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와 안부
불꽃은 머리 위 하늘에서가 아니라 몸 안에서 터지고 있는 듯했다. 유튜브 중계로 보는 것도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보는 것도 아닌, 바로 곁에서 명멸하는 빛을 만나는 동안 주변에서는 연신 탄성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와 한로로의 '0+0'을 지나 The Weeknd나 악뮤 등을 오가는 선곡들은 어떤 풍경은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기도 하다는 걸 일깨웠다. 냄새도 있었다. 폭죽이 터지면서 생기는 진한 화약 냄새와 연기. 보고 듣고 맡는 불꽃을 향해 고개를 왔다갔다 움직이는 동안 이 순간은 또렷한 장면들의 연쇄로 각인되리라고 생각했다. 연소 뒤에 생긴 그을음인지 타고 남은 폭죽의 잔해인지 모를 검은 가루 몇 개도 이따금 바람을 타고 날아와 얼굴에 내려앉았던 모양이다. 그 사실은 축제가 끝나고 한참 뒤, 동네까지 걸어와 들어간 곱창집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서야 알았다.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26*(이하 '축제')이 있는 날에는 동여의도 주변과 원효대교 등지의 교통이 통제된다. 축제를 함께 관람한 친구와 한강공원을 빠져나와 여의동로를 지나 대방역까지 걸은 뒤 버스를 타고 문래동으로 이동해 소주잔을 기울였다. 불과 한 시간 정도 전까지 거대한 불꽃들이 빚은 장관을 수변관람석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감각이란 건 그렇게 실시간으로 추억의 윤곽을 만들며 우리의 등뒤로 점차 멀어져 간다. 같은 순간을 잠시 함께 목격한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동시에 감탄하거나 박수를 치다 이미 다 일상의 공간으로 흩어졌을 시간이었다.
인파가 운집하는 장소에 잘 가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평소에 축제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현장에 직접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필진으로 있는 영화 콘텐츠 큐레이션 카지노 게임의 운영 주체인 한화그룹 금융 계열사에서 필진들에게 수변관람석 티켓을 제공해준 덕분이었다. 이 축제에 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인가. 아니, 단지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어떤 하루를 내일 맞이할지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 모일지 감도 안 온다며 축제 며칠 전 친구들과의 카톡방에 이야기 했더니 "그 넓은 한강 잔디밭에 사람들이 끝도 없이 빽빽하게 앉은 걸 볼 수 있음", "거진 서울 사람들 절반이 거기 있다고 보면 돼", "한화가 만들어준 별도 구역이면 안전함" 같은 반응들이 더해졌다.
곱창 몇 점과 파채를 앞접시에 덜어 담고는, 새삼 우리가 무사히 한강공원의 인파 속을 빠져나와 어느새 편안한 동네에 와 있다는 걸 염통을 한 젓가락 집어 물면서 상기했다.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미러리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폰으로 옮기는 동안 마침 문래동에 있던 다른 친구가 합류했다. 셋의 다음 행선지는 자주 가는 바였다. 회사 스트레스나 인간관계 내지 커리어 고민, 사주, 칵테일과 위스키의 맛 따위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전, 축제 뒤 대방역 앞에서 탔던 6211 버스는 앞쪽에 탄 사람은 뒷문으로 내릴 수 없을 만큼 승객들로 빽빽했다. 주말 이 시간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냐는 어떤 승객의 말에 기사님은 오늘 여의도 그거 하는 날이잖아요~ 라며, 이촌동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반은 있었다며 너스레를 떠시고는 자 뒤에 문 닫아도 될까요? 라고 사람들에게 확인을 구했다. 문 열리고 닫힐 때 조심하시고 손잡이든 기둥이든 꽉 잡으세요~ 어디선가 술을 몇 잔 걸치고 왔을 얼굴 붉은 아저씨 무리들과 불꽃을 함께 본 듯한 어린 남매와 젊은 부부 가족, 대학생 정도 될 커플과 낯 모를 시민들이 한데 엉킨 버스는 문래동사거리에 우리를 15분 만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축제에는 동선 통제 등 안전과 질서 유지와 관련한 주최 측의 인력만 오천여 명이 배치됐다고 한다. 