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
영어는 오랫동안 내 삶의 숙제였다.
서른 중반까지 '올해만큼은 꼭 영어를 마스터 해보자.'라고 해마다 같은 다짐을 반복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모국어도 제대로 마스터한 적이 없는데, 외국어를?
지나가던 소가 웃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서른 살 무렵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개인 과외를 해주던 미국인 선생에게도 했다.
"내 영어 실력 어때? 너네 나라 초등학교 3학년 아이 수준쯤 되어 보이지 않아?"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민망한 질문이었다. 언어 습득과 학습의 차이도 모르던 나는 진지했고, 미국인 선생은 당황했지만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의 영어 흑역사는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알파벳을 배웠다. 대학에 다니던 친형은 보다 못해 겨울방학 동안 사전 외우기를 시켰다.
알파벳을 갓 뗀 중학생에게 archeologist, astrology, aristocracy 같은 단어를 외우게 했다.
물론 며칠 만에 내 반항으로 끝났다. 지금 생각해도 하루에 50~100개씩 아무 맥락 없이 단어를 외우던 그 겨울은 끔찍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 우수반에서 성문 기본영어와 종합영어를 배웠다.
선생님은 문장을 통째로 외우게 했고, 틀리면 손바닥을 맞았다.
어느 날 한 여학생이 숙제를 안 해와 사랑의 매를 숨겨 놓았다.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과학실 계수대에서 굵은 호스를 뽑아 오셨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아팠다.
그 이후 사랑의 매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영어 회화반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내준 과제는 경복궁에 가서 외국인과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자신만만했다.
한 중년 외국인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말했다.
"Can I take a picture?"
그게 내가 준비한 영어의 전부였다.
그 외국인은 우리 몸짓을 보고는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뭐, 별것도 아니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영어로 대화를 해 보라는 뜻이었는데 우리는 사진만 얻어 왔다.
고3 때는 지역 영어 경시대회에서 2등도 했다.
괜히 영어에 자신감이 생겼다.
대학에 들어가 토익을 봤다.
600점이었다.
'성문영어 문장을 그렇게 외웠는데... 다 어디 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시험 영어와 살아 있는 영어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군 전역 후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되었다.
6학년 체육을 맡았는데 시수가 남는다며 3학년 영어를 맡겼다.
'앗, 영어를? 내가?'
교감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를 정말 좋아했다.
노래 부르고 율동하고 함께 놀았다.
미국 이름도 하나 지었다.
'마이클.'
그런데 하굣길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나를 보고 외쳤다.
"마이클! 마이클!"
아차.
내 성 앞에 '미스터(Mr.)'를 붙이라는 말을 안 했다. 녀석들에게 나는 그냥 친구였다.
어쩐지 나를 너무 좋아하더라.
인도를 거쳐 중국 국제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홍콩 출신 중학생 한 명이 갑자기 나에게 친한척 말을 걸었다.
"우리 친구지? 내가 네 이름 불러도 될까?"
나는 크게 혼을 냈다.
처음에는 내가 한국인이라 만만하게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순박한 아일랜드 출신 교사에게도 똑같이 했다가 학교에 소문날 정도로 크게 혼났다고 했다.
사실 이 글에서 영어에 대한 흑역사를 늘어놓은 이유는 민망했던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도 나름 영어 공부만큼은 치열하게 했다.
몇 년 동안 새벽에는 영어회화 학원에 다녔고, 부족하다 느껴서 원어민 개인 교습도 받았다.
서른 무렵에는 친누나에게 돈을 빌려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인도 국제학교 교사가 되었고, 이후에는 중국 국제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영어로 수업을 하고 한국인 학부모 간담회 통역도 맡았다.
회의 시간마다 한마디를 이해하려 애썼고, 통역을 앞둔 어느 날 밤에는 화장실에서 혼자 운 적도 있다.
BBC 뉴스를 듣고, 자막 없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어떻게든 버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풀어야 했던 숙제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웃던 남아공 출신 영어강사 폴.
인도 기숙사 복도 중앙 소파에 앉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간호사 린다.
한국에 올리브유를 수출하고 싶다던 영국의 어학원 친구인 변호사 까꼬(별칭).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서 만났던 사람들.
사실 나는 지금도 영어를 잘 못한다.
핑계를 대자면 '용불용설'을 강하게 믿는다.
안 쓰면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외국 생활을 오래했으니 영어를 잘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늘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인도에 있을 때, 주말에 가끔 같이 어울려 놀던 영국인 교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본 적이 있다.
"Am I bad at English?"
"Honestly? Yeah. You're terrible."
"But we're still friends."
그 소리에 우리 둘은 한참을 웃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이 내게 원했던 것은 원어민 같은 영어가 아니었다. 함께 웃고, 함께 일하며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영어를 공부하며 가장 늦게 배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