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2026) 리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몇 년 전 다시 보고 이런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영화 <인 디 에어>(2009)를 보고 생각난 영화 중에는 <터미널>(2004)도 있었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앤디'(앤 해서웨이)의 면접관에게 추천서를 써준 장면을 생각했기 때문인데, 짧고 명료하게 '미란다'는 "그 사람(앤디)을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 썼다. <인 디 에어>에서 '라이언'(조지 클루니) 역시 '나탈리'(안나 켄드릭)의 면접관에게 같은 일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업무 역량을 보여준다는 건 어떤 것일까.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회사에 오래 근속하는 것? 그것만은 아니리라는 게 <인 디 에어>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서 하게 되는 생각이다.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식의 발견 내지는 영감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겠다. 그리하여, 누군가 자신을 일컬어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결정'이라고 대신 말해줄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 하나 더 생각하면 '미란다'와 함께 일하며 '앤디'에게 조력자가 돼주는 '나이젤'(스탠리 투치)은, 결과만 놓고 보면 <터미널>의 '딕슨'(스탠리 투치)으로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시간을 넘어 이야기는 돌고 돈다. (2019.02.23.)
시간이 흘러 이 영화의 2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그것도 같은 연출자와 각본가와 네 명의 출연진이 그대로 이어서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든 생각은 그래서 ‘런웨이의 그들은 잘 살고 있었을까’ 같은 것이었다. 잘 있었을까. 런웨이를 떠난 앤디는, 재클린에게 밀렸던 나이젤은, 그리고 여전히 ‘에밀리’로 일하고 있던 에밀리는.
20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는 영화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영화 안에서도 꽤 적잖은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종이 잡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 아니 긴 글을 제 힘으로 읽는 일 자체가 쓸모에 있어선 무용할지도 모른다고 자조해야 하는, ‘저널리즘’이나 ‘예술’이 아니라 살아남는 일이 우선적으로 당면한 과제가 되어 있는 2026년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역들을 영화 바깥에서는 다시 한번, 그리고 영화 안에서는 관객들이 미처 헤아릴 수 없을 지난한 세월을 통과해 스크린에 당도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2026)는 전편과 비교당하기 딱 좋은 속편의 숙명을 과감히 끌어안는다. 3,500만 달러 남짓의 제작비가 들어갔던 전편에 비해, 네 배우(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를 다시 불러 모으는 것 자체와 패션과 명품 세계의 여러 명암을 보여주는 일과 속편의 어떤 야심을 구현하는 일 자체가 일단 제작비를 크게 끌어올렸을 것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 기준, 정확한 제작비가 공식적으로 언급/공개된 바는 없지만 최소 1억 달러 이상은 들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전편에서 바로 그 ‘미란다’의 신입 비서로 일하게 되었던 앤디가 옷 입는 스타일로 보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로 보나 여러 방면에서의 성장통을 겪는 인물이었다면 20년 뒤의 앤디(앤 해서웨이)는 탐사 보도 매체의 관록 있는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그 매체가 구조조정으로 해고를 통보하면서 먹고사는 일과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모습으로 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서 처음 등장한다. 앤디만 달라진 게 아니다. 전편에서 ‘런웨이’의 절대적인 존재로 보였던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모기업 회장의 지시사항이나 자신의 승진(미국 ‘런웨이’의 편집장에서 글로벌 콘텐츠 총괄 임원으로 오르는)을 신경 써야 하고 나이젤 역시 겉으로는 변함없이 런웨이를 지킨 것으로 보이나 제 나름의 위치에서 분투해 왔을 것.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디올에서 일하며 새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와중에 노동 환경과 관련한 패션 업계의 부조리를 조명한 기사에 미란다가 연루되며 앤디는 언론 업계 시상식에서 자신이 한 연설 덕분에 미란다와 런웨이의 평판(나아가 위기관리) 문제를 담당할 특집 보도팀 에디터로 런웨이의 모기업 회장에 의해 채용된다. (즉 20년 만에 런웨이에 복귀하게 되는 것)
이렇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20년 전 스크린에서 만났던 그 인물들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영화 속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를 한동안 조명하고 난 뒤 ‘다시’ 함께 일하게 된 그들이 작중 일어나는 상황과 사건에 대처하면서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담는다. 단, 지나치게 진지해지지는 않으면서 업계의 발 빠른 트렌드 변화와 화려해 보이는 명품 브랜드와 패션계의 풍경, 앤디의 보조 비서로 새로 합류하게 된 진 차오(선위톈)를 아울러 영화 특유의 경쾌함을 유지한다. 가령 특정한 유명인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로 한 앤디가 없는 연줄을 짜내어 연락처를 수소문하는 한 에피소드는 앤디의 여러 날에 걸친 출근길 복장을 (‘런웨이’라는 매체명답게) 출근길이나 사옥 로비에서의 걷는 장면들을 편집해 보여주고 시상식이나 저녁 사교 모임 자리에서 복장을 고민하는 앤디에게 나이젤은 전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며 여러 브랜드의 적절한 상하의 및 액세서리를 골라준다.
