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2026) 단평
불길을 건너 실망과 모든 놓쳐버린 것들을 품고 온, 눈 먼 테이레시아스의 전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은 눈물을 흘린다. 오직 노래로만 남을 것들을.
정작 오디세우스가 어떤 면에서 밋밋한 인물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물론 의도한 바로 보인다), 대사가 어쩔 수 없이 설명적인 대목들이 있다는 점, 형식과 서사가 인물보다 조금은 더 우선해 보인다는 점은 지적할 만하지만 그 모든 걸 압도하는 체험은 정서의 밀도를 전혀 상쇄하지 않으며 그것이 극장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생생하게 증명한다. 각색의 방향도 전적으로 끄덕여진다. 이건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연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야기니까.
어쩌면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장 오디세우스는 감독의 전작인 <오펜하이머>(2023)에서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는 데다 원작이 원작이니 만큼 그 전형이나 단면은 수많은 픽션들에서 목격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내러티브의 관건은 범상한 인물의 별 볼 일 없는 이야기를 모험으로 만들거나 20년이 넘는 기다림에 감정을 응축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걸 172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고전을 각색하는 일은 성실한 야심과 집념을 필요로 한다. 어떤 스토리텔러는 안주하지 않고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그들 중 또 어떤 이는 뛰어넘은 한계를 극장 경험을 통해 설득시킨다. 거대한 이야기가 그 스케일에 부합하는 대서사시를 가지고, 키르케 에피소드처럼 시청각적으로 강렬한 대목을 알맞게 배치하면서도, 웅대한 세계관 안에 인물의 시점을 결합해 낸다. 이것이 정교한 결과물이었을까? 그건 이견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디세이>(2026)는 영화가 단지 볼거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담고 울림을 전하기도 한다는 걸 감독의 필모그래피 최전선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전한다. 이런 시네마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영화를 시네마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인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와 함께 보낸 시간이 7년인 점, 김연수의 산문에서 테이레시아스 이야길 읽은 적이 있는 점, 한 시대(청동기 시대)의 문명이 저무는 점 등에서 착안해 김연수의 소설 한 대목을 잠깐 떠올렸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는 기행에게 이천육백 년 전의 시인이 대답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쇠 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다정한 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있다면 행동해야지. 야심 많은 현의 목소리도 들렸다. 비록 다가갈 때 인간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제우스가 불행과 병에게서 말하는 재주를 빼앗았다고 할지라도. 그리하여 언어를 모르는 불행과 병 앞에서 시인의 문장이 속수무바카라이라고 할지라도. 앞선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는 인간이란 폐병으로 죽어가는 아비를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 표정도 짓지 못하는 딸과 같은 처지라고 할지라도. 그럴지라도."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https://fishingproductfr.com/@cosmos-j/1512
아래는 8월 4일 CGV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있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배우 맷 데이먼, 샤를리즈 테론, 프로듀서 엠마 토마스의 내한 무대인사 현장 기록.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tt.ly/cosmos__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