서울시나 경찰, 소방 등에서 투입되었을 사람들도 헤아린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수변관람석 구역을 빠져나오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경광봉을 든 한화의 자원봉사자들과 직원들이 일정하게 대열을 갖춰 인파를 통제하는 모습. 위험하니 멈추지 마시고 계속 이동해주세요! 앞에 턱 조심하세요! 반복해 외치는 목소리, 어둑해져 잘 보이진 않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불꽃의 잔영을 눈과 귀로 품은 군중들의 들뜬 웅성거림이 실린 걸음들이었다. 안전요원들은 한강공원 인근 건물들의 주차장 진출입로 앞이며 샛강역 주변, 심지어 다리 건너 대방역까지도 촘촘하게 자리잡고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야광 조끼를 입은 채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찰나의 폭발과 울림 뒤 이내 사라져버릴 것들에 우리는 아름답다며 하염없이 탄복한다. 그 천변만화하는 감각들이 자아내는 절정의 순간에 저항없이 글썽거린다. 발사대를 떠난 저 불꽃은 발사대로 돌아갈 수 없다. 공연팀이 숱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발사한 화약들은 색색의 빛을 뿜으며 활공하다 일정한 높이에 이르러 활짝 터진다. 높이 쏘아올려져 상공에서 터지는 타상불꽃, 그보다 낮은 고도에서 표현되는 장치불꽃으로 크게 나뉜다 하는 저 불꽃들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거나 연꽃처럼 넓게 그림을 그리거나 구름 같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서울의 한강변 스카이라인이 희미하게 시야 아래 들어오는 가운데, 자주색이나 적갈색으로 보이는 연기를 배경 삼아 금빛 불꽃들이 별처럼 박힌 성운 같은 사진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육안으로 보는 불꽃은 그렇게 긴 잔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셔터스피드를 한껏 늦춰 장노출 사진을 찍지 않는 한 사진으로도 표현하는 데에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 대신 그것들의 궤적을 선으로 이어 그리는 건 눈이라기보다는 머릿속, 아니 마음속이다.
불꽃을 보며 잠기는 상념은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다. 지금 그 자리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 거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고 어떤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저녁 공기는 어떠한지에 따라서도. 그러다 보면 저 축제를 누군가는 매년 보겠지만 축제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거나 유튜브 생중계로 만족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면을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는 어렵게 된 이후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사람들이 아무 걱정 없이 기쁨에 겨워 보일수록, 나는 반사적으로 출구나 통로를 미리 생각한다. 몇 해 전 한 가수의 25주년 콘서트에 갔다가 스탠딩 구역에서 어깨를 맞대고 빙글빙글 기차처럼 도는 '기차놀이' 무리의 에너지와 서로 힘껏 밀치며 옆사람을 아랑곳않는 움직임에 지쳐 도중에 빠져나왔던 날의 무서울 정도의 압도감이 아직 생생하다.
그러나 4년 전 10월 마지막 토요일 밤의 일을 생각하자면 스탠딩 콘서트 정도는 사소해진다. 무사함에 대한 감각이 그 이전과는 영영 달라졌다는 뜻이다. 나는 그날 거기 있지는 않았지만, 지인 중 한 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옹기종기 돗자리를 깔거나 어디선가 난간에 의지해 까치발 들고 선 채가 아니라 63빌딩 북단 한강공원의 가장 좋은 지정석에서 편히 앉아 불꽃을 보는 동안 속이 시끄러웠다. 어떤 시야 방해도 없이 마주하는 풍경이 내 앞에 주어져도 되는 걸까. 이것조차 복에 겨운 생각인 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만들어 준 안전을 누리고 있다는 마음이 폭발 뒤의 연기마다 머물러 있었다. 축제에 놀러 온 사람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하늘을 감상하는 동안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올해 한화그룹이 축제 예산으로 쓴 130억 원 가운데 45억 원은 안전관리에만 썼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전했던 건 보이지 않는 이들이 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사(無事)한 하루였다.
