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인사성이 좋은 아이였다.
학교에 가면 교실 문을 열기도 전에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동네 어른들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했고, 길가에서 붙잡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싫지 않았다. 어른들은 "그래, 잘 컸네." 하며 웃어 주셨고,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먼저 인사하는 일이 조금씩 어색해졌다.
얼마 전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나에 대해 했던 말을 전해 들었다.
"처음 학교에 오셨을 때 어떤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새로 오신 분이 있는데 나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하더라.'"
솔직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발령을 받아 온 학교였다. 누가 선생님인지, 방과 후 강사인지, 외부인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던 때였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할 만큼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전해 주시던 선생님이 웃으며 그분에게 한마디 덧붙였다고 했다.
"먼저 인사하면 되지,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 말을 듣고도 그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인사와 관련하여 교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이 있다.
어떤 아이는 교실 문을 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면 어떤 아이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향한다.
예전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저 아이는 집에서 부모님이 인사하라고 안 시키나?'
하지만 그 생각은 어느 순간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중간층에서 일흔쯤 되어 보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나는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 아들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왜 인사 안 했어?"
아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누군지 모르는데 왜 인사를 해야 해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따라가지 말라고, 위험하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반복해서 교육한다.
그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경계하는 법은 열심히 가르치면서, 사람과 따뜻하게 마주하는 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 이유만도 아니었다.
평소 아들은 친척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르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항상 어른이나 아는 사람을 만날 때에는 인사를 하라고 당부를 한다.
그런데 사실 아들은 누구보다 부끄러움이 많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을 매우 어려워하는 아이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언젠가부터인지 모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게 변해버렸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먼저 다가가던 내가, 어느새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친근한 말로 관계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상이 변해서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얼마 전 SNS에서 재미있는 글 하나를 봤다.
옆집 사람에게 붙인 쪽지였다.
"저희 집에서 먼저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조금 있다가 나와 주세요. 그게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지켜야 할 매너입니다."
댓글은 둘로 나뉘었다.
"너무 각박하다."
"그럴 수도 있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 어느 쪽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우리 옆집 아이가 떠올랐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먼저 인사를 했다.
며칠 뒤에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집에 놀러 가도 돼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더 친해지면."
사실은 친해질 기회를 내가 먼저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뒤에도 그 아이는 나를 볼 때마다 먼저 인사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집으로 초대하지 못했다.
괜히 부담스러웠다.
옆집 부모와는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문득 씁쓸했다.
어쩌면 나도, 우리 아이도, 그 아이도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하나를 바꾸기로 했다.
세상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러기로.
그것은 바로 먼저 인사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자주 가는 식당에서도,
버스를 탈 때도.
오늘도 버스를 타며 기사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던 기사님이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어서 오세요."
짧은 인사 한마디였지만, 버스 안의 공기가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물론 세상이 그 한마디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도 기사님도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먼저 인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