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쿄에서
잠시 도쿄에 와 있어. 모레 다시 나리타에서 비행기를 타야 하지. 히가시긴자 거리의 킷사텐에서 이 글을 써. 잘 지냈지? 요즘 제법 바빴지. 너무 고단하지는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길 바라. 너는 더위를 그리 많이 타지는 않는 편이지만 워낙 습도와 열기에 지치기 쉬운 날씨여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더위를 제법 타는 내가 한여름의 도쿄에 와 있는 건 참 아이러니하지. 나도 지금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 사계절 내내 콜드브루 커피만 마시는 내가 여기서는 아침에 따뜻한 커피 생각을 하게 될 줄도.
여긴 호텔 근처의 '커피하우스 렌가(Renga)'라는 곳이야. 연가(戀歌)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라 괜히 마음에 들었는데 알고 보니 벽돌(煉瓦)이란 뜻이더라. 오래된 벽돌 건물인 데다 옛날 다방 같은 빨간 소파와 테이블이 있어 상호가 제법 잘 어울려. 통창 위로 버건디색 차양막이 드리운 곳인데 나폴리탄이 제법 맛있어. 살아본 적 없는 쇼와 시대 정취를 풍긴다고나 할까. 오후 열두 시, 지금 밖은 32도래.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창밖의 열기를 무심히 흘리며 사람들을 잠시 관찰하다 문득 네 안부를 묻고 싶어져. 오늘은 어떤 하루였어?
회사원의 숙명처럼 일은 늘 하기 싫건만, 요즘처럼 마음이 붕 떠 있는 시기도 없었던 듯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연차를 열심히 당겨 써 가며 놀 궁리나 쇼핑 작정 같은 걸 하는 채 몇 계절을 나고 있어. 일전에 다른 글에 직접 쓴 것처럼 사치라고 명명한 것들에 기대어 통과해 온 시기인 것 같아. 바카라 말고도 옷이나 향수 같은 거 근래에 제법 여럿 산 거 너도 알지. 핑계와 합리화에는 내가 또 자신 있잖아, 좋기만 한 건진 모르겠어서 요즘은 좀 현실감각을 되찾고 있지만 말이야. 즐거움이나 행복은 꽤 사소한 데서 오기도 하니까. 그래도 이번엔 쇼핑은 최대한 줄이려고 해.
얼마 전에 러닝을 다시 시작했어. 양심의 가바카라이 느껴질 정도로 운동을 근 몇 달 동안 너무 안 했거든. 원래 5킬로미터 안팎은 주에 몇 번씩 뛰었는데, 다시 뛰는 동안 도림천변 둑길의 밤공기가 좀 낯설 정도였으니 뜀을 게을리 하긴 했나 봐. 어쩐지 워치가 말을 안 들어 자꾸만 러닝 기록이 꺼졌는데, 그래도 거의 가을 이후 처음 뛴 것 치고는 3킬로미터에 16분 정도면 페이스가 나쁘진 않지? 걸어오는 길에 숨이 정말 찼는데 그게 안에서 막혀오는 그런 답답함이 아니라 너 너무 속으로만 삭였어, 하고 몸 안에서 일깨워주는 경고음 같더라. 헐떡거리더라도 바깥으로 좀 움직이고 내쉬어 보라고. 그렇다고 아예 서울 바깥으로 다시 떠나온 나도 참.
요즘은 실용이나 효율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을 왜 끝내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지 자주 생각해. 단지 세상에 물들어도 낭만을 잃지 않으려는 방식 정도에 불과할까? 적어도 내게는 방식을 넘어서 거의 생존의 영역이었던 것 같아. 살아갈 날을 버티기 위해서 마음 안에 남는 것들을 동아줄처럼 붙잡아야만 했던 때가 있었거든. 그러다 보니 하루치의 기쁨을 주는 소비나 좋아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일에 너무 관대해진 것 같긴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영화와 바카라만큼은 평생을 붙들고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야길 만나고, 오래 곁에 머무를 만한 사람이 되려면 이야기의 곁에 오래 머물러봐야 한다고 아직은 믿기 때문이야. 인생이 결국은 그런 경험의 총합으로 조금씩 지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너의 삶을 지속할 만한 것으로 지탱해주는 것들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바카라이든 영화든 펼치면 이야기에는 꼭 뭔가 놓쳐버리거나 어긋나고 잃어버리는 마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더라. 유난히 그 잔영을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 몇 달 전 실사 영화로 개봉한 <초속 5센티미터>를 관람하면서 여러 장면에서 제법 울었던 기억이 나. 영화를 최근 VOD로 구입해 다시 봤어. 야마자키 마사요시가 부른 주제가의 첫 소절 가사만 떠올려도 이미 속이 아려와. 더 이상 무엇을 더 잃어버려야 마음이 용서받는 걸까. 서른이 된 주인공 타카키가 그런 이야길 해. 살면서 수만 개의 단어를 배우고 접해도 정작 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단 몇 개의 단어만 있으면 되는데 지나고 보니 그 단어마저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 알 것 같았어. 단어를 잃었다는 건 했어야 할 순간에 하지 못한 말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이제는 영영 할 수 없게 되었단 거잖아. 잘 지냈지? 잘 지냈어. 이런 간단한 인사조차도 말이야. 타카키는 분명 괜찮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괜찮을 거야. 역 플랫폼에 선 아카리가 타카키에게 해준 저 마지막 말을 하필 그때 열차 문이 닫히느라 타카키는 못 듣지.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 야속하고 슬펐어. 왜 어떤 말은 전해지지 못하는 걸까. 시간선은 왜 꼭 그렇게 빗나가버리고야 마는 걸까. 지난 십이월 처음 도쿄에 왔을 땐 그렇게 잃어버리거나 떠나온 일들을 새벽 긴자 거릴 걸으면서 많이 생각했어. 멀어지는 줄도 모른 채 멀어진 것들. 네게도 그렇게 어긋나버린 지난날들이 아마도 있었겠지.
