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신촌장칼국수, 강릉

신촌을 못 가야 먹는 장칼국수, 눅진 칼칼한 국물과 살살 녹는 김치만두

by김고로

이전에 구바리스타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서 권바리스타님과 우연히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평소에 곧잘 가시는 식당에 대해서 여쭈니 포남동에 있는 신촌장칼국수를 곧잘 가신다고 하셨다.


김고로는 장칼국수를 먹고 싶을 때에는 주문진으로 가는 편이었으나, 해당 식당의 맛이 변한 이후로는 가는 곳이 없었기에 포남동의 신촌장칼국수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식당을 알게 되는 시점과 직접 방문하는 때의 사이가 항상 짧지만은 않다. '한 번 가봐야지'라는 마음을 먹어도 지리적, 시간적 이유로 인하여 그 얘기를 들은 다음 해인 최근에야 갈 수 있었으니까.


이쁜 그녀의 부모님, 그러니까 김고로의 장인장모님께서 강릉에 오실 일이 있어 저녁도 대접해드릴겸 두분을 모시고서 김고로는 포남동으로 향했다. 포남동 먹자골목으로 말하자면, 강릉에서도 오래된 외식 상권이며 이전에 강릉의 시외버스터미널이 그 근처에 있을 때에는 상당히 부흥했던 지역.


지금은 신흥 강자인 택지와 유천 지구등에 의해서 밀리고 또 밀려서 오래된 골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 포남동 먹자골목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터줏대감들과 새롭게 창업한 젊은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며 강릉 고전 외식지구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고로가 좋아하는 파스타 집 중 하나인 '강릉파스타 아스따'도 이 동네에 있음은 안 비밀.


주차장이 널찍하고 깔끔한 포남1동 주민센터 주차장에 차를 두면 바로 앞 건물에 '신촌장칼국수'를 볼 수 있다. 사다리꼴 모양의 오각형 건물의 1층, 주황색 간판 배경에 간단한 칼국수 그림에 '장'자에만 검은 먹물 바탕이 들어간 '신촌 장 칼국수'. 그리고 가게 입구쪽으로 가면 흰 바탕에 보라색의 '신촌', 붉은 점 배경의 '장', 초록 글씨의 '칼국수'로 장식 다른 간판이 손님들을 반긴다. 흰색 시트지로 통유리로 된 외벽 아래반절을 덮은 유리문을 밀고서 들어가니 원목 무늬로 된 장판에 나무와 철제로 된 식탁과 의자들이 오른쪽 안쪽의 방까지 펼쳐져 있다. 가게 입구 왼쪽에는 살짝 어두운 조명의 넓은 오픈 주방에서 손님들에게 드릴 만두나 장칼국수 재료 등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


"몇 분이세요?"


"네 명이요."


"네,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친절한 웃음을 지으시는 사장님께서 안내하신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사장님께서 좋아하시는 젊은 트로트 가수의 포스터와 팬클럽 물건들이 눈에 띄고, 간단한 저녁을 먹으러 오신 동네의 어르신들이나 커플들이 이미 만두와 칼국수를 즐기는 중이었다.


장칼국수 집에 왔으니, 가장 기본적인 장칼국수를 먹고 싶은 김고로는 당연히 장칼국수를 시키고, 각자 원하는 칼국수를 주문한다. 그리고 신촌장칼국수에서는 김치만두가 상당히 맛이 좋다고 소문을 들었던지라 잊지 않고 김치만두도 추가한다.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는 셀프바를 보니 김치, 깍두기를 보충할 뿐만 아니라 김치만두가 남는 경우 직접 포장도 할 수 있도록 일회용 용기들이 열을 맞춰 누워있었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는 겉절이김치와 깍두기. 깍두기는 제법 시원하고 달달하며 김치는 상큼하고 굵은 고춧가루가 아작아작 씹히니 맛이 좋다. 거기에 배추의 단맛까지 더해져서 겉절이김치는 요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상치 못했던 겉절이김치의 기습에 김고로의 눈이 커진다.



김고로 일행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출입하면서 회전이 되는 저녁 때의 동네 장칼국수 집의 풍경, 동네 장사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있다보니 김치만두가 영롱한 주홍빛을 발하며 등장하고 장칼국수와 들깨칼국수가 이어서 상에 오른다.


김고로가 평소에 알던 김치만두는 분홍빛으로 보일 정도의 연한 주홍색과 살짝 두터운 만두피의 모습인데, 신촌장칼국수의 김치만두는 속이 비추어보일 정도로 얇고 김치속이 루비처럼 빛났다. 김고로의 호기심이 끓어오른다.


장인어른께서 먼저 수저를 드시고 식사를 시작하자, 김고로도 이어서 한국의 식사 예법을 따른다. 젓가락으로 김치만두 하나를 집어 베어문다. 약간의 쫄깃함을 곁들인 탄탄한 만두피가 찢어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낸다.


김치의 약간 매콤한 맛이 훅하고 김고로의 입안을 덮치면서 김치속인지 김치무스인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김치속이 입안에서 녹으며 식도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새콤하며 매콤함, 거기에 발효된 김치 특유의 단맛까지 매끄러운 식감 사이에 숨어있는 톡 쏘는 김치맛의 매력이 김고로의 혀를 황홀하게 만든다.



"와, 여기 김치만두가 엄청 나요."


"어쩜, 어떻게하면 김치만두 속을 이렇게 부드럽게 만들지?"


