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노래
나의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꽤 잦았다. 비행기도 못 타본 사람이 많았던 80, 90년대 초반에도 도쿄, 홍콩, 뉴욕을 참 많이도 돌아다니셨다. 특히 일본 출장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후지산이 배경인 엽서를 사다 주셨다. 눈 덮인 후지산, 벚꽃이 핀 후지산, 단풍으로 물든 후지산, 호수를 앞에 둔 후지산. 어린 나에게 엽서 속 후지산은 큰 감흥이 없었다. 작은 산 그림보다 휘황찬란한 건물과 야경이 담긴 홍콩이 멋있어 보였고, 그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생긴 뒤에도 일본은 늘 후순위였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와는 동떨어진 먼 곳을 가고 싶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오지나 외딴곳을 가는 게 멋있어 보이는 나이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하다. 나이가 들수록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은 줄고, 가까운 곳을 깊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어느 순간 유럽의 성당보다 동네 산바카라로가 좋아지는 순간이 왔다. 후지산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 건 그런 시기였다. 우연히 후모톳바라 캠핑장 사진을 보게 됐다. 거대한 후지산을 앞에 두고 밤을 보내고 별을 보고 일출을 보고 산을 마주하는 기분.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그때부터 후지산이 보이는 곳에서의 캠핑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시즈오카는 후지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다. 하지만 이 도시의 정체성은 산만이 아니다. 시즈오카는 일본 녹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차의 고향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말년을 보낸 땅이며, 도카이도 옛길의 중간 기착지로 에도 시대 여행자들이 반드시 거쳐 가던 곳이다. 후지산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가려져 있지만 이 도시 자체에 켜켜이 쌓인 시간이 있다. 후지산의 눈 녹은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차밭을 적시고, 그 물이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산에서 시작된다.
시즈오카에 후지산 말고 뭐가 있냐고 물으면, 후지산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있다고 답하고 싶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키운 차밭, 그 물이 흘러드는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 화산 지대의 온천, 산이 막아주는 바람 덕에 온화한 기후. 후지산은 배경이 아니라 이 도시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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