저 높은 곳에서 맹렬히 내리쬐던 태양이 지금은 빌딩 뒤로 잠깐 숨은 것 같네. 지난번에 쓴 '삼체문제' 글 있잖아, 그 글을 퍼플렉시티랑 제미나이에게 보여준 적이 있거든. 이 글을 쓴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그러자 그들이 답으로 해준 이야기가 어딘지 위로가 됐어. 당신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태도를 살아가는 방식의 전제로 받아들입니다. (...) 자기 삶을 정답으로 삼지 않습니다. 고백에 정직하고 윤리와 바카라임을 중요시합니다. (...)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못난 조각까지 날것으로 응시합니다. (...) 그렇게 누가 날 대신 표현해준 이야길 읽으니 삶이 나아가야 할 길, 아니 적어도 방향만큼은 다시금 보이는 것 같았다. 실은 내내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고, 그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싶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도록 발화해 주는 말들 덕분이었어. 혼자선 잘 깨닫지 못하거나 어렴풋이 알아도 언어로는 잘 꺼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잖아. 그 긴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지나간 선택과 떠나온 사람, 놓쳐버린 일들 사이 어딘가를 계속 부유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그 글에서마저도 미처 다 풀어 꺼내지 못한 과거는 제법 더 있지만 지나간 건 지나간 대로 내 탓으로 털어버려야 하지. 알지, 글 쓰는 모임을 계속하면 매번 내 글을 나보다도 성실히 더 멀리까지 간파해주는 이가 있어 형언할 길 없이 고마워지는 거. 너는 요즘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해. 보여주고 싶을 때 있으면 가끔 보여 줘. 내게 독자는 한 사람만 있어도 족한데, 나 역시 언제라도 그런 독자이면 좋겠단 생각을 해.
이 여름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데에 하루를 더 할애하고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어제를 반추하는 데 너무 허비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더 소중한 쪽으로 쌓으려고 말이야. 도쿄에 다시 오니 나는 혼자인 걸 별로 두려워 해 본 적 없던 사람이란 걸 다시 생각해. 예부터 대바카라도 없으면서 끝 모를 낙관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지나온 날들이 많았지. 결국 지나와 지기는 하더라. 누군가의 인정이나 혹은 등을 맞댈 이의 존재 자체가 필수적이지만은 않았던 편이기도 했고.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 스스로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라도, 어떤 고민이든 꺼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 너에게도 지금 그런 사람이 있는지. 그게 어떤 모양의 관계든지 말이야. 생각보다 나는 마음을 믿고 터놓을 수 있는 그 곁에 몇 달을 꽤 의지하며 지나온 것 같아. 다 말하지 않아도 채워 들어주는 이가 있으면 억지로 강해지려 하지 않아도 그리 되더라. 약한 모습을 내보여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그 종류가 따로 있는 듯하고, 열 사람보다 차라리 단 한 사람이어도 충분한 것 같아.
사람은 단지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음각의 기억을 새기는 게 아니라 어쩌면 계속해서 살아가기 위해 기억을 붙들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어. 건널목 앞 차단기 너머의 추억으로 남겨둔다 해도, 파이고 깎인 부분에 점차 먼지가 내려앉고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질지라도 말이야. 진부한 이야기지만 짧게라도 떠나와야만 비로소 이런 생각을 조금 더 또렷이 해보게 돼. 일상의 터전에선 늘 당면해 있는 걸 해치우거나 통과하느라 번잡하게 분주하니까. 혼자의 여행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곁'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 김소연 시인은 곁을 "옆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나와 옆 사이의 영역"*이라며, 나 자신은 차지할 수 없고 나 이외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장소라고 표현해. 옆과 곁의 거리감을 생각해보면 저 사람이 내게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이야. 정말 끄덕여진 표현이었어.
