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만난 지금
버스정류장에서 카지노톡을 재설치하는 어르신을 도왔다. 아이디 찾기, 비밀번호 재설정, 인증 반복. 15분이 걸렸다. 시스템이 어르신을 전제하지 않았다.
버스정류장에서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걸었다. 핸드폰에 카지노톡이 사라졌다고 했다. 실수로 지웠다고 했다. 다시 깔아달라고 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앱을 다시 설치했다. 로그인 화면이 떴다. 아이디를 모른다고 했다. 본인인증을 했다. 비밀번호는 숫자만 기억하신다고 했다. 틀렸다고 떴다. 재설정을 눌렀다. 다시 인증번호가 왔다. 전화기를 들어 숫자를 확인하고, 다시 화면에 입력했다. 겨우 로그인이 됐다. 그런데 백업을 하겠냐고 물었다. 기존 기기에서 백업을 보내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설명하는 사이 버스가 왔다. 내가 탈 버스였다. 어르신은 다른 방향이었다. 같은 방향이었다면 끝까지 마무리했을 텐데. 버스 문이 닫혔다.
문제는 어르신이 아니었다. 시스템이 이 분을 전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영문 자판은 낯설고, 특수문자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숫자는 그나마 익숙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모티콘은 어떨까. 20개 이모티콘 중 4개를 순서대로 고르는 방식. 외울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익숙한 것을 고르면 된다. 주민등록 앞자리로 나이가 확인되면 간편 인증으로 바로 연결되는 구조도 가능하다. 비밀번호는 누구에게나 같은 형식일 필요가 없다. 어르신의 생활에 맞는 방식이 따로 있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병원 무인접수기, 주차 정산기. 적응하는 사람에게는 편리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벽이다. 시스템은 빠르게 바뀌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밀려난다. 모두를 위한 설계는 약자의 눈높이에서 시작한다. 버스정류장에서 그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