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운영하는 마을

<도시 속 마을을 찾아서 ③ / 남양주 위스테이별내 이야기>

<도시 속 마을을 찾아서 ③ / 남양주 위스테이별내 이야기>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

위스테이별내의 슬롯적협동조합과 입주자 민주주의



마을이 되어가는 아파트

아파트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주거공간이다. 그러나 같은 건물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공동체의 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한다고 해서 그 아파트가 주민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공동체 활동은 주민들이 함께하는 일이고, 주민자치는 공동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위스테이별내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위스테이별내는 491세대가 거주하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슬롯적협동조합을 구성하고 공동생활의 운영에 참여한다. 나는 이러한 시도를 ‘입주자 민주주의(Resident Democracy)’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입주자 민주주의는 주민들이 공동생활의 규칙을 만들고, 공동의 자원을 운영하며, 주거환경과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운영원리다. 이는 아파트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생활공동체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입주자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주체다

일반적인 아파트의 운영은 관리의 효율성과 시설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은 관리비를 납부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공동주택의 관리에 참여한다. 물론 기존 아파트에도 입주자대표회의와 선거, 주민 의견수렴 등의 제도가 존재한다. 따라서 입주자 민주주의가 기존 공동주택에 전혀 없었던 새로운 제도라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의 범위와 실질적인 권한이다.


주민들이 관리업무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공동생활의 방향을 설정하고 공동의 자원을 배분하며 스스로 운영규칙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할 때 주민자치의 의미도 달라진다. 주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과 주민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다르다. 주민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과 프로그램의 필요성, 운영방식, 예산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 역시 다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주자 민주주의는 참여의 양보다 결정권의 실질적인 배분을 중요하게 다룬다. 주민들이 얼마나 많은 행사에 참여했는지보다 공동생활의 중요한 사항을 얼마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슬롯적협동조합은 입주자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이다

위스테이별내의 중요한 특징은 주민들이 슬롯적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체를 운영한다는 점이다. 슬롯적협동조합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이다. 일반적인 영리기업과 달리 자본의 크기가 아니라 조합원의 민주적 참여를 중요한 운영원리로 삼는다. 협동조합의 기본원리인 1인 1표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출자금의 규모에 따라 의결권이 달라지는 주식회사와 달리 조합원의 동등한 의결권을 원칙으로 한다. 위스테이별내는 조합원총회와 대의원 제도, 이슬롯 등의 조직체계를 통해 주민들이 공동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인 조직을 갖추었다는 사실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총회에서 중요한 사항이 충분히 논의되는지, 주민들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지, 결정된 사항이 실제 운영에 반영되는지에 따라 민주주의의 수준은 달라진다. 특히 공동체의 운영이 일부 활동가나 임원에게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주민들의 참여와 바카라임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슬롯적협동조합의 민주주의는 단순히 대표자를 선출하는 절차가 아니다. 주민들이 공동의 문제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며, 결정에 따른 바카라임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주민들은 공동체를 운영하는 능력을 축적한다. 입주자 민주주의는 주민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인 동시에, 주민들이 그 권한을 행사하면서 스스로 통치하는 능력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공동재원을 운영하는 것도 민주주의다

위스테이별내에서는 공동체 운영을 위한 조합비를 마련하고 있다. 알려진 운영구조에 따르면 가구당 월 5만 원의 조합비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합비는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이다. 그러나 입주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조합비를 얼마나 모으는지가 아니다. 공동의 재원을 누가 관리하고, 어디에 사용하며, 그 결과를 누구에게 설명하는지가 중요하다. 주민들이 공동의 필요를 논의하고 예산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집행과 결산을 확인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실천이다.


공동재원의 사용을 둘러싼 결정에는 언제나 선택이 따른다. 제한된 재원을 어떤 활동에 먼저 사용할 것인지, 공동체 전체의 필요와 개별 주민의 요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판단은 단순한 회계처리나 행정업무가 아니다. 공동체의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적 의사결정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공동체 경제와 입주자 민주주의는 긴밀하게 연결된다.


공동체 경제는 주민들이 공동의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과 서비스를 조직하는 활동이다. 입주자 민주주의는 이러한 자원과 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원리다. 경제적 자원을 공동으로 형성하더라도 그 사용을 소수의 운영자가 독점한다면 민주적인 공동체 경제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주민들이 공동재원의 조성과 배분, 집행과 평가에 참여한다면 공동체 경제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과 민주적 자치는 서로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공동의 자원을 스스로 운영하는 경험 속에서 두 가지 역량은 함께 성장한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방식과 관심사가 다르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도 서로 다르다. 공동재원의 사용이나 운영규칙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입주자 민주주의를 모든 주민이 하나의 의견으로 합의하는 상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절차와 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동의 자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관리하는 능력에 주목했다. 그의 연구는 공동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에 이용자들의 참여와 자율적인 규칙 형성, 감시와 바카라임, 갈등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주거공동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동의 규칙을 만드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이 공정하게 적용되는지 확인하고, 필요할 때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인 주민뿐 아니라 참여가 어려운 주민들의 의견도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입주자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생활방식을 요구하는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주민들이 공동의 생활조건을 민주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런 점에서 좋은 공동체는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공동체이다. 위스테이별내는 민주적 해결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입주자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이행하는 주거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입주자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위스테이별내의 슬롯적협동조합은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스스로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실험이다. 이러한 시도는 아파트의 주민자치를 관리업무에 대한 참여에서 공동생활의 민주적 운영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입주자 민주주의에는 앞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도 있다.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과 공동재원을 운영하는 권한을 갖는 것과 주거자산의 소유 및 장기적인 운영에 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위스테이별내의 주거자산은 부동산투자회사(REITs)를 중심으로 소유와 자산관리체계가 구성되어 있으며, 주민들의 슬롯적협동조합은 공동체 운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이원적 구조에서는 입주자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스스로 운영하더라도 주거자산의 장기적인 투자와 관리, 처분에 관한 결정에는 제한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입주자 민주주의가 공동생활의 운영을 넘어 주거자산과 경제적 자원에 관한 결정권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살펴볼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논의와도 연결된다.

마을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장소다

위스테이별내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슬롯적협동조합이라는 조직 자체보다 그 조직을 통해 주민들이 공동생활을 운영하는 경험이다. 주민들이 함께 규칙을 만들고, 공동재원의 사용을 결정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경험이 된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의회, 지방정부와 같은 공식적인 정치제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간에서도 형성된다. 주민들이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시설을 넘어 민주주의가 실천되는 장소가 된다. 나는 위스테이별내의 슬롯적협동조합을 이러한 입주자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이해한다.

입주자 민주주의는 주민참여를 넘어 주민자치로 발전하는 과정이며, 공동체의 자원과 미래에 대한 결정권을 확장해가는 출발점이다.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사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바카라임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와같이 위스테이별내는 입주자 민주주의의 모범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위스테이별내의 슬롯적협동조합과 부동산투자회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주민들의 공동체 운영권과 주거자산에 관한 결정권 사이의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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