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지는 날

by잎새 그리고

분명히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떠올라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다가, 산바카라을 하기 위해 하천변을 걷다가, 평온한 오후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니면 주말 아침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불쑥 떠오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가지런히 바깥세상에 펼쳐 놓는 것이다. 정리를 하고 다듬고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대학 시절 배운 과정중심 글쓰기를 학급 담임이 되어 꽤 오랫동안 지도해 왔다.

최근 용어는 조금 다른지 모르지만, 내가 배울 당시에는 이랬다. 주어진 글감에 대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자유롭게 꺼내고, 그 생각들을 필요한 것들만 모아서 가지런히 정리하고, 그것을 한눈에 보기 쉬운 문장으로 구조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그 후 그 구조에 맞게 글을 써본다. 쓴 후에 이 글을 고쳐서 진짜 글로 만들어 낸다는 그 과정. 물론 이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앞뒤를 오갈 수 있다.


1. 생각 꺼내기- 2. 생각묶기- 3. 처음 쓰기- 4. 고쳐쓰기- 5. 완성하기


요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과정 중심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작년에 1학년 아이들을 만나서는 2학기쯤 1, 2, 3단계를 중심으로 글쓰기를 연습시켜 보았다. 교육과정의 수준을 생각하면 조금 이른 시도였지만, 실제로 만난 아이들 가운데에는 이미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기대를 내려놓고 한 문단 정도만 써볼까 했는데, 어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서너 문단을 넘게 쓰기도 했다.


초등학교 중학년 쯤되면, 잘 쓰는 아이들은 1단계부터 5단계까지 큰 어려움 없이 글을 쓰며, 자신의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펼쳐내곤 한다.


사실 이와 같은 나의 시도는 내 어린 시절 글쓰기를 생각해 볼 때,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시도와도 같았다.

선생님들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그게 일반적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어른들이 의례 하는 말이 있었다.

“바카라을 많이 읽으렴. 그러다 보면 글을 잘 쓰는 날이 올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바카라 속에는, 혹은 글 속에는 작가의 글 구조가 담겨 있고, 멋진 표현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작가가 쓴 멋진 표현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구조까지 파악해서 그대로 구현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언어능력이 남다른 친구들이라던가, 아니면 별도 글쓰기 수업을 들은 친구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 어떻게 써야 글을 잘 쓰는 것인지 배운 적이 없었고, 당시 글쓰기 대회는 나에게 그림의 떡과도 같았다.


대학시절 국어교육을 전공하며 글쓰기 교육을 오래 연구하신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과정중심 글쓰기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빛을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단, 이 빛은 내 글에 대한 빛이 아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글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내가 학생들의 글을 가지고 사전 실험을 통해 글쓰기 지도 전과 지도 후를 비교한 적은 없다. 다만,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문득 내년에는 그렇게 학생들을 지도해 보는 것도 좋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나는 학기 초 아이들에게 매주 1회 글쓰기 과제를 내주기 전에 먼저 글 쓰는 방법을 두 어시간 정도 안내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과정 중심 글쓰기 예시자료와 과거 학생들을 지도하며 잘 쓴 글 중 개인 정보를 제외한 예시자료를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먼저 보여준다.


물론, 학부모 총회 때 부모 교육도 함께 실시한다. 대부분 사십 대 중반, 많으면 오십 대 초반 학부모들이다 보니, 내가 보여주는 자료는 그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인 자료가 되며, 어떤 부모는 흔쾌히 나의 글쓰기 과제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며, 열정적으로 자녀를 지도하기도 한다.


학생 지도, 학부모 안내 이후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페이지 수가 많은 공바카라 한 권씩을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나누어 주고 주 1회 글쓰기 과제를 내준다. 그 공바카라과 함께 프린트물로 인쇄한 연간 글감 목록과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쓰인 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공바카라 맨 앞쪽에 붙이라고 한다.


이때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1년의 시간이 펼쳐진다. 지옥이라 표현한 이유는 어린 시절 글 쓰는 방법을 몰랐던 나에게 글쓰기 숙제는 그야말로 고통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쓰기 과제를 시간 내에 맞춰해 온다. 그리고 몇몇 일부 아이들은 글쓰기의 재능이 돋보이는 멋진 글을 만들어낸다.


사실 나는 아이들의 글을 조금만 읽어봐도 그 글이 어떤 과정을 통해 쓰인 글인지 안다. 이 아이가 글을 즐겁게 썼는지, 아니면, 억지로 썼는지. 아니면, 열심히 썼지만, 부모님 만족을 못 시켜서 부모님에 의해 글이 다시 쓰였는지. 어렵지 않게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번은 한 아이의 공바카라에 아주 멋진 글이 써져서 그 아이를 불러 물어봤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엄마에게 혼났어요. 내용이 부족하다고요.”

“아, 그래서 다시 썼구나. 힘들었지?”

아이는 다시 한번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봐봐. 그동안 썼던 글과 비교해 보니 어떻니?”

“네,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응 선생님도 그래.”

이렇게 아이들을 다독여가며 글쓰기를 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부쩍 성장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요 며칠간은 어쩌면 글이 잘 안 써지는 날이었다. 아니 생각조차 잘 떠오르지 않던 날이었다.


그래서 ‘글이 안 써지는 날’에 대해서 글을 써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어쩌면, 아이들에게만 과정 중심 글쓰기를 강조하고 정작 나는 그 과정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간과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에는 가시적인 필기 흔적이 없다. 머릿속에만 덜렁덜렁 들고 다니다 놓아버린 기억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것은 노트나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는 것도 거추장스러워하는 어쩌면 그쪽 부분과 관련해서는 아주 게으른 성격이기 탓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에 메모를 시작하기로 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것도 아니고, 글쓰기만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않기에 작은 끄적임이라도 해 놓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그런데, 그것 정말 단순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쩌면 글쓰기의 시작은 작은 메모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 메모장에 한동안 머물러 있던 짧은 메모 하나를 꺼내 정리해 본다.

‘글이 안 써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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