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도 감정과 서사가 있다

영화 ‘리바운드‘(2022) 리뷰

by김동진

지난 5월 말 다시 도쿄에 다녀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햇살은 제법 강하게 내리쬐었고 선블록을 꼼꼼하게 바르지 않았던 탓에 왼팔은 시계를 찬 부분만 빼고 그을려 있었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양산을 펼치는 게 제법 자연스러워져 있었고, 이마에 땀이 맺히면서도 그걸 손수건으로 가만히 두드리며 공원을 한가롭게 걷는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5월호 지면에서 <언어의 정원>(2013)에 대해 이야기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것들을 맞이하러 다시 산바카라을 나선다고 했다. 그래서 다녀온 신주쿠 공원에는 문자 그대로 아이들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뛰어놀고 가족들과 연인들은 벤치나 돗자리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소풍은 짧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가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점심 시간에 땀을 닦다 땀내 나는 영화 한 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모교에서 공익근무 요원으로 일하는 양현(안재홍)은 한때 촉망받는 고교 농구 선수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그 학교 농구부의 코치로 갑자기 뽑힌다. 선수도 부족하고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학교에서 형식적으로나마 농구부를 유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전국단위 대회에 나가는 걸 목표로 양현은 지도자 경력도 없지만 코트가 있는 여기저기를 발품 팔아 가며 선수가 될 하갱들을 모은다. 땀 흘리는 일에 대해 생각하자면 떠오르는 영화 <리바운드>(2022)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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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약체 중에서도 최약체로 평가받는 팀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도 팀워크도, 그리고 팀을 이끌 코치의 분석력과 지도력도 모든 면에서 부족한 작중 부산중앙고 농구부가 신임 코치와 단 여섯 명의 선수만 가지고 전국 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키는 과정은 단지 실화 기반의 영화라는 점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그저 열심히 땀 흘리면 가능한 일일까. 운동을 할 때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도 있는가. 비밀은 조금 다른 데에 숨어 있는 듯하다.


스포츠에 관심이 별로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주지하다시피 농구에서 '리바운드'는 누군가 슛을 한 공이 골망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그 공을 다시 잡아내는 기술이다. 공격 측이 공을 잡으면 다시 기회를 얻게 되고 반대로 수비 측이 공을 잡는다면 역으로 공격권을 노릴 수 있으니 리바운드를 잘, 더 많이 잡는 쪽이 경기를 풀어갈 주도력을 더 확보하게 된다. 농구가 소재인 스포츠 영화인 만큼 그 자체로 직관적인 제목이지만 <리바운드>가 포착하는 승부의 순간은 단어로 간단히 환원되지는 않을 만큼 극적인 면이 있다. 리바운드를 많이 잡는다고 득점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경기의 어떤 기세, 분위기만큼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점수는 갑자기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 뭔가가 쌓이고 쌓여 과정이 누적되고 거기에 운까지 더해져 공이 골망을 잘 통과해줘야 한다.


common (2).jpg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리바운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은 몇 차례의 역전승을 이루어내는 일의 그 결과 자체의 쾌감이 아니라 일 분 일 초가 소중한 경기 장면 자체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촬영과 편집에서 나온다. 코치 지시가 선수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모습과, 패스를 가로채고 슛을 블록 하는 매 순간 선수들의 표정, 어쩌다 패스 실수를 한 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흠뻑 젖은 이마를 대충 손으로 훔치는 얼굴들. 대단한 드라마가 펼쳐져서 승리의 순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그들의 땀이 맺히고 쌓이다 보면 원하는 쪽으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승리를 담보해주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승부 자체가 아니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순간에조차 투지를 잃지 않는 어떤 자세,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친 손과 발을 악착같이 다시 움직이는 끈기 같은 것들에 있고 그건 농구 경기 하나가 아니라 곧 인생 전체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리바운드>는 일깨워준다. 진작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선수들은 지금 이 경기가 끝나지 않았으니 사력을 다해야 한다며 다시 일어나고, 부상을 참아가면서 동료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 자체가 인생의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땀에도 감정과 서사가 있다는 것을 영화 속 인물들은 실화를 뛰어넘어 보는 이들에게 일깨운다. 아직 더 뛸 시간이 있다고, 과정은 빛날 것이라고 말이다. 노력과 끈기라는 말이 식상하다고 느껴지거나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어떤 수고의 지난함에 지칠 때면, 다음 경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잡아내야 할 리바운드가 있다는 걸 주문처럼 되새긴다.



common (4).jpg영화 '리바운드' 포스터


*본 리뷰는 기상청 소식지 <하늘사랑> 2026년 7월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kma.go.kr/kma/archive/pub.jsp?field1=grp&text1=sky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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