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情으로 산다

이발소 아저씨 이야기

by잎새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웃 마을 이발소에 머리를 자르러 가곤 했다.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이 대부분 옆과 뒤만 짧게 다듬은 상고머리를 하고 있을 때도 나는 늘 짤막한 스포츠형 머리였다. 할아버지 눈에는 남자 아이의 긴 머리가 영 마땅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한두 번 머리를 길러 본 것을 제외하면 줄곧 스포츠형 머리를 고수했고, 머리를 자르는 곳도 기왕이면 미용실보다 이발소를 찾았다. 예약할 필요가 없고 비용도 저렴하지만, 무엇보다 나이 지긋한 이발사에게서 들을 수 있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좋았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한 뒤에는 한동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했다. 불친절한 남성 전문 헤어숍에서는 머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고 내 두상이 이상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름난 미용실에서는 스포츠형 머리를 자르고도 예전 이발소의 세 배에 가까운 비용을 내야 했다. 다음에는 꼭 예약하고 오라며 원장이 건넨 명함은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구겨지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는 한눈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이리저리 헤매다 철길 건널목 너머의 작은 이발소를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토요일 오후의 낮잠을 부드럽게 청하던 이발소 아저씨가 몸을 일으켰다. 나이는 예순쯤 되어 보였다. 단정한 2대 8 가르마에 금빛 철제 안경을 쓰고 있었고, 다부진 한쪽 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아저씨는 작은 목소리와 손짓으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스포츠형으로 잘라 달라고 했더니, 그 뒤로는 한마디도 말도 없이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어 주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 내듯 짧고 무뚝뚝하게 끝났다.

하지만 딱 내가 원하는 이발소였다.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 주로 토요일이면 그곳을 찾았다. 아저씨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도 눈으로 한 번 힐끗 바라볼 뿐 어서 오라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에도 별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아저씨가 다른 손님과 아파트 재개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내 차례가 되자 일부러 말을 걸었다. 그동안 아저씨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에도 아저씨의 무뚝뚝한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한두 마디 말을 건네면 굳게 닫혀 있던 말주머니가 슬며시 풀렸다. 손주들을 데려와 공짜로 머리를 깎아 달라고 한다는 딸 이야기, 태권도장을 하는 아들과 산에 갔다가 아들이 뒤처졌다는 이야기, 새벽 네 시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을 나간다는 이야기까지. 소소한 이야기마다 사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이발소를 찾았을 때 아저씨는 연휴 마지막 날 지인들과 부부 동반으로 지리산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 뒤 토요일마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달 가까이 머리를 자르지 못했다.


11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이발소를 찾았다. 문을 열자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인사 없이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머쓱한 마음에 지리산은 잘 다녀오셨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지리산에 다녀온 게 언젠데 이제야 물어. 그때 이후로 거의 두 달은 못 봤나 보네. 어쩐지 머리가 많이 길었더라.”

흰 천이 내 몸을 감쌌다. 능숙한 가위질과 함께 아저씨의 지리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른 새벽, 주말마다 함께 산을 다니는 부부 서너 쌍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모였다. 지리산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저씨 또래로 보이는 낯선 남자가 다가와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같은 인터넷 동호회 카페에서 버스 시간을 보고 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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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는 아저씨 일행과 그 남자뿐이었다. 일행은 앞쪽에 모여 앉았지만 남자는 혼자 맨 뒷자리에 앉았다. 구례에 도착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도 처음에는 함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뒤처져 따로 오려나 보다 하고 일행은 계속 산을 올랐다.

저녁 무렵 대피소에 도착해 삼겹살을 굽고 반찬을 꺼내는데, 아침에 만났던 남자가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둘러 집을 나오느라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며, 너무 배가 고프니 음식을 좀 나누어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저씨 일행은 흔쾌히 자리를 내주었다. 삼겹살과 반찬을 나누고 술도 한잔 건넸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따라오겠다는 것도 그렇고, 먹을 것을 나누어 달라는 것도 그렇고, 참 뻔뻔한 사람이네.’

그러나 이어진 이야기에 내 성급한 판단은 멈춰 섰다.

그 남자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 그 딸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명절이 되자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울적해져, 생각나는 대로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음식을 나누어 줘 고맙다며 아저씨 아내의 주머니에 오만 원을 막무가내로 밀어 넣었다.

다음 날 새벽 두 시, 일행은 다시 산을 올랐다. 전날 뒤처졌던 것과 달리 남자는 능숙하게 산을 탔다. 정상에 오른 뒤 산청 쪽으로 내려올 때까지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산청 읍내에 도착하자 남자는 전날 건넨 오만 원을 다시 내놓으라고 했다. 대신 일행 모두에게 백숙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푹 고아 낸 백숙 두 마리를 앞에 두고, 미처 다 하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몇 년 전 퇴직한 사람이었다. 두 달 전, 만삭인 딸이 아이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달려갔다고 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기쁨에 들떠 병원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딸의 죽음이었다.

이발소 아저씨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딸과 손주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자기 딸과도 비슷한 나이인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웠다고 했다.

아저씨가 내 몸을 감쌌던 천을 풀었다. 나도 머리를 감기 위해 세면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깐이었지만 수년 전 조기 진통으로 한 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다가 34주 만에 아이를 낳은 아내가 떠올랐다. 우리의 시작도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분도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며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파출소에서 퇴직했다는 그분은 산행에서 뒤처진 것이 아니라, 지리산 어딘가에 딸에 대한 추억과 슬픔을 내려놓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 다시 발길을 돌려, 그날 새벽 처음 만난 아저씨 일행을 찾아낸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놓친 사람들이야 되돌아가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한 추억을 한가득 남긴 딸은 아무리 찾아 헤매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어느덧 아저씨의 손이 내 머리 위에서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샤워기 물줄기가 머리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이야기도 마지막에 다다랐다.


“그날 일이 인연이 돼서 이제는 산에 갈 때마다 같이 다녀. 지난주에는 소요산에도 함께 갔다 왔지.”



머리를 씻어 낸 물이 거품과 함께 세면대 아래로 소용돌이치며 흘러갔다. 그분이 이제 아저씨 일행과 함께 산을 다닌다는 말을 듣자, 무겁게 가라앉았던 내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낯선 사람에게 삼겹살 한 점과 술 한잔을 건넨 마음, 그 사람의 슬픔을 끝까지 들어준 마음, 다음 산행에도 자연스레 자리를 내어 준 마음.

어쩌면 사람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그렇게 곁을 내어 주는 인정(人情)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이지만, 나도 이발소 아저씨와 함께 마음속으로 그분을 불러 본다.


“파출소장 아저씨,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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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삶과 만나다」 카지노 게임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세 개의 연재를 차근차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삶에서 만난 사람과 기억을 담은 「삶과 만나다」를,
매주 화요일에는 그림을 통해 성장해 온 시간을 담은 「그림바카라과 만나다」를,
그리고 매주 월, 수, 금요일에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는 「함께 자라다」에서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직 연재를 시작하는 단계라 요일이나 구성은 조금씩 다듬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오래 이어 가고 싶습니다.


천천히 함께 걸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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