매체의 환경 변화와 맞물려 런웨이의 모기업 및 회장과 관련된 어떤 일들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작 초반 ‘진짜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싶어 하던, 나아가 20년 만에 돌아오게 된 런웨이를 잠시 거쳐가는 곳 정도로 내심 생각 중이던 앤디는 모종의 계기로 런웨이를 ’지켜내기 위한‘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된다. 난제나 시련처럼 일어났던 일들도 상술한 영화의 톤에 의한 의도로 납득할 만한 정도로 매듭지어지거나 지나간다. (이 선택에 납득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작중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밀라노에서의 패션쇼를 거치고 난 뒤 차 안에서 앤디와 미란다가 나누는 대화가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대목이다. 일을 사랑하고 매진한다는 것에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 것은 물론, 오랜 시간을 지나온 두 사람의 관계성이 그저 몇 개의 대화 신만으로 충실하고 세밀하게 담긴 것에 대해 뭉클함 감상을 갖게 된다. 때로는 그저 운명이나 운으로 모든 게 펼쳐지는 게 아니라 쌓여온 관계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어떤 선택과 어떻게든 될 거라는 낙관과 어떻게든 되어야만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 앙숙이거나 잘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과 오랜 시간이 지나,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기도 하다는 것. 내 일이라고 생각한 업적이 실은 혼자만의 힘으론 해낼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
“But lately, I’m missing all the signs
blinded by the champagne lens
running out of time, should I watch it burn and start again?”
-Lady Gaga, ‘Glamorous Life’에서
요컨대 이 영화는 화려함 속에서 나를 지키는 일과 자신이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가치관과 직업관,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변화해 가는 관계의 양상을 고루 조명하고 질문하면서 20년을 거쳐온 인물들의 약간의 주름과 고단함, 힐을 벗어던지고 난 뒤의 노곤한 밤 도시 야경을 보며 아파트에서 맞는 혼자의 시간을 잊지 않는 너른 품의 이야기 같다. 강산이 두 번 정도 변할 만큼의 시간을 지나온 네 사람이 이제는 제법 친구처럼 느껴진다.
자기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성미가 급하고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그러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놓쳐버리기도 하는 자신을 알고, 한결같이 자길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고, 모든 화려한 것들에는 대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라고. 그런 데도 그 불완전한 자신이 언젠가 또 새로운 걸 알게 될 것임을 받아들이고 (일단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더라도 제 품위와 업적이 남으리라는 걸 끝까지 믿어보는 것이라고. 미란다, 앤디, 에밀리, 나이젤이 20년을 지나 함께 말해주고 있었다. 스스로의 커리어와 성장을 지나 보다 넓은 세계의 변화와 흐름을 끌어안거나 휩쓸리지 않으려 애쓰던 채로 그들 각자의 위치에서 여전히 자기 감각과 자존을 잃지 않은 채로. 어떤 종류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 속 인물들이 거기 계속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느낌을 갖거나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꼭 그랬다. 그리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내게 그 가치와 의미는 물론 즐거움도 충분한, 있을 만한 위치에 있어준 속편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물들 간의 케미스트리 자체가, 이 영화를 납득하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운드트랙인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들으며 극장을 나선다.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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