어쩌면 추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축제가 끝난 뒤의 현장을 잘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야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백만 명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헌신과 수고 덕분이라는 걸 물론 평소에는 대체로 잊기 마련이다. 생의 매 순간 거기 한가운데에서는 그 의미나 윤곽을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지나와야만 비로소 그 잔영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연기가 되고 이내 사라질 저 빛깔들이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가만히 비추는 일을 느끼고 함께 목격하는 시간은 금세 지나가고 과거 어느날의 일로 자리잡는다. 여의도 한강변을 따라 섬을 빠져나온 뒤 빽빽하게 사람이 들어찬 그 버스를 가까스로 타고 내려 모둠곱창에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 밤과 자정이 넘어 마신 칵테일의 맛. 가을 문턱에서 살아갈 날들을 새로 열어젖히던 그 여름의 끝. 영국팀의 불꽃쇼 중 삽입된 노래 가사처럼 빛이 우리의 하루를 이끌어주는 듯했다. 우리가 본 불꽃은 지나온 시간만이 아니라 다가올 시간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의 안전은 자연스럽게 내년에 있을 축제를 기약하는 일이기도 할 것 같다.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Coldplay, 「Fix You」
축제에 다녀온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어제까지는 없었던 빛을 오늘 새로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친구를 택시 태워 보내고 걸어오는 동안 불꽃에 선곡되었던 노래들을 떠올린다. 혼자서 하는 일은 추억이 되지 않는다고 어느 소설가가 산문에 쓴 것처럼, 일행과 같은 몇 시간을 공유했기에 만들어진 기억. 내게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처럼 친구에게도 그랬기를 바라다 보면 공동의 시간을 선물하고 한 추억을 만드는 일과 함께 누군가의 안녕을 지켜내는 일도 놓치지 않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하루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배웅해주는 쪽, 어깨를 살짝 감싸 다독여주거나 차도 대신 인도 쪽으로 끌어주거나 집으로 향하는 택시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해주는 쪽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무사를 바란다. 네가 무사하지 않으면 나도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확실함을 걷어내는 하루들이 쌓여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축제가 있은 다음주에는 킨텍스에서 일본의 밴드 '백 넘버'(back number, バックナンバー)의 첫 내한 공연이 있었다. 일찌감치 티켓 예매에 실패했다가 운 좋게 구하게 된 취소표는 스탠딩 구역의 두 자리였다. 나보다 오래 백 넘버를 좋아해 온, 불꽃축제 뒤 문래동에서 술자리에 합류했던 친구와 함께 갔다. 공연장 외부 스피커에서 미리부터 재생되던 노래들과 입장을 대기하던 길고 긴 줄. 손목에 종이팔찌를 두른 채 스탠딩 D구역의 먼 발치에서 본 사람들의 뒷모습과 그들의 땀냄새 같은 것들이 하루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모든 노래를 따라부르던 이들의 화음, 다음날 공연 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는 후일담을 들을 만큼 목청껏 아낌없이 열창하던 시미즈(보컬)의 무대 전체를 채우는 에너지가 공기 중으로 피부에 다가왔다. 언어가 달라도 같은 걸 보고 즐거워하며 감격하는 순간들의 공명이었다.
팬들의 환대에 감명을 받은 시미즈의 눈가가 붉어지는 모습, 기다리던 세트리스트 중 하나인 '수평선(水平線, Suiheisen)'의 전주와 첫 소절이 흘러나오던 순간 일행의 눈이 촉촉하게 깊어지던 때를 필름처럼 기억한다. 수평선을 부르기 전, 무대 조정 시간을 위해 삽입된 브리지 영상은 2009년 당시의 백 넘버 멤버들이 일기처럼 쓴 기록들이었다. '좋은 라이브를 계속하다 보면 이것도 평범한 공연이 되는 건가?'라든가, '마음을 다해 노래하면 좋겠어' 같은 말들. 공연장 내에서 일체의 촬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무대에서 진심을 쏟아 노래하는 그들과 함께 서 있던 순간을 추억으로서 또렷이 감각하고 세공할 수 있었다. 스탠딩 구역이어서만 가능했던, 특유의 시공간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찰나들을.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함께 호흡하며 가사를 고스란히 외우고 전주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떠들썩하게 아는 이들의 실시간 환호성과 공연이 끝나가는 걸 아쉬워하는 탄식을 안다. 그 두 시간은 다른 것으로는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앵콜 무대 후 잘 통제된 안내 동선을 따라 스탠딩 구역을 빠져나온 우리는 이태원의 예약해 둔 한식 주점으로 향했다. 같은 공연을 보고 왔음을 알 수 있는 MD 티셔츠 따위를 입은 사람들이 GTX 열차 안에 여기저기 보였다. 역 하나 정도를 지나니 자리가 났고, 우리는 나이가 드니 오래 서 있기 힘들다고 서로 웃었다. 봉준호 감독이 다녀갔다는 주점 안쪽 테이블에서 항정수육을 집어 먹는 동안, 요즘의 근황이나 읽고 있는 바카라, 쓰는 글 따위를 평소처럼 나누다 우리는 자리에 없는 친구의 안부도 걱정해가며 우리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편이 되자고 했다. 약속해. 네가 부르면 무슨 일이든 달려가고 말없이 잔 기울이겠다고. 안부를 확인한다는 건 단지 잘 있는지 확인 정도만 하는 게 아니라 그가 안녕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나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국 가수의 내한공연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벤트지만 그렇게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순간을 평범한 하루로서 안전하게 간직하는 곳은 일상의 공간이다. 이 보통의 하루가 대체되지 않을 추억이 되어가는 순간에 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해방촌과 경리단길 일대에서는 '블록 파티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몇 군데 바와 펍에서는 디제잉에 맞춰 사람들이 내일이 없을 듯이 몸을 흔들고 있었고, 우리도 적당히 잭콕을 곁들여가며 붉은 숏컷을 한 디제이가 손놀림과 무대 장악력이 예사롭지 않다며 칭송했다. 잘 뛰어놀 줄 모르고 춤처럼 몸 쓰는 일에도 영 소질이 없지만 그래도 신이 났다.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뒤엉킨 바의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엔 그가 잘 오고 있는지 뒤를 확인했다. 거리를 걷다 어느 부동산 가게 이름이 '괴테 부동산'인 걸 보면서 폭소했고, 또 걸어서 장소를 옮겨서는 국물이 당긴다며 오뎅 나베를 시켜 먹었다. 새벽 거리를 걷다 하늘이 분홍빛을 내보이며 동이 틀 무렵 택시를 태워 보내고 나도 택시를 탔다.
