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by잎새 그리고


얼마 전 출근을 하다가 무심코 듣던 노래 한 곡이 마음에 들어왔다.
노래 제목을 봤더니,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였다.



이 제목을 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봐도 어린 시절,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깊이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제약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그 정도.


조심스레 기억을 더듬어봤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떤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기억이 났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어른이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내 존재의 근원인 그분들의 단점만 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은 그랬다.

할아버지는 고집스러우셨고, 할머니는 억척스러우셨다.
아버지는 불만이 많으셨고, 어머니는 답답한 일이 있어도 참고만 사셨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미처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에 주렁주렁 자식들을 낳아 먹여 살리기 바빴다. 아버지는 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장남의 역할을 하느라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하필 어린 시동생들이 많은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모진 세월을 버티며, 화내기보다 참고 사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그런 사정까지 보일 리 없었다.

‘나는 저런 모습으로 살지 말아야지.’



그런데 어느덧 내가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어른들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냐고?

아니.
결단코. 절대로.

어쩌면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했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나는 매사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 어린 표정으로 내가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삶의 여유를 스스로 갉아먹으며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다.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기를 부리며 한 길만 고집하고 있었다.
옳지 못한 일에 입바른 소리 한번 내지도 못하면서, 애먼 아내와 아들만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떠올리니 씁쓸해졌다.

아니, 조금 불쌍해졌다.

그토록 닮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좋은 글감이 아니네.’



노트북을 닫으려던 찰나, 누군가 나에게 소리쳤다.

‘아냐! 잠깐만. 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어.’

또 다른 내가 말했다.

천천히 곱씹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나도 분명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학교를 그만두려 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다시 교단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교생선생님-

“눈, 코, 입이 참 멋져. 합쳐 놓았다고 해서 이상하다는 말은 아니야.”

-고등학교 친구-

“좋은 담임 선생님 만나서 너희들은 행운인 줄 알아라.”

-이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학부모-

“그래도 괜찮은 아빠고, 남편이야.”

-아내-


그리고 내가 나에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잖아.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그러고 보니 나는 나름 썩 괜찮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내 모습 속에도 나쁘지 않은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불만 어린 시선은 불평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를 만들려고 노력하게 했다. 배움이 넘치는 교실을 만들고 싶었고, 조금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고집과 억척스러움도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끝을 보려고 했다. 학급 담임을 하며 내가 만난 아이들에게 해마다 문집을 만들어 선물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고, 글을 쓰고 있다.

참는다는 것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 화를 내면 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한번 상한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금씩 기다려보게 되었다. 사람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앞서 떠올렸던 어른들이 다시 생각났다.

할아버지의 고집도, 할머니의 억척스러움도, 아버지의 불만도, 어머니의 참음도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삶을 버텨내는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옳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모습을 단지 싫다고만 말하기는 어려워졌다.

나도 어른이 되어보니 알 것 같아서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늘 옳은 것도 아니었다.
어른도 여전히 서툴고, 가끔은 엉뚱한 선택을 하고, 후회하고, 다시 배워가는 사람이었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이번에는 이 메시지를 조금 다르게 읽어보기로 했다.


‘꿈꾸는 어른이 되었나요?’

그렇다면 아직 대답할 시간은 남아 있는 것 같다.

조금 덜 찌푸리고,
조금 덜 서두르고,
조금은 여유롭게.

지금의 내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를 자꾸 되돌아보기보다,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꿈꾸던 어른이 되었냐고?

꿈꿔본 적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꿈꾸는 어른이 되었냐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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