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동네 빵집의 주인이 30년 빵돌이 장인이었던 것에 대하여
강릉의 동부 시장은 이전 글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다시피 근처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이 현재의 자리로 이전된 이후에는 잠잠해져 버린 상권이다. 주말에는 꼬막비빔밥을 주 메뉴로 하여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은 식당을 찾는 외지인들과 3, 4차 술집을 찾는 사람들, 평일에는 잠깐 장을 보러 나오시는 어르신들 외에는 유동 인구가 거의 없지만, 김고로는 가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니면 이 주변을 곧잘 지나간다.
그저 오래되어 보이는 주상복합 건물과 식당과 술집들이 즐비한 골목이지만 의외로 프랜차이즈 카페도 있고 개인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빵집도 있다. '임희근과자점'은 상호명 그대로 '임희근' 사장님께서 제빵, 제과류를 판매하는 가게다. 많은 동네 빵집들이 공룡 프랜차이즈들에 밀려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뉴욕'이라던가 '모차르트' 등 외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친숙한 이름의 빵집들이 우리 동네에 한, 두 개쯤은 남아있듯 이곳도 '과자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 어딘가가 푸근해지는 기분.
동부시장 내에 개인이 이름을 내걸고 하는 빵집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던 김고로였으나 갈 일이 없었기에 임희근과자점을 자주 가지는 않았었다. 게다가 김고로는 빵돌이도 아니라서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빵을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해야 할까.
평소에는 시내와 강릉역 오거리를 잇는 그대로에서는 이용해 봤자 소보로빵과 고로케를 먹으러 바로방을 가는 김고로였으나, 임희근과자점을 처음 갔던 그날은, 곧잘 만나는 L형님이 저 동부 시장 쪽에 괜찮은 빵집 있으니 가보자고 하셔서 따라간 날이었다.
작은 찹쌀도너츠 사진을 흰 배경에 박은 정사각형의 간판에 '임희근과자점'이라고 검고 작게 넣은 소박한 글씨. 그 아래 현수막에는 '수제빵 전문점. 찹쌀꽈배기, 찹쌀도너츠'라고 옅은 황토색 배경으로 적힌 것을 보아 동부시장에 주로 다니는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지 않을까 싶었다.
깔끔한 통유리창에 유리와 형광등으로 된 진열장에는 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손님들이 잠깐 먹고 갈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두어 개. 흰 페인트로 칠해진 벽, 가게 안쪽에는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반죽기들과 오븐들이 불투명한 유리창에 형광등 불빛을 반짝인다.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옛날 스타일의 빵들을 좋아하시는 L형님은 고민 없이 꽈배기와 찹쌀도너츠를 고르시고 그걸로 모자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진열장 맨 위 선반에 있던 러스크도 고르셨다. 꽈배기는 일반적으로 파는 설탕 묻힌 꽈배기보다 더 겉에 두드러진 튀김의 모양이 울퉁불퉁 거리고 짙은 갈색빛이 났다. 러스크는 원래 식빵의 남은 테두리를 잘라서 튀겨내는 과자이지만, 여기서는 식빵의 속을 그대로 사용하고 설탕과 마늘조각을 묻힌 모습.
꽈배기는 각자 하나씩 샀으니 여기서 빠르게 먹고 러스크는 나가면서 과자처럼 걸으면서 주워 먹자며 L형님과 함께 가게 잠깐 앉았다. 손으로 집자마자, 손가락 끝으로 이미 느껴지는 거칠고 바스락거리는 감촉이 김고로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바사삭
일반적인 꽈배기는 설탕을 넉넉하게 묻혀 단단한 가루의 식감이나 약간 미끌거리면서 미약하게나마 사각거리는 표면이 특징인데, 꽈배기의 표면 자체를 대놓고 울퉁불퉁하고 거칠게 만든 식감은 이전에는 먹어본 일이 없는 두배로 더 바삭한 꽈배기였다, 갓 튀겨 나온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 거기에 속살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뻑뻑하거나 텁텁하지 않고 쫄깃하고 푹신푹신했다.
