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아, 미안해

풍요 속에서 잃어버린 한 가지

by잎새 그리고

십수 년 전 영국을 여행하던 중, 맨체스터의 한 미술관에서 그림 한 점 앞에 오래 발길을 멈춘 적이 있다.

커다란 식탁에 여러 세대의 가족이 둘러앉아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과일과 채소, 빵과 고기가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부족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복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나라에서 온 풍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쩌면 신에게 감사하라는 종교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전시품들로 가득했던 영국의 박물관들을 떠올리면, 한때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누볐던 역사가 먼저 생각나기도 했다.

그 뜻이 무엇이었든,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내 마음은 어린 시절로 향했다.

엄마가 읍내 장마당에 가신 날이면 내 마음도 함께 장마당으로 따라나섰다.

몸은 집 앞마당에서 공깃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지만, 버스가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달려갔다.

절반쯤 땅에 묻혀 있던 과일 저장고의 평평한 지붕.

어린 나에게 그곳은 세상을 가장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였다.

나는 지붕 위에 올라 까치발을 들고 나무와 풀 사이로 겨우 보이는 버스 정류장을 바라보았다.

두 시간 뒤 돌아오는 첫 버스에는 엄마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러 번 겪은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매번 처음이었다.

익숙한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고, 문이 철커덩 닫히면 나는 세상을 다 잃은 아이처럼 고개를 떨군 채 지붕 아래로 내려왔다.

한 시간 반쯤 지나면 다시 저장고 위로 올라갔다.

혹시라도 눈을 깜빡이는 순간 엄마를 태운 버스가 지나갈까 봐, 눈을 크게 뜨고 정류장 끝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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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석양빛과 먼지를 머금은 누르스름한 버스가 멈춰 섰다.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든 엄마의 파마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년이 되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라도 나가는 선수처럼 버스 정류장을 향해 힘껏 달려갔다.

엄마는 달려오는 나를 보며 옅게 웃으셨다. 그러다가 금세 얼굴을 굳히며 소리치셨다.

“넘어질라!”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엄마는 검은 비닐봉지를 한쪽 손으로 옮겨 들고, 다른 손을 봉지 안에 넣어 무언가를 찾으셨다.

그리고 바나나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셨다.

사실 나는 엄마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엄마가 장마당에서 사 오는 무언가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꽃게였고, 어느 날은 고등어였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바나나라니.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알았다.

여덟 식구가 나누어 먹을 바나나는 고작 세 개뿐이었다.

그 바나나는 어린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엄마의 손은 신의 은총과도 같았다.

나는 형제들 몰래 마당 한구석으로 숨어들어 바나나를 천천히 먹었다.

너무 빨리 먹으면 행복도 함께 끝나 버릴 것 같았다.

마지막 한입을 오래도록 입안에 머금고 있었던 기억만은 지금도 선명하다.

요즘 바나나는 흔하다.

마트에 가면 언제든 살 수 있고, 아이들은 한두 입 먹다가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의 바나나에서는 그 시절의 맛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

품종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바나나가 아니라 내 입맛이 달라진 것일까.

어느덧 내가 사는 세상은 맨체스터 미술관에서 보았던 그림 속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사계절 내내 세계 각국의 음식을 먹는다.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기보다 너무 많아 걱정하는 시대를 산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풍요는 또 다른 풍경도 만들어 냈다.

아파트 음식물 수거함에는 먹다 남은 음식이 넘쳐나고, 식당과 가정에서는 매일 수많은 음식이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우리에게 음식은 너무 쉽게 주문되고, 너무 쉽게 남겨지고, 너무 쉽게 버려진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식당에 가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조금 더 주문하곤 했다.

넉넉하게 차려진 식탁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결핍을 뒤늦게 보상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배를 채운 것은 음식이 아니라 욕심이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사람에게는 예의를 말하면서, 음식에게는 너무 쉽게 무례해지는 것은 아닐까.

음식은 오늘의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존재다.

누군가의 땀과 시간, 햇볕과 비, 흙과 바람을 품고 내 앞에 놓인 생명이다.

부모님께 감사하듯 음식을 존경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먹을 만큼만 덜고, 가능한 한 남기지 않고, 내 앞에 오기까지의 수고를 잠시라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음식에게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늘 변한다.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이상 붉게 피어 있는 꽃은 없다.

지금의 풍요가 영원할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더욱 감사해야 한다.

좋은 세상에 살게 된 것에 감사하고, 이 풍요를 만들어 준 수많은 사람의 땀에 감사해야 한다.

무엇보다 오늘도 자신의 몸을 내어 우리의 삶을 이어 주는 음식에게 감사해야 한다.

오늘도 바나나를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맛은 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리워한 것은 바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가장 먼저 바나나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던,

엄마의 따뜻한 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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