"그러게요, 저도 다져진 김치, 고기, 파 이런 재료들이 들어간 김치만두를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김고로는 앞니에 의해서 두동간이 난 김치만두 속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신촌장칼국수의 김치만두에는 고기조각이 보이지 않았다. 고기를 넣지 않고 김치와 다른 채소만을 익혀서 만든 속이라면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는 김칫속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 고소한 지방의 맛은 또 무엇이려나? 살코기를 넣기보다는 비계를 위주로 넣으셨으려나, 채소만 넣으셨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묵직하고 고소한 맛이 있다.



만두를 한개 집어먹고 있으니 다들 이 맛있는 김치만두를 놓칠 수 없기에 순식간에 만두가 사라진다. 하지만 주 메뉴로 나온 칼국수의 양이 워낙 많아서 만두를 많이는 먹지 못한다.


"면이 구불구불하고 꼬들꼬들한게, 반죽을 직접 손으로 썰어내신 모양이지?"


"제가 봐도 그럴듯해요, 손으로 투박하게 툭툭 썰면 이렇게 불규칙한 모양이 나오더라구요."



김고로는 칼국수면을 살짝 들어올리며 신촌장칼국수의 면발을 살펴본다. 두텁지만 윤기가 나는, 반질반질한 표면의 면이다. 김고로는 이어서 숟가락을 들어올린다. 주홍빛 호수 위에 올려진 김가루와 깨가루들을 슬슬 휘저어 국물에 섞어 국물의 뜨거운 열에 의해 참기름이 슬슬 추출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국물 한 숟갈.


후룹


입에 넣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훅 들어오면서, 칼칼하고 매콤한 장칼국수 국물 특유의 맛이 혀뿌리를 강하게 친다. 끈적한 질감이 입안에 엉기며 혀를 자극하지만 표면적인 매운맛 아래에는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해물육수의 감칠맛과 진한 깊은 맛이 육수의 맛을 뒷받침한다.



"오우, 국물이 엄청 진해. 육수의 맛이 짙어. 기본기가 확실하다."


김고로는 면을 다시 들어서 한입 쳐올린다.


후루룹


찰랑찰랑거리지 않고 무겁게 아래로 떨어지는 뭉툭한 느낌의 면이지만, 간이 강하고 짙으며 끈적거리는 장칼국수의 국물에 말아먹기에는 최고다. 라면이나 다른 얇은 면처럼 면치기 휘감겨져 올라오는 가벼운 면은 아니다, 오히려 젓가락으로 면을 '퍼서' 혹은 '떠서' 먹는다고 표현함이 옳다. 젓가락을 면을 많이 휘감으면 입안에서 심히 뜨거움으로 몇가닥만을 국물에 적셔 붉게 염색시키고는 다시 올린다.


후루루룩


고추장의 은근한 달콤함과 입안을 관통하는 매운맛, 거기에 혀 위에 겹을 쌓아올리는 진한 감칠맛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입 속에서 자신만의 성을 쌓는다. 이렇게, 한결 한결 장칼국수는 김고로의 입맛을 당긴다. 끈적하고 무거운 국물을 선호하는 김고로는 아니지만, 예외로 두는 음식이 있다면 텁텁하고 무거운 교동식 짬뽕과 장맛으로 달착지근하게 무거운 강원도식 장칼국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자리를 잡고 끈적함의 균형을 잡은 장칼국수는, 일반적인 쌀 등의 곡식을 재배하기 쉽지 않아 저온에서 장기 보존, 숙성하는 장 문화 덕분에 영동지방과 산간지방에서 탄생했는데, 강원도 출신이 아닌 김고로도 이 장맛의 혜택으로 먹을 수 있는 장칼국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해산물을 쉽게 얻지 못한 산간 사람들이 더 맛있는 칼국수 국물을 먹기 위해서 장을 넣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으려나? 추측해보는 김고로.



시뻘건 국물에 두툼한 표고버섯과 면을 살짝 얹어서 먹는다. 표고버섯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수증기로 변해 김고로의 얼굴을 덮는다.


우적우적


쫄깃하게 말캉거리는 표고버섯이 씹히면서 달콤한 버섯향이 코로 올라온다. 면이 탄탄하고 쫀득하게 씹히면서 씹는 식감이 훌륭하다. 쫄깃함의 정도가 다른 식재료 두개가 만나서 달달한 고추장 국물을 입안에 뿌리며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입술을 청소기처럼 모으고 후루룩 장칼국수 흡입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붉은 국물이 얼굴과 옷에 튀고, 뜨겁고 지저분해서 험한 꼴이 날 수 있기에 김고로는 얌전히 양손으로 식사를 한다.


그렇게 먹다가 다시 강렬한 빨간맛의 김치만두로 잇몸과 치아를 기름칠 해주면 시큼한 김치와 고소한 만두속의 맛이 혀를 잠깐 자극한다. 그리고 매콤달콤한 장칼국수 국물 한 수저.


조금 뜨겁지만, 비교적 편안한 감칠맛으로 잠시 놀랐던 미식가의 영혼을 달래준다. 두툼하고 구불거리는 칼국수가 꿋꿋하게 치아 사이에서 밀가루의 응집력을 발휘하며 치아들에 의해서 찢기고 눌릴수록 더 맛있는 면발이 김고로를 즐겁게 한다. 먹으면 먹을수록 쌓이는 눅진한 감칠맛은 덤. 결국 김고로는 장칼국수의 국물까지 거의 다 비웠다.


"아 오랜만에 맛있는 장칼국수였다. 앞으로는 장칼국수 먹으러 여기 와야겠어."


강릉에서 장칼국수를 먹으러 갈 수 있는 훌륭한 식당을 찾았다는 뿌듯함에 김고로는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