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작고 약했던 아이
이 글을 쓰기 두어 달 전쯤 온라인카지노에서 오탁구 작가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머리 쓰기 싫어서 시작한 몸 쓰기'라는 연재 글, 다양한 운동을 배우며 멋진 중년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분의 글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사실 탁구가 아니라, 복싱에 대한 이야기였다. 복싱을 배우며 조금씩 몸이 단단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는 말에 그 모습과 노력을 응원하게 되었다. 덕분에 잘 남기지 않는 답글까지 쓰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나의 어린 시절 해묵은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사실은 나도 복싱을 배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복싱을 배우게 된 이유는 링 위에 있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 학교라는 작은 세상에 있었다.
어릴 때 나는 아주 약하고 작은 아이였다.
잘 먹지 않았다. 먹는 것보다 뛰어노는 것이 좋았고, 밥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키도 작고 몸도 말랐다. 초등학교 시절 통지표를 꺼내 보니,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들의 키와 몸무게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키는 조금씩 자랐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가늘었다. 내가 여자였다면 어쩌면 모델 체형이라 할 만큼 괜찮은 몸매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왜소한 아이일 뿐이었다.
그 시절 학교는 지금과 달랐다.
싸움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도 있었고, 운동장에서도 있었고, 하굣길에서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마다 우리를 지켜줘야 하는 선생님은 늘 곁에 계시지 않았다. 누군가 괴롭히면 스스로 버텨야 했고, 맞서 싸우든 참고 견디든 그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일곱 살 많은 친형은 그런 내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형 때는 더 심했을 테니까.
가끔 맞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형은 "누가 그랬냐?"며 나를 때린 누군가를 찾아가 혼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어쩌다 맞았어?"라고 물었다.
형은 내 마음을 달래주며, 다음번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었다.
형은 나 대신 싸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는 처음에 분명 나에게 친절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고 아무 이유 없이 툭 치고 지나가며 짓궂은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키도 크고 무도 단증 같은 것도 있는 아이였다. 어느 날 실외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 심부름으로 몇몇 아이들과 함께 교실로 오게 되었고 마침 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아이는 계속 놀렸다. 순간 참아오던 분노가 폭발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결국 주먹을 한 번 내질렀다. 내 주먹이 그 아이의 코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무방비 상태에서 일격을 당한 그 아이는 전의를 상실했고 싸움(?)은 그대로 끝났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형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형은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그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기 일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잘했다. 잘했어."
그동안 늘 당하기만 하던 동생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는 사실이 형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른 뒤에 후회와 분함이 따라왔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나?’
'왜 자꾸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내가 작고 약해 보여서 그런가?'
그런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세상은 조금 더 거칠어졌다.
여러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는 큰 학교였다. 남학생들만 있는 반이었고, 힘의 질서는 생각보다 분명했다.
다행히 1학년 때는 같은 반에서 덩치가 가장 크고 힘이 센 친구가 나를 좋게 봐주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장난기 많기로 소문난 한 녀석이 내가 작고 만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나를 발로 차더니 뛰어갔다.
나도 참지 않고 따라가서 그 애를 발로 찼다.
그 애는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흘겨보더니 주먹으로 내 얼굴을 한 대 때렸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결국 둘이서 옥신각신 하다가 학교에서 가장 무섭다는 선생님께 딱 걸리게 되었다.
억울했지만, 나는 쌍방 폭행 가해자가 되었다. 둘 다 교무실로 끌려가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들고 벌을 섰다.
"얌전하게 생긴녀석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나가던 선생님이 나를 보며 꿀밤을 때리더니 한 마디 했다.
그 일은 금세 학급 전체에 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싸운 상대는 원래부터 작고 약한 아이들을 자주 괴롭히는 악명 높은 아이였다.
학급의 짱이라 부르는 친구와 몇몇 그를 따르는 녀석들이 내게 와서 말했다.
"너, OO이랑 싸웠다고? 잘했어. 걔는 내가 한 번 혼내주려 했는데. 아무튼 대단하다. 앞으로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
그 말 덕분이었을까.
2학년까지는 큰 문제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담임 선생님은 폭력으로 학생들을 다스렸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소위 저항적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심하게 때렸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한두 번의 일이 아니었다. 시기를 달리해 네댓 명의 친구가 차례로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교실에 있던 우리는 두려움에 떤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사가 된 지금,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즘 학교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민원 중 일부에는 어쩌면 학부모 자신이 학창 시절에 겪었던 쓰라린 기억도 조금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그때의 교실을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상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심한 일을 겪은 친구들은 하나둘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친구들 모두 전학을 가거나 학교를 그만뒀다. 1,2학년 때 나를 은근히 챙겨주던 짱도 결국 학교를 떠났다. 그 빈자리는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아이들로 채워졌다.
이상하게도 새로 온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거칠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3학년 2학기 수학여행을 갔던 첫날밤이었다.
반 학생들 모두가 큰 방 하나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 불을 껐고 베개를 던졌다. 곧 베개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모두 웃으며 흔히 그렇듯 베개싸움을 즐겼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학 온 두 아이가 맞붙었다.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한 아이 하나와 키가 크고 깡마른 아이였다. 서로 베개를 던지다가 감정싸움이 일어났다.
갑자기 불이 켜졌고 욕설이 오갔다. 우락부락한 아이는 화를 내며 따졌다. 깡마른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짜고 자기만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감정싸움이 심해지자 우락부락한 아이는 밖으로 나갔다. 깡마른 아이는 밖으로 나간 아이를 비웃으며 욕을 했다.
잠시 후 큰 소동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잠시 뒤에 선생님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왔고, 다친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삼십 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날의 장면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이후였다.
문제를 일으킨 우락부락한 아이는 학교에 다시 나오지 않았다. 깡마른 아이는 며칠 결석하더니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깡마른 아이는 갑자기 자신이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이소룡 흉내를 내며 교실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중학교 3학년의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겨울 아침이면 난로 당번이 불을 붙여 난로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일찍 온 친구들은 난로가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손을 녹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평소에 늦게 오던 깡마른 아이가 일찍 등교했다.
기척도 없이 내 뒤로 다가와서는 손바닥을 쫙 펴서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당당하게 내게 말했다.
"왜 내 의자에 앉아 있어?"
내가 당황해서 억울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 녀석은 뒤로 물러서더니, 평소처럼 이소룡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의자는 분명 내가 내 바카라상 밑에서 가져온 나의 의자였고 나는 대단히 많이 화가 났다.
하지만 주먹을 쥐지는 않았다.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그보다 나는 그 싸움에서 내가 얻을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가 가장 기다렸던 것은 방학도 아니었고 시험이 끝나는 날도 아니었다.
졸업이었다.
그 일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보고 겪었던 일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나는 점점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그 거친 시간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열다섯 살이던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