머릿속은 아마,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내게 온라인카지노 스토리 공모전 수상금 500만 원은 방 한칸을 구할 최소한의 안전 자금이자, 목숨의 정당성 같은 거였다.
나는 공모전에 참가하고, 그 발표 날짜만을 기다리며 버텼다. 매일 아침 두어 시간을 단 두 평의 화장실에 주저앉아 물을 맞았다. 세상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울면서도, 그만큼이나 살고 싶었던 나는 닥치는대로 온갖 공모전에 참여했다. 떨어지면 그다음 공모전의 발표날까지만 살겠다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장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온라인카지노 공모전까지 떨어졌을 땐, 기어이 죽기 위해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게다가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잘 살아있다.
고작 200만 원 밖에 없던 통장은 방 한 칸을 구하고도 꽤나 넉넉할 만큼의 여유가 생겼고, 나를 믿어주는 회사에서 귀인 같은 대표님과 다정한 동료들의 인정을 받으며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내가 겪은 무례의 경계를 재단할 줄 알게 되었으며, 끝내 나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 공모전에서 낙선한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는 정식 출간을 한 달도 채 남겨 두지 않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끌던 프로젝트도 마무리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슬슬 새 계약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 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요즘, 문득 하염없이 북받치는 마음에 찌르르하다가도 그것들을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얼마 전, 사랑하는 나의 H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있잖아, 조금 뜬금없지만 나 요즘 좋아.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이상해, 뭐가 이렇게 순순히 다 잘되지? 조금 겁날 정도로 좋아. 아직 바카라이 나온 것도 아니고, 손에 쥔 결과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이제 뭔가 다 잘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아. 나 조금 행복한 것 같아. 아, 나는 이래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좀 이상해”
그런 내 말에 그녀는 고민 한번 없이 줄줄이 읊는다.
“거의 10년 만에 번호를 바꾼 일, 네가 겪은 무례를 더 이상 참지 않기로 결심한 일, 너를 당당하고 멋있게 내보이는 일, 끌려다니지 않고 아주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일, 쉬지 않고 차기작을 계획하면서도 나를 바카라임지기 위해 회사에서 노력하고 배우는 일까지 모두 네가 스스로 일궈낸 행복이야. 결과물이 없긴 왜 없어?”
언제나 그렇듯,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을 담아 나를 믿어주는 당신들이 나는 참 좋다. 나는 당신을 믿고, 그런 당신의 믿음은 당신이 믿는 나를 믿게 하니까. 나는 작년 이맘때쯤의 나를 떠올리며 조금 눈물을 흘렸다.
“1년간 정말 치열했다 마른틈. 그치?”
“응…. 있잖아. 살면서 또 넘어지는 날 분명 오겠지만, 나 이제 조금만 힘들어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나를 좀 믿게 됐어. 그 힘들었던 모든 시간 동안 나한테 열심히 물 주고 비료 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다시 원래대로 로또를 사지 않게 되었다.
온라인카지노 스토리 공모전도 이제는 아무렴 어떤가 싶다. 되면 좋겠지만, 작년의 나처럼 절박한 누군가에게 돌아가면 더 좋을 것도 같다. 나는 이제 그게 아니어도 살아갈 이유가 생겼으니까. 작고 작은 미련들이 꽤 많이 생겼으니까. 내 비어 있던 수레에 그 미련들을 더 많이 채워갈 앞으로가 꽤 기대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