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 진실
12월의 차가운 밤공기 위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좁고 어두운 차 안으로 붉은 경광등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내쉬는 도윤의 핏기 없는 얼굴이 위태롭게 보였다.
해수는 구급대원들이 쉴 새 없이 도윤의 혈압을 체크하고 무언가를 기록하는 좁은 공간 구석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도윤의 차갑게 식은 손을 두 손으로 꽉 쥔 그녀의 몸이 애처롭게 떨렸다. 정신을 잃은 그를 끌어안으며 묻었던 겉옷 소매의 검붉은 핏자국만이, 조금 전 거실에서 있었던 끔찍한 상황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도윤아... 서도윤, 내 말 들려? 조금만 버텨. 제발..."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도윤의 굳게 닫힌 두 눈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가슴은 아주 얕고 미세하게 오르내릴 뿐, 그 흔한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아프다고 비명이라도 질렀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불러도 미동조차 없는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당장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두려움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버린 것 같았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도윤은 이동식 침대에 실려 처치실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보호자 대기실에 홀로 남겨진 해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소독약 냄새가 만취한 상태처럼 위장을 뒤틀리게 했다. 소매에 얼룩진 핏자국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해수는 제 꼭 쥔 주먹으로 허벅지를 세게 두드리며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피 말리는 기다림 속에 갇힌 해수에게는 평생 느껴보지 못하던 외롭고, 무서웠던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담당 의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오자, 해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제 남편은요?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요. 어디가 잘못된 건가요? 수술해야 하나요?" 다급하게 쏟아지는 해수의 질문에, 의사는 차트에 시선을 둔 채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일단 응급으로 수액을 투여해 불안정했던 맥박과 호흡은 정상 수치로 돌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보호자분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할지 무척 난감하네요."
"난감하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옷에 묻은 핏자국이나 토혈 증세를 보면 식도나 위, 혹은 기관지 쪽에 출혈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응급으로 CT와 정밀 검사를 다 돌려봤는데, 몸속에 피가 날 만한 상처가 전혀 없습니다. 출혈의 흔적 자체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해수는 순간 말문이 막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지난가을 도윤을 억지로 끌고 가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 들었던 말과 똑같았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 하지만 도윤은 생사를 오가며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구급차에 실려와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로 보였다.
"그럼 왜 피를 토하며 쓰러진 건데요! 남편은 방금 전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쓰러져 있었잖아요!"
"문제는... 환자분의 신체 전반적인 기능이 동시다발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마치 수명을 다한 노령 환자들의 마지막을 보는 것처럼, 세포의 재생 능력이 멈춰 있고 장기들이 서서히 제 역할을 포기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명확한 질병의 원인이 없으니, 저희로서는 수액으로 버티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당장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의사의 담담한 설명이 해수의 귓가에서 웅웅 거리며 흩어졌다. '수명을 다한 노령 환자'. 이제 삼십 대 초반 나이의 한 창 젊고 건장한 남편에게 내려진 진단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해수는 중환자실로 옮겨진 도윤의 면회를 기다리며 대기석 의자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채, 구급차를 부르려던 자신의 손목을 꽉 쥐던 도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 가도... 소용없어. 아무것도... 못 고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확신에 차 있던 도윤의 목소리. 그는 자신의 몸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것을,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도대체 무엇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기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병원을 거부했던 걸까.
문득 해수의 뇌리에 벼락처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몇 달 전 늦은 밤, 서재 바카라상에 엎드려 식은땀을 흘리며 자던 도윤. 그리고 그의 팔 아래 깔려 있던 낡은 가죽 일기장. 자신이 손을 뻗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목을 낚아채던 그의 낯설고 단호했던 눈빛.
'서도윤, 내게 숨기는 게 뭐니? 도대체 그렇게 꽁꽁 숨겨가며 내게 알리지 않는 게 뭐냐고.'
해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도윤을 살릴 수 있는 실마리는, 의사의 차트가 아니라 도윤이 그토록 감추려 했던 그 서재 방의 일기장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해수는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남편의 입원 수속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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