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자 쉬운 비빔밥처럼
요즘 나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넌 뭘 좋아하는데?"
"앞으로 뭘 하고 싶은데?"
얼마 전 연희동에 다녀왔다. 새로운 일을 모색해보려 연희마켓에 찾아간 길이었다. 그날은 빈티지 마켓과 함께 열려 규모가 꽤 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애정하는 것들을 들고 나온 듯했다. 식물을 가꾸는 사람, 빈티지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 손수 뜨개질이나 비즈 목걸이를 만드는 사람.
어떻게 저 사람들은 저렇게 자기만의 좋아하는 것이 확실할까.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지독하게 꽂혀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집요하지 않은 무난한 성격이라 여겼는데, 나이를 먹고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거나 꼭 해보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예전엔 그런 게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잘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요즘엔 그게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
시간이 많아진 덕에, 고맙게도 깊은 자아성찰이라는 걸 하게 된다. 요즘은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무언가를 조합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요리도 음식을 만드는 행위 자체보다, 내가 이것저것 조합해서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는 순간을 좋아한다. 기본적인 요리에 뭔가 하나를 더해 전혀 다른 맛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디자인도 비슷했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할 때 팀원들을 보면 누구나 뾰족한 장점이 하나씩은 있었다. 저마다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가 명확해서, 그게 그 사람만의 색깔이 되어주었다. 그걸 보면 누구나 다 좋아하는게 있다는건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켓을 나와 상점 골목을 걸었다. 평소엔 잘 가지 않던 리빙 소품숍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마다 주인의 취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예전엔 무심코 지나쳤을 공간들을, 이젠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도 리빙 제품을 팔아볼까.’
‘식물도 같이 놓을까.’
‘거기에 소박한 음식도 더해보면 어떨까.’
역시 나는 뭔가를 조합하고 있었다.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섞어보는 건 좋아하는 모양이다.
오랫동안 회사의 틀 안에 갇혀 살다 나왔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제로게임을 시작한 기분이다. 나는 늘 일하지 않는 상태를 두려워했다. 쉬다 보면 영원히 쉴 것만 같았으니까. 매번 이직을 할 때마다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는데, 회사 없이 혼자 지내는 지금도 딱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전 온라인 게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울타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공존한다. 다달이 찍히는 월급이라는 마약은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니까. 예전에 딱 한 번 프리랜서로 일했을 때도,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결국 다시 회사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결국 이 긴 글을 적는 이유는 하나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몸이 멈춘다.
오늘은 쓸데없는 고민도, 앞으로의 걱정도 던져버리고 그냥 대충 살아보기로 한다.
밥 한 공기 툭 털어 넣고, 심플하게 한 그릇 비워내는 것. 오늘 하루는 딱 그 정도면 됐다.
1. 밥을 한다.
2. 참치를 꺼낸다.
3.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야채들을 꺼낸다.(저는 루꼴라, 오이고추, 오이 넣었어요)
4. 한데 넣고 고추장 한 스푼 올린다.
5. 마지막으로 참깨와 참기름 한스푼을 두른다.
머리가 지쳐있을 땐 간편하게 만들어 먹는 한 끼가 도움이 된다. 입맛이 떨어져 식사를 거르고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사람인지라 배꼽시계는 정확한 것을. 이럴 땐 만들기 간편한 한 끼가 작은 힘을 보태준다. 오늘 하루 그래도 그냥 넘기지 않고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었다는 것.
그 정도면 됐다.
날도 좋은데 오늘 하루는 대충 살아본다.
쉬운 참치 비빔밥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