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는 것은 줄이고

by잎새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오래전 잠시 스친 인연으로 알게 된 교사 출신 작가 한 분이 얼마 전 카지노톡으로 연락을 해오셨다.


은퇴 후에 동시 필사를 하는데, 문득 이름이 보여 보내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마 나에게만 보내신 것은 아니었으리라. 살아오며 만난 많은 후배 가운데, 아무나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셨을 것이다.



반가웠다.


그래서 정말 반가움을 가득 담아 인사를 드렸다.


내 반응이 좋았던 탓인지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필사하신 시와 글을 보내주셨다.

공감이 가는 시를 읽고 몇 차례 장문의 답글을 보내게 되었다.

작가님도 좋으셨는지 평소보다 긴 답글로 응수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보낸 답글을 읽으시더니 물으셨다.


혹시 글을 쓰고 있지는 않느냐고.


사실 나는 글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글을 따로 쓰고 있지는 않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표현이 참 섬세하고 따뜻하다며, 조금씩이라도 글을 남겨놓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안다.


생각은 많지만 그것을 좋은 문장으로 잘 만들어내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두서가 없을 때도 많고, 가끔은 횡설수설 장황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말보다는 글이 조금 더 나은 사람이다.


작가님의 칭찬에 용기가 생겼다.


예전에 학급 회장선거에서 한 표를 받았던 아이가 있었다.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에게 건넨 작은 칭찬과 격려가 힘이 되었는지, 다음 해에는 회장이 되었다며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나도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무심코 건넨 한마디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한번 글을 꾸준히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직 시간은 많다.


당장 좋은 글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래 갈고닦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 나은 문장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프로필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했다.


가진 것도 없고, 해놓은 것도 없는데 무슨 내용으로 프로필을 채울까.


그런데 쓰다 보니 하나씩 늘어났다. 글이 쌓이고, 카지노 게임이 생기고, 소개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쓰다 보니 프로필까지 조금씩 거창해졌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온라인카지노에 쓴 글을 세어보니 서른 편이었다. 매일 한 편씩 쓴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한 달 동안 딱 서른 편의 글이 남았다.


그제야 조금 덜어내고 싶어졌다.


작가명을 바꾸고, 프로필에 붙여놓았던 여러 설명도 하나둘 걷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진 것이 없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굳이 나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것을 드러내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교실 이야기는 글 속에 있고, 그림 이야기도 글 속에 있다. 내가 만난 사람도, 지나온 시간도 이미 글 안에 조금씩 들어와 있다.


드러내는 것은 줄었지만, 안으로는 조금 더 채워졌다.


거추장스러운 포장을 하나씩 걷어내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졌다.


한 달 동안 워밍업을 했다.


이제 조금 더 오래 달려볼 생각이다.


마라톤을 뛰겠다면서 완전군장을 메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헤엄쳐서 해협을 건너려는데, 진하게 화장을 하고 멋진 턱시도를 입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볍게,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가면 된다.


쓰는 그대로.


쓰다가 나를 새로이 찾고,

쓰다가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며,

그러다 또 무엇인가를 만나면 그 이야기를 쓰면서.


그렇게 오래가고 싶다.


잎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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