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기다림

by잎새 그리고

몇 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건만….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는 않았지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폐엽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하필 전공의 파업이 무르익고 있는 시점이었다. 수술 날짜는 생각보다 늦게 잡혔다.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수술받을 수 있는 다른 병원을 찾아보라고 했다. 몰랐으면 몰라도, 암이라는 것이 내 몸에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수술 일정을 좀 당겨야 할 것 같아요. 원래 받기로 하셨던 분이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수술을 받기 어려울 것 같네요.”

병원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토록 기다렸을 수술이었을 텐데. 나는 누군가를 애태우던 그 자리에 들어가 조금 일찍 수술을 받게 되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어떤 분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



며칠 후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기 전 의료진은 다섯 개의 폐엽 중 하나를 제거할 거라고 다시 설명했다.

“수술하면 회복이 빠른 사람들은 사나흘이면 퇴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수술방에 들어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수술실에서 병실로 이동하고 있었는지, 이미 병실에 도착해 있었는지도 기억이 흐릿하다.

수술 후 몇 시간이 지나자 마취가 깨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몸에는 여러 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몇 걸음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번은 갑자기 가슴이 뜨겁고 답답해져 급히 간호사를 불렀다. 몸에 연결된 관 하나가 꼬여 있었다고 했다.

잠시 안정을 찾았지만 통증은 계속되었다. 아내가 간호사실에 연락했고, 간호사는 조금 지나면 좋아질 거라며 진통제를 놓아주었다. 그제야 잠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같은 병실의 다른 침상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 기침은 내가 수술받은 날에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인 듯했다. 간호사가 올 때마다 약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좀 바꿔달라고 말씀하셨지만, 결코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돌 때 몇 마디 나누는 이야기도 들렸다. 수술 날짜를 조율해야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을 뿐, 그 외의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올 때마다 긴 한숨을 내쉬며 식사를 잘 못하겠다고 하실 뿐, 다른 말씀도 별로 없으셨다.



그분과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수술 후 사흘쯤 되는 날이었다.


의료진이 수술 후에는 운동을 해야 빨리 회복된다고 해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하루 전만 해도 100미터 남짓 될까 말까 한 병원 통로를 몇 바퀴 도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숨이 벅찼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니 제법 오랫동안 걸을 수 있었다.


한참 병원 복도를 걷다가 병실로 돌아와서야 기침 소리로만 들었던 그분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늘 커튼을 쳐두었기에 그분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했고, 사실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차트에 적힌 여든의 나이만큼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그분은 나를 보더니 나의 상태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아마 하루 이틀 후에는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은 몇 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았는데 상태가 나빠져 다시 수술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을 받으려면 몸의 수치가 적정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좀처럼 수술할 만큼 수치가 올라오지 않아 한 달째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언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은 자신의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수술 자국을 처음 보았다. 깊고 오랜 수술의 흔적이 피부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야 내 수술 자국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분의 몸에 남아 있던 흔적과 비교하면 내 몸의 흔적은 놀랄 만큼 작아 보였다.

물론 상처의 크기로 한 사람이 겪은 두려움의 크기까지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당시의 나는 수술을 받고 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는 언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수술을 한 달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잘 회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분의 표정은 참 밝았다.

“너무 걱정 마요. 빠르면 내일쯤 퇴원할 거예요.”



생각해 보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기억이다.

나는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조금 일찍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받은 뒤에는 병원에서 나갈 날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분은 나와 상황이 달랐다.

병원에서 나가는 날이 아니라 다시 수술실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하루 회복하면서 기다림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그분의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내 퇴원은 주말이 끼면서 예상보다 며칠 늦어졌다. 하지만 수술 당일에는 몇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꽤 긴 거리를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그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예의를 갖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르신, 얼른 수술받으시고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아, 그래야지. 젊은 양반도 잘 살아요.”

마흔이 훌쩍 넘었건만 ‘젊은 양반’이라는 말을 들으니 새삼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그분이 수술을 받으셨는지, 잘 회복하셨는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어느 곳에 계시든 그 너그럽고 고운 마음 그대로, 아프지 않고 행복하시길 바란다.





수술 직후의 일이라 당시의 기억이 많이 흐릿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잠시 꿈속에서 그분을 만났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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