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번호를 바꾼 다음 날 곧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 놀러 와요. 도망치고 싶을 때, 힘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 말고 제주로 도망쳐 와요.”라던 말만 믿고.
하지만 그녀에겐 어차피 그녀의 일정이 있을 테니, 그 집에서 하숙이나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할 성싶었다. 잘됐지 뭐. 그동안 바빠서 손도 못 댄 작업 좀 마무리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조금 예쁜 풍경이나 보면서 일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래 나는 여전히도 스스로에게 박하다.
“학원 방학이 미뤄졌어요. 덕분에 틈씨 있는 동안 저도 쉬어요. 혹시 선약 있어요?”
“아… 그건 아닌데…, 모처럼 휴가인데 E도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데이트나 다른 일정 없어요? 혹시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면…”
혹여 멀리서 온 나를 챙겨야 하는 바카라임감 같은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지레 한 발짝 물러섰다.
“어차피 틈씨 돌아가는 날에 저도 여행 떠나요, 그전까지 다른 일정 없으면 혹시 나랑 놀지 않을래요?”
나는 문득 어느 겨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E, 나 부탁이 있어요.”
“네, 말해봐요.”
“제주에 모닥치기라는 게 있다고 들었어요. 제주에서는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모여서 마라탕 먹으러 가는 것처럼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들었거든요, 혹시…”
“하, 너무 좋아요!”
당신은 참, 여전하네요. 깜짝 선물 같은 그녀의 질문에 나는 휴가 내내 계획했던 작업을 고민도 없이 모두 밀어두기로 결심한다.
요즘 들어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서프라이즈를 생각보다 좋아한다는 거다. 한때는 참 번잡스럽고 비효율적이라 여겼던 그 모든 행위에 담긴 마음을 두근거리며 하나씩 뜯어보는 일. 깜짝 선물 상자를 발견한 내 눈이 커지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관람하는 상대의 기대감을 마주하는 일. 그 다정한 마음을 나는 퍽 좋아한다.
“그래서, 제주에서 하고 싶은 거 있었어요?”
나는 조금 고민했다. 이 남쪽의 예쁜 섬으로 떠나와 진실로 밀린 일이나 하려 했거늘, 그럼에도 딱 하나 바라는 게 있었다면.
“여기서 모슬포항은 조금 멀겠죠…?”
제주도민 기준, 그곳은 ‘서울-대전’의 거리와 진배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나는 그녀의 눈치를 조금 살폈다.
“모슬포면, 지난겨울에 틈씨 지내던 곳이요?”
“네… 실은 지난겨울에 거기서 달고기 튀김을 먹었어요. 갓 나온 생선튀김에 맥주를 너무 마시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혼자 있을 때는 술을 안 마셔서요. 결국 술 없이 먹었던 게 아쉬움이 남아서…”
“아, 좋아요! 우리 거기 가요!”
본격적으로 모슬포로 출발하기 전, 우리는 그녀의 일터에 잠시 들렀다. 남쪽의 유유자적한 섬 어느 모퉁이, 우뚝 선 민트색 건물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E의 동료들을 소개받았다.
사장님께서 홍보 숏츠를 찍으라 했다는데, 매니저분께서 “얼굴도 나와야 하느냐”기에, 나는 “안 나오기엔 아까운 얼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가 다 같이 깔깔댔다. E에게 듣기를 그녀의 동료들은 대만의 한 밴드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했다. 눈을 반짝이며 원두의 종류, 향과 맛 차이를 설명해 주었다. 산미를 싫어한다는 내게 어떤 컵은 두께에 따라 느껴지는 산미가 다르다, 슬쩍 내밀기도 했다. 사뭇 의심쩍은 시선으로 컵을 받아 든 나는 이내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아이처럼 꺄르르 웃었다.
E는 언제나처럼 흔쾌히 운전대를 잡았다. 후면 카메라 없이도 능숙하게 주차하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는 그녀를 볼 때면 나는 늘 대립하는 감정과 맞서 싸웠다.
“부럽네요. 운전하는 거.”
“면허가 아예 없나요?”
“네, 한 번도 딸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왜요?”
나는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늘 나누어 답변하는 버릇이 있다.
“위기 대처 능력, 순발력, 공간 감각이 심하게 떨어져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수학전공이잖아요. 공간 감각이 너무 떨어져서 공부할 때 어떻게 했는 줄 알아요?
전개도를 그리고, 자르고, 직접 접어가면서 익혔어요. 머릿속에 도형이 너무 안 그려져서요.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잔상이 남더라고요”
“와… 진짜 노력파네요.”
수학 교재를 만들고, 수학 강사를 하는 그녀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던 첫 번째 대답 대신 나는 두 번째 대답을 건네본다.
“실은 사고 낼까 봐 무서워요. 아니, 사고 낼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나는 내 인생만 바카라임지고 싶어요. 혹시라도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까 봐 겁이 나요.”
“음… 그럴 만도 해요. 그런데 그거 알아요? 오히려 무섭다고 벌벌 떨 때는 큰 사고 못 내요. 가벼운 접촉 사고나 낼까?
그리고 ‘내가 내는 사고’는 대체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요. 끼어들지 말아야 할 때 끼어들어서, 신호를 지키지 않아서, 속도를 지키지 않아서, 음주운전을 해서.”
그녀의 말을 듣자 잠시 명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나의 엄마도,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서 사고가 났을까.
“… 합당하네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 엄마가 그렇게 운전하겠다고 나섰다가, 본인의 인생도, 배우자의 인생도, 딸의 인생도 지키지 못했거든요.”
“……”
“물론, 그게 고작 운전 탓만은 아니라는 건 알아요. 수많은 운과 재수가 따라주지 않았어요. 어쩌면 그날이 아니었다면, 그 장소가 아니었다면, 그 후에 다른 병원이었다면, 하고 아주 많은 경우의 수를 상정해 봤어요.”
