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신사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 신사’라는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나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아주 어릴 때 이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그때도 이미 오래된 옛날 노래였다. 정확하게 누가 불렀는진 모르지만, 안방 TV 앞에 누워 있던 장면만큼은 선명하다. 분장한 개그맨들이 나와 이 노래를 부르며, 돈 없이 왔다는 이유로 손님을 밀치고 면박을 주던 모습. 그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웃긴 개그 프로의 한 장면이었는데, 문득 이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본디 전이라는 건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음식이라지만, 요즘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다. 예전 사무실에 매여 있을 땐 몰랐던 파란 하늘을, 요즘은 꽤 자주 가만히 올려다보곤 한다.
오늘 아침엔 느닷없이 빈대떡을 부쳤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두부와 숙주가 눈에 띄었고, 굳이 저녁이나 비 오는 날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탄수화물 대신 두부와 채소가 듬뿍 들어가니 ‘이 정도면 괜찮은 다이어트식 아닌가’ 하는 정당화도 한몫했다.
두부를 단단히 짜서 으깨고, 숙주를 잘게 썰어 넣는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낸 묵은지도 송송 썰어 빠뜨리지 않고 넣는다. 녹두전 특유의 깊은 맛을 내려면 이 묵은지가 필수다. 고소하게 부쳐진 두부 사이에 새콤한 묵은지 맛이 느껴져야 느끼하지 않고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곁들일 초간장에는 청양고추와 양파를 굵직하게 다져 넣었다. 전 한 점에 고추와 양파를 하나씩 올려 먹어야 진짜니까.
원래대로라면 비 오는 저녁, 시끌벅적하게 막걸리 한잔을 곁들여 먹는다는 그 전을, 나는 햇살 좋은 아침에 혼자 조용히 부쳐 먹는다. 노래 속 그 신사처럼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누가 등 떠밀어서도 아니다. 그냥 냉장고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서, 그리고 오늘따라 그게 먹고 싶었을 뿐이다.
노래 속 신사는 돈이 없다고 서러운 손가락질을 받았다는데, 나는 이걸 '건강한 다이어트식'이라고 부르며 맛있게 먹고 있다. 시대가 좋아진 건지, 아니면 내 식욕을 정당화하는 방식이 뻔뻔해진 건지 모르겠다.
1. 두부는 수분을 꽉 짜서 으깬다.
2. 숙주는 잘게 썰고(데치지 않아도 괜찮다), 묵은지는 양념을 씻어내고 송송 썬다.
3. 으깬 두부, 숙주, 묵은지와 부침가루, 계란을 섞어 반죽을 만든다.
4. 노릇하게 부쳐내어, 다진 청양고추와 양파를 넣은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녹두가루가 없어도 괜찮다. 부침가루와 계란을 넣고, 두부 비율을 늘리고 묵은지만 잘 넣어줘도 제법 그럴싸한 고소함과 감칠맛이 난다. 굳이 비 오는 날을 기다리지 않아도, 주머니 사정을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날이 너무 좋아서, 냉장고에 있는 두부로 부쳐 먹는 빈대떡도 나름 훌륭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빈대떡을 베어 물며 생각한다. 꼭 타인의 기준에 맞춘 정답이 아니어도, 지금 내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근사한 신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