'찹쌀꽈배기'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튀겨 나온 지 시간이 지나서 설탕은 다 녹아내리고 치아와 저작근이 뻐근하도록 단단한 반죽의 꽈배기들도 판매되는 이름은 '찹쌀꽈배기'였음을 생각해 보면 사장님의 꽈배기 솜씨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꽈배기 잘 튀기는 집' 외에 이렇게 꽈배기로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없는 김고로였다. 마치, 일반 시장핫도그만 먹다가 감자핫도그를 처음 먹은 그 기분.
꽈배기가 입안에서 거칠고 터프한 소리를 내며 씹히고 하얀 살결이 길고 보드랍게 찢어진다. 가능하면 하나 더 먹고 싶지만 간식이니까 참아야지. L형님과 거리로 나온 김고로는 러스크 봉투를 열어 임희근과자점의 간판처럼 네모로 썰린 얇은 러스크를 씹는다.
사각사각
식빵의 가장자리와 속을 함께 씹으니 단단하고 매끈한 빵에서 달콤한 기름에 새어 나와 혀 위로 흐른다. 달달한 설탕의 맛에 다진 마늘의 풍미가 끼얹어지며, 튀긴 식빵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 섞여 달콤하면서 알싸하고 진한 러스크가 김고로의 입맛을 휘어잡는다.
'러스크가 이렇게 맛있다고?'
달콤한 마늘맛, 어느 한국인이 이 맛을 싫어할까? 설탕의 달달함과 쫄깃하게 혀를 자극하는 다른 결의 달콤한 마늘, 치킨집에서도 마늘간장맛이 아직까지도 인기 메뉴 중에 하나인 이유가 있다. 기름에 튀겨진 매끈한 식빵 속살이 과자처럼 부서지는 식빵 테두리의 식감과 섞이며 혀 위에서 고소하게 찰랑거리니 어느 유명한 새우 과자 먹듯이 계속 손이 간다.
기름에 튀겨낸 빵이라 느끼함이 없을 수는 없기에, L형님께서는 결국에는 김고로에게 다 먹으라며 주셔서 김고로가 끝까지 다 먹었다. 그리고 김고로는 마늘맛과 단맛이 묻어 나오는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으며 후식(?)까지 즐겼다.
그날 이후, 강릉에 김고로보다 더 오래 거주했던 이쁜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이전에는 매장의 양쪽을 가득 채울 정도로 제품 종류가 더 많고 다양했다는데, 아무래도 점차 고객들의 수가 이전보다는 줄어들다 보니 가게도 메뉴 수에 변화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제품 중에서 김고로가 가장 반갑게 여긴 것은 중국식 호떡이라고 부르는 크고 얇은 '공갈빵'이다. 가볍고 커다란 몸집에 얇고 달콤한 벽, 과자처럼 바삭한 식감. 청각장애인 분들이 트럭에서 판매하시는 얇은 형태의 건호떡도 맛이 좋지만, 김고로가 어릴 적 동네 가판대나 빵집에서 먹던 형태는 가볍고 '빵빵한' 모양이었으니까. 김고로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 먹던 공갈빵은 흑설탕으로 단맛을 내었으나, 임희근과자점의 달콤함은 흑설탕이 아닌 황설탕으로 보여서 옛 추억은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사장님의 해석대로 만들어진 공갈빵도 맛이 좋았다.
김고로는 임희근과자점에 오가며 사장님과도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80년대부터 같은 자리에 제과점이 있어왔고, 현재 계신 '임희근' 사장님께서는 지금의 자리를 이어받아 장사를 해오신지 올해로 15년이 되셨다고 했다. 사장님 개인적으로는 30년 동안 제과제빵을 해오신 장인 '빵돌이'셨다. 어쩐지 모든 빵들의 기본기가 탄탄하고 완성도가 높았다.
김고로가 조금 찾아보니, 딱히 홍보를 따로 하지 않는 오래된 동네 빵집이라 아는 사람들만 오는 집이지만, 배달앱에도 등록을 하셔서 잠재 고객을 늘리시는 노력도 하시고, 방문하는 손님들의 평가도 소수의 제품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여러 제품들에 대한 폭넓은 긍정적인 평가들이 남아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전통과 맛은 지키되,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려고 하시는 모습이 김고로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임희근' 사장님의 '과자점'이 오랫동안 영업하기를 기원하며, 김고로는 오늘도 임희근과자점에서 빵을 사서 이쁜 그녀와 점심으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