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 늘 마음 한구석이 부담스럽다.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도 애매하고, 알리고 아무것도 사 오지 않기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느새 여행은 쉬러 가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 버린다.
선물을 사기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 내내 짐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 싫다. 혹시 수하물 무게가 초과되지는 않을까 신경 쓰이는 것도 싫고, 무엇을 사야 상대가 좋아할지 계속 고민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면 선물은 늘 기쁨과 부담을 함께 안겨 준다.
며칠 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입사 동기 선생님이 작은 선물을 건네주셨다.
모기 기피제였다.
"별거 아니에요. 베트남은 우리나라보다 모기가 훨씬 심해서 기피제를 잘 만든대요. 한번 써 보세요."
순간 웃음이 났다.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면 저녁 무렵 화초 주변의 잡초를 손으로 뽑는다. 그 시간만 되면 모기들이 어디선가 몰려와 성가시게 달려든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날 새삼 깨달았다.
감동은 비싸고 화려한 선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삶을 떠올린 흔적이 담긴 선물일 때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인다는 것을.
싱가포르 여행 첫날, 국립박물관 기프트숍에서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짙은 원색 무늬가 섞인 젓가락과 작은 그릇이 함께 들어 있는 선물 세트였다. 중국과 인도, 영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듯한 디자인이었다.
보는 순간 장모님이 떠올랐다.
집을 찾아뵈면 차분하고 예쁜 젓가락을 받침대에 올려두고 자녀들을 대접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
그런데 옆에서 아내가 말했다.
"뭐 해? 그냥 가자."
"이거 장모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은데?"
"무거워. 부피도 크잖아. 아직 여행 시작인데."
맞는 말이었다.
이제 겨우 첫날이었다. 앞으로 갈 곳도 많고, 들러야 할 곳도 많았다. 아이도 빨리 가자며 재촉하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숙소로 돌아온 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아내에게 말했다.
"알다시피 우리 엄마 선물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 선물이었어."
아내는 잠시 웃었다.
여행은 아직 며칠이나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시간이 나면 싱가포르를 떠나기 전에 꼭 다시 들르자.
문득 오래전 영국 여행이 떠올랐다.
영국 남부 작은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어학연수 말미에 배낭 하나를 메고 영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웨일즈의 전통 공예품인 러브스푼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더 크고, 더 정교하고, 더 아름다운 러브스푼도 많았다.
하지만 배낭 하나를 메고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던 내게는 그것을 끝까지 들고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가방에 부담 없이 들어갈 만큼 작은 수제품 러브스푼 하나였다.
그 선물은 어느덧 우리와 함께한 지 1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사를 할 때마다 우리를 따라왔고, 지금도 집 한편에서 조용히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러브스푼은 가장 크거나 비싼 선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형편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오래 고민했던 마음만큼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선물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선물은 받는 사람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주는 사람에게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 여유는 경제적인 형편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행의 일정일 수도 있고, 짐의 무게일 수도 있으며, 그 순간의 마음일 수도 있다.
그래야 선물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된다.
결국 바쁜 일정에 쫓겼고, 끝내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젓가락 세트도 만나지 못했다. 장모님께 꼭 어울리는 선물은 사 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쉬움은 남았어도 후회는 남지 않았다.
오래전 작은 러브스푼 하나를 고르던 마음도, 싱가포르 기프트숍에서 한참 동안 젓가락을 바라보던 마음도 결국은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선물은 손에 들고 오는 물건보다, 누군가를 오래 떠올리는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
아마 선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도,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