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대한 예의

어쩌다 만난 지금

bycoolnpeace


퇴사하는 친구의 마지막 인사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이야기. 피크엔드 법칙으로 본 관계의 끝, 그리고 끝을 잘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마지막 인사를 위해 두 번을 갔다


퇴사 날이 정해지면 사람들은 대개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다. 친구는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 본사에 인사를 하러 갔다. 가장 높은 분께 눈을 맞추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팀장이 말했다. "9시에 가면 돼." 친구는 그 말을 믿고 맞춰 갔다. 차로 10분 거리였다. 그런데 그 시간에 임원 회의가 잡혀 있었다. 팀장은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친구는 발길을 돌려야 했고, 다시 시간을 맞춰 두 번째로 찾아갔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택시로 10분 거리를 두 번 오간 것이다.

무례는 작은 생략에서 온다

무례는 언제나 큰 사건으로만 오지 않는다. 알고도 말하지 않는 것. 굳이 확인해주지 않는 것. 그 작은 생략 하나가 사람을 두 번 움직이게 만든다. 체력의 낭비가 아니라 마음의 낭비다.

떠나는 사람이라고 해서 덜 신경 써도 된다는 논리는 어디서 오는 걸까.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이기에, 오히려 그 마지막이 순수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남는다. 그 순간의 무례는 조직을 떠나서도 기억된다.

끝이 전체의 온도를 결정한다

심리학에는 '피크엔드 법칙'이라는 게 있다. 사람은 어떤 경험을 기억할 때 가장 강렬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을 기준으로 전체를 평가한다. 끝이 나쁘면 그 감정이 전체를 덮는다. 관계도 다르지 않다. 몇 년을 함께한 시간이 마지막 하루의 소홀함으로 흐릿해진다.

친구는 그날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두 번 갔다는 사실보다, 알면서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나는 사람에게 가혹한 이유

우리는 관계를 맺을 때 공을 들이고, 유지할 때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 끝낼 때는 대충 한다. 이미 끝나가는 관계니까. 하지만 그 생각이 사람을 가혹하게 만든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사람일수록 마지막 장면을 선명하게 가져간다.

좋은 이별은 거창하지 않다

좋은 이별은 거창하지 않다. 알고 있는 것을 제때 말해주는 것. 불필요하게 두 번 움직이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람은 어떻게 만났는지보다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마지막은 그 관계 전체의 온도를 결정한다.

문득 나도 떠올랐다. 관계의 끝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나는 상대가 아니라 내 감정을 먼저 골랐다. 내 기분 위주로 마무리했고, 그 대가를 지금도 치르고 있다. 친구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다시 깨닫는다. 끝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걸 잘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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