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샌드위치

가벼운 나들이 한 끼

by은정

"카톡"

“실장님, 안녕하세요.....”


추석 전날 오후, 엄마집 마당에서 치킨 한 조각을 베어 물며 뜨거운 햇살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카지노톡 화면에 뜬 이름은 4년 전쯤 약 두 달간 함께했던 직원이었다. 마른 체형에 눈을 반짝이며 내가 설명해 주는 것들을 잘 듣고 노력하던 친구였다. 짧은 인연이었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지는 긴 문장들이 화면을 채웠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꼭 한번 연락드리고 싶었습니다’


문장은 천천히 이어졌다.

지금까지 일을 배워오면서 그때 자신이 정말 많이 부족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던 시기였는데, 그때는 잘 몰랐지만 실장님이 정말 많이 가르쳐주셨던 거였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 뒤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그렇게 일을 알려주는 상사를 만나지 못해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고.

지금 회사도 잘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치킨을 들고 있던 손을 멈추고 텍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뜻밖의 반가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더 반가웠다.


처음 팀장을 맡았을 때는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일을 알려주는 것도 서툴렀다.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애썼고, 회사를 옮기면서 조금씩 내가 어떤 팀장이 되고 싶은지도 알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보내온 말들이 참 고마웠다.

“그때 많이 배웠습니다.” “실장님이 생각났어요.”

몇 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는 게 신기했고, 무엇보다 고마웠다.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게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


그날 유난히 그 문장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아침에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고, 엄마 집으로 향하기 직전에는 지원했던 곳에서 불합격 통보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엄마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차갑게 꺼져갔다. 추석 연휴를 앞둔 거리의 온기와 달리, 내 안에서는 ‘올해는 이상하게 힘든 해구나’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


그런 날 오후에 그 메시지가 왔다.

낮 동안 켜켜이 쌓였던 기분이, 오래전 함께 일했던 후배의 정성스러운 메시지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감동을 받아 나도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고, 이렇게 생각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기회가 되면 나도 다시 같이 일하고 싶으니 언제든 연락하라고.


그 메시지를 받고 나니 이상하게 나도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퇴사한 팀장님과 몇몇 옛 상사분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보냈다. 평소 명절 인사를 챙기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남자 상사분들 답게 서너 글자의 단정한 단답형이었다.

“명절 잘 보내고 기회 되면 술 한잔 해요.”

화면을 보며 풋, 하고 짧은 웃음이 터졌다. 무뚝뚝한 답장마저도 반가웠다.


명절이 끝난 뒤인 오늘,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가을의 공기가 물씬이다. 가볍게 샌드위치 하나 싸들고 한강 공원에 가야겠다.

샌드위치는 엄마 집에서 가져온 ‘배’와 남은 햄으로 만들려고 한다.



1. 배, 루꼴라, 햄, 차지키 소스, 삶은 계란을 준비한다.(차지키 소스는 집에 있어서 넣은 것. 그릭요거트나 마요네즈, 크림치즈 등으로 대체 가능.)

2. 차지키 소스와 계란을 한데 으깨어 섞었다.(계란 샌드위치처럼)

3. 빵을 따뜻하게 데운 후 각 재료들을 넣어 빵에 껴 넣는다.

4. 기호에 따라 잼 혹은 머스터드소스를 발라도 좋다.



몇 년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그때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면 내가 지나온 시간을 잠깐 돌아보게 된다.


그날 하루는 참 이상했다. 기분 나쁜 일도 있었고, 떨어졌다는 메일도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오래전 내가 잘해주었던 사람이 보낸 카톡 한 통이 남았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한강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하고 달콤한 배가 시원하게 씹힌다. 올해가 정말 운이 없는 해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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