“……”
“그렇지만 결국 모든 시작은 거기서부터였거든요. 만일 내가 혹시라도 엄마처럼 삐끗한 어느 날에 나와,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게 될까 봐 겁나요. 그래서 그냥, 내 인생 하나만 오롯이 바카라임지는 선택이 운전대를 잡지 않는 일이라고 믿게 됐어요.”
“… 합리적이네요.”
“… 그래도 저도 언젠가 그런 거 아무렴 신경 쓰지 않고 훌쩍 내가 원하는 날에 떠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싶긴 해요.”
“그렇게 될 거예요. 그날이 빨리 오길 바라요.”
이내 모슬포에 도착한 우리는 작은 케이크를 사서 경숙 씨가 있는 작고 예쁜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삶의 끝을 받아둔 마음으로 이 남쪽 섬 작은 항구마을에 왔던 지난겨울, 나는 한동안 경숙 씨의 집에 묵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던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매서운 웃풍이 들이치는 구들방의 장작을 채워주었다.
텅, 텅, 난로 속에서 나무 땔감이 부서지고 튕겨 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방에 틀어박혔다. 종종 그녀가 미리 달궈놓은 전기장판 속에 숨어 몸을 녹이거나, 가만히 앉아 글을 썼다. 그러면 그녀는 정성껏 끓인 어묵 국물이나, 속 편하게 멸치육수로 우린 떡국을 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 지단을 왕창 올려서.
내가 왔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뛰어나온 경숙 씨는 “잠시 AI 강의를 듣고 있었다”며 나를 반가이 끌어안아 주었다. 그 생기 있는 얼굴을 보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여전히 주마다 현대무용 스케줄을 소화하고,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그녀의 나이는 일흔다섯. 아주 곧고 예쁜 나이였다.
나는 E에게 경숙 씨를 소개했고, 경숙 씨는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짜이티를 내주었다. 우리는 한참을 떠들었다. 늘 잠시 왔다 가는 이들로 가득한 외로운 항구에서 제주에 정착한 젊은 청년 E는 경숙 씨에게도 모처럼 반가운 손님이었는지, 둘은 퍽 죽이 잘 맞았다. 그렇게 핸드폰 번호도 교환하더이다.
나는 경숙 씨에게 바카라이 나온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때 이곳에서 머물고 돌아간 직후, 출판사에서 계약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와, 너무 잘됐다. 여기서 북토크 해줄 거지!”
푸스스 웃으며 바카라이 나오면 꼭 보내주겠다는 말로 짧은 해후를 마친 우리는 모슬포항의 작은 피쉬 앤 칩스 가게로 향했다. 그곳의 여러 맥주 종류를 보며 나는 조금 고민했다.
“틈씨 맥주 어떤 거 마실 거예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 술을 다양하게 마셔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잘 몰라요.”
살아오면서 ‘제때 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놓치고 살아온 나는 생각보다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취향’ 같은 것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같은. 우습게도 무엇을 마셔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들킬까 봐 부러 카페를 피해 다녔던 게 고작 2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E는 잠시 메뉴판을 보다가 되물었다.
“그러면 과일 향 들어간 거 좋아해요?”
“음… 아니요. 맥주는 삿포로처럼 깔끔한 게 좋은 거 같아요.”
“좋아요. 그럼 에일류는 패스. 내 생각에 틈씨 취향은 필스너 맥파이일 것 같아요. 어때요, 나 믿고 마셔볼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서툰 내게 다가와, 단순히 취향을 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게 어울리거나 좋아할 만한 것을 짐작해 골라주는 섬세한 다정은 늘 기껍다. 그렇게 만들어진 취향들이 하나둘 쌓여 나를 이루어 가는 일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그녀가 물었다.
“소스 종류가 많네요. 뭐가 제일 맛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첫 입은 아무것도 묻히지 말고 먹어봐요.”
내 말대로 한입 베어 문 그녀의 동공이 커지는 것을 보며 즐겁게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아마 내 동공도 같이 커졌겠지.
“크, 너무 시원하다.”
“성공했어요?”
“네, 완전요!”
그녀에게 쌍따봉을 올려주며, 바 테이블 너머 모슬포항을 바라보았다. 항구의 낮은 상가 건물 뒤로 노을이 졌다. 여전히 번화가와 동떨어진 그곳의 노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고작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그때 나는 외롭고 쓸쓸한 모슬포항의 바다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마치 집어삼킬 듯 굽이치던 파도, 그러나 점차 힘을 잃어 항구 벽에 부딪히는 무력, 되돌아오는 물결과 맞서보았으나 곧 스러지는 소진. 그 두 물결이 만나는 역설. 그것이 내 꼴과 퍽 다르지 않아 한참이나 노려보던 순간….
나는 그녀와 작고 작은 모슬포항을 몇 번이나 거닐었다. 짙은 노을이 건물 능선을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매서운 겨울 바당바람에 일던 물결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쏟아지는 습도와 함께 불어오는 훈풍 또한 귓불을 간지럽혔다.
이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E, 고마워요.”
“뭐가요?”
“나한테 이곳은 의미가 깊지만, 떠올리면 여러모로 마음이 아프고, 쓸쓸한 곳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나랑 와줘서, E의 친구들을 소개받고, 내 친구도 소개해 줄 수 있어서, 내가 혼자 했던 것들을 다시 함께 해주고, 혼자 봤던 것들을 다시 같이 봐줘서요.”
가만히 듣고 있던 E가 팔짱 낀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다소 단단해진 마음으로 바라본 그 항구가 어쩐지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느껴졌다.
아, 잘 도망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