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 생긴 일
10여 년 전 아내와 나는 2년 정도 인도의 한 국제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인도 생활 에피소드가 참 많지만, 오늘은 인도 가까이에 있는 두바이에 놀러 갔다 생긴 일을 꺼내 보려 한다.
사람들은 보통 두바이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를 떠올리겠지만, 나에게 있어 두바이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기억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서른 살이 넘도록 나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군 시절 훈련 중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전부일뿐이다. 그만큼 나는 물과 친하지 않았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수영장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물놀이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가본 국내 수영장은 깊어야 1.2~1.3미터 정도였고, 아내에게 배운 배영 흉내를 내며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힘들면 발을 바닥에 딛고 일어나면 그만이었다.
두바이 여행 이틀째.
시내 구경을 마친 우리는 하루쯤은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수영장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수영 좀 못하면 어때? 이렇게라도 즐기면 그만이지.'
이런 생각이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고, 그 오만함이 나를 위험에 빠뜨릴 줄은 몰랐다.
우리는 수영장에 자리를 잡고 각자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자유형으로 이곳저곳을 누볐고, 나는 평소처럼 배를 뒤집고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혼자 한참을 떠다니다가 몸을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발이 닿지 않았다.
'어?'
한 번 더 발을 내렸다.
여전히 허공이었다.
순간 당황했다.
'이상하네.'
발장구를 치며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헤어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누군가 내 발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물을 한두 모금 들이켰다.
'큰일 났다.'
그때부터 나의 동작은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살겠다고 양팔을 휘젓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면 마치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노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는 다른 쪽에서 유유히 수영을 하다가, 내가 죽을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신나게 노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였다.
백발의 천사였을지도 모를 하얀 머리의 중년 여성 한 분이 수영을 멈추고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무어라 무어라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Need some help?"라는 말만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급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Yes, please."
그녀는 능숙하게 나를 잡아채 물 밖으로 끌어냈다.
그 무렵 상황의 심각성을 안 구조요원이 뒤늦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미 나는 안전한 곳으로 끌려 나오고 있던 순간이었다. 물에 홀딱 젖은 구조요원은 멋쩍은 표정으로 내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영장은 1.2미터 구간과 2미터 구간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수심도 확인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물에 들어갔던 것이다.
몸을 추스른 후에 숙소로 돌아왔지만, 물을 많이 삼킨 탓인지 위경련이 찾아와 다음 날까지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깊은 물이 무서웠다.
하지만 이후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보유한 다른 국제학교로 옮기게 되면서 조금씩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시작했다. 배영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어깨너머로 평영을 배웠다. 처음에는 수영장 난간을 붙잡고 1미터만 앞으로 갔다 돌아오고, 다음에는 2미터, 그렇게 조금씩 거리를 늘려 결국 25미터를 헤엄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날 나를 구해 준 중년 여성이 없었다면 나는 더 큰 어려움에 빠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하루였지만, 그분에게는 어쩌면 평범한 오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글을 빌려 그때 전하지 못한 인사를 남기고 싶다.
그날,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