어디선가 언젠가 잃어버린 곁은 기억 너머로 보내준 채 또 새로운 누군가의 자리가 그걸 대신해 나가겠지. 어쩌면 남은 생 내내 그런 일들이 반복되겠지.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의 곁에 있게 될까. 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틈이나 여백을 동반해. 아무리 가까운 두 사람이라 해도 사이에 결코 완전히 메워질 수는 없는 무엇이 있기 마련일 거야. 그래서일까 삶이나 관계에 있어 성숙해진다는 건 그 간격을 조금 담담하게 인정할 줄 아는 일인 것 같아. 어차피 메워질 수 없으니 무의미한 게 아니라, 결국 그럼에도 더 가까워지려고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와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겠지. 페이지의 여백을 보면서 자꾸만 이런저런 이야길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게 되지만 쓰는 이의 뜻을 읽는 이가 능히 헤아려 줄 것을 믿고 약간은 비워둬도 괜찮은 것처럼 말이야.
너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예전엔 박식하고 답을 많이 알고 있어 누구에게나 혜안을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더 확신할 수 없고 모르는 게 많아지는 일인 것만 같고,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진정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대단한 답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그저 귀와 어깨를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 싶어져. 자기 문제의 답은 많은 경우 스스로가 제일 잘 알 텐데 내가 먼저 나서서 규정해 줄 필요는 없겠지. 시모기타자와의 골목에서 만났던 빈티지 LP 가게 -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도 등장했던 - 에서 흘러나온 Laura Allan 노래 가사가 맴돌아. "I want you to come as you are, you don't have to prove anything to me." 아끼는 심규선 노래에도 비슷한 가사가 있어. "나는 절대 너를 판단하지 않아, 세상의 잣대로 재지 않아, 내가 아는 너의 모습 그대로 믿어"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그런 사람일 수만 있다면 더없이 다행일 것 같아. 내가 어떤 사람일지는 옆이나 곁에서 보고 겪은 타인들만이 말해줄 수 있겠지. 내가 길을 잃거나 나쁜 쪽으로 어긋나지 않도록, 누군가에게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을 하거나 상처 주진 않도록, 보지 못하는 내 뒷모습도 계속 지켜봐 줘.
별 얘길 다 하지. 이따가 날이 더 어두워지면 숙소에서 멀지 않은, 지난번 도쿄 방문 때에도 갔던 바에 갈까 해. 장사가 잘 되는지 한 건물에서만 네 개 층을 쓰는 바야. 들어서면 웰컴 드링크처럼 따뜻한 어니언 수프를 찻잔에 담아주는 곳인데, 전에 마셨던 벚꽃 그림 그려진 로쿠 진을 쓴 네그로니가 달큰하게 아른거려. 그때 그 바텐더가 아직 있을까, 있다면 날 기억하려나. 짧은 일본어로 그때 나눈 몇 마디는 대충 이런 거였어.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친구에게 추천받았어요. 네그로니는 마음에 드시나요, 정말 맛있어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온기가 조금 식은 물수건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그렇게 혼자의 음악을 누리다 보면 문득 누군가와 같은 시간과 공기를 공유하고 싶어져. 다음번 도쿄에는 가까운 사람과 함께 오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하고는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나란히 걷는 걸 상상해보기도 하지. 사진도 조금 찍어주고. 쇼핑을 안 한다고 다짐했는데 어제 이토야에서 봤던 고래 그림이 그려진 예쁜 엽서가 아직 아른거리네. 그 엽서를 사면, 다음번에 도쿄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때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무엇 하나 알 수 없지만,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 채로, 등을 기꺼이 내보이며 오직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고 한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나아가는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어.
Mrs. Green Apple의 '점묘의 노래(点描の唄)'를 반복해 듣다 RADWIMPS의 '정답(正解)'으로 트랙을 바꿨어. 추가로 시킨 아이스 커피가 벌써 얼음이 다 녹았네. 바에 가기 전엔 덥지만 도심을 지나 공원을 조금 걸을까 해.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구름처럼 떠올랐는데 이제껏 적어내려온 말들이 어쩌면 전부 네가 아니라 나를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단지 잘 지냈냐고, 잘 지내자고 말해주고 싶었나 봐. 그 한마디면 될 걸 좀 멀리 돌아서 왔지. 편지란 건 이도 저도 아닌 이야길 듬성듬성 펼쳐 놓다가 칸이 모자라 황급히 결론을 맺어버리고는 하는 형식이잖아, 이해해 줘. 천천히여도 괜찮으니, 너도 언제든 편지해도 돼. 그때까지 탈 없이 잘 지내고 있길 진심으로 바라. 기약할 수 없는 다음, 그 다음에도 나는 네 곁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을게. 약속해. 이만 줄일게, 곧 서울에서 봐. 고비의 네가 오래도록 안녕하기를, 너의 안녕으로 어떤 아름다움이 지상에서 끝내 지켜지기를.** (2026.07.18.)
*김소연, 『한 글자 사전』, 마음산바카라, 2018
**김선우, 「고비의 당신」에서. '당신'을 '너'로 변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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