계절이 바뀌는 문턱을 여러 경로의 문화 이벤트나 덕질, 행사 같은 것들을 함께하며 혼자서는 누릴 수 없었을 해상도로 보내고 있다. 평소에 굳이 잘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나는 불현듯 친구가 탄 여객기가 목적지에 잘 내렸는지 궁금하고 택시가 집 앞에 잘 당도했는지 염려하기도 한다. 신경 쓰인다는 쪽이 좀 더 정확하다. 무슨 사고라도 났으면 어떡하지. 너무 밤늦은 시간이라 혼자 다니는 데 별 일 없으려나. 물론 일어나지 않은 일을 항상 당겨 걱정하는 편은 아니고 무소식이 희소식일 수 있음을 잘 안다. 단지 다시 평범한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 하루는 괜찮은지 어딘가에서 울고 있지는 않은지 그저 잘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헤어질 때 내가 하는 인사는 "잘 도착하면 알려줘"가 됐다. 축제를, 콘서트를 잘 즐기는 게 전부가 아니라 무사한 내일이 되어 그걸 함께 보낸 어제로 각인할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나날을 혼자 만들기는 어렵다. 군중이 같은 걸 보러 오는 그 몇 시간을 위해 길게는 일 년 내내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과 불편을 감내하는 사람들, 누군가 축제를 무사히 즐기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끝까지 확인해야만 비로소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쉬지 못한 그들 덕에 주말 오후와 저녁의 사소한 몇 시간은 유일해진다. 그렇게 지켜진 안전 속에서, 지금의 내가 이렇게 안온하게 글을 기록할 수 있는 건 추억이 추억일 수 있도록 곁에 안녕히 있어준 이들 덕분이다. 저 축제를 내년에도 보게 될 일이 있을지, 백 넘버가 다시 내한해줄지 그렇다면 그 공연은 누구와 함께일지 같은 건 알 리가 없다.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만 하는 건 제법 막연한 일이다. 다만 미래의 추억과 행복을 바람대로 미리 취해서 여기 가져다 두는 마음은 내게는 마치 선명한 오감처럼 벌써 다가와 있다. 당겨 놓아둔 불꽃의 발사대 앞에서, 울고 난 뒤의 말개진 하늘처럼 슬픈 것도 아름다운 것도 지나 언젠가 귓가에 번져오는 그 노래가 만들어내는 수평선 너머의 풍경이 얼마나 빛나는지, 너와 함께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해 줄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 정말 다 잘 될 거야. 그러기 위해 살아 있을 거야. 그렇게 다시 말해주면서.
"水平線が光る朝に
수평선이 빛나는 아침에
あなたの希望が崩れ落ちて
당신의 희망이 무너져 내려버려서
風に飛ばされる欠片に
바람에 흩날리는 조각에
誰かが綺麗と呟いてる
누군가는 예쁘다고 속삭일 거야
悲しい声で歌いながら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いつしか海に流れ着いて光って
어느덧 바다에 이르러 밝게 빛나면
あなたはそれを見るでしょう
당신은 그걸 바라보겠지"
-back number, 「水平線」
*축제의 공식 명칭은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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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열심히 사랑할 거야
더 많이 더 오래 성실하게
엉망진창이어도
꼭 살아 있자 우리"
-박은지, 『여름 상설 공연』,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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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추억으로 우리는 죽음과 맞설 수도 있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마음의숲, 2012,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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