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강릉사천호떡, 강릉

대파와 통후추를 그대에게, 사천 대파호떡맨의 다정한 안부인사

by김고로

"사천에 호떡집 맛있는 곳이 있어서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맛있더라. 나중에 나랑 같이 가자."


사천에 맛있는 호떡집이 있다는 이쁜 그녀의 말에 김고로는 큰 반응이 없이 시큰둥했다. 강릉에도 널리고 널린 집이 호떡집이다. 김고로가 아는 호떡집만 해도 서너 개, 물론 다들 그리 특출 난 호떡집들은 아니고 무난한 집들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맛있는 호떡이라 할지라도, 굳이 강릉에서 주문진을 가는 길목에 있는 사천면까지, 굳이 호떡을, 그것도 버스를 타고 먹으러 가야 하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에게, 사천면에 맛있는 호떡집이 있다는 소식은 김고로의 식욕을 돋우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호떡집? 사천에? 정확히 어딘데?"


"사천중학교 앞에 체육공원 있잖아. 거기에 있어."


"흐음... 그래..."


김고로는 호떡을 먹으러 사천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깟 호떡, 시장 가서 먹으면 되는 건데.'라는 귀찮음이 물씬 들어버린 생각.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얼마나 맛있길래 이 사람이 사천까지 가서 먹어보자고 하는 거지, 내 입맛을 모르지 않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어느 구름이 많이 낀, 먹구름이 꾸물거리는 한가로운 일요일. 주말에 밖에 나가기를 즐기는 김고로는 이쁜 그녀가 언급했던 그 사천에 있는 호떡집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 맛이 얼마나 김고로의 취향이냐를 떠나서, 입맛에 맞는지 안 맞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은 그였다.


"사천 호떡집 가보자. 버스 타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까."


"좋아, 같이 가고 싶었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계획하면서 소비하는 김고로에게도, 가끔은 갑자기 어딘가에 가고 싶다거나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특정한 음식에 대한 구미가 김고로를 충동질할 때면 그는 대략적으로 머리에 시간 계획을 꾸려서 움직인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버스정류장에서 주문진행 버스를 타고 사천으로 향했다. 모래내행복센터가 있는 정류장에서 내려 사천중학교가 있는 곳으로 걸었다. 사천체육공원 앞의 광활한 개활지, 큰 주차장이 있고 축구장이 있다. 마침 지역 축구팀들의 경기가 있는지 생각보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경기를 응원하고 있었고,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처럼 보이는 가판대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먹는 모습이 김고로의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붉은, 혹은 검은 두건을 깔끔하게 둘러쓰고 검은색의 셔츠와 바치, 앞치마 등을 맞춰 입은 세명의 건장한 호떡맨 트리오가 바쁘게 주문을 받고 호떡을 굽고 음식을 내어주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게 앞으로 가보니 메뉴는 꿀호떡, 대파호떡, 어묵과 잔치국수 등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와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하얀 새시로 미닫이 문을 만든 오른쪽의 가게 입구 혹은 창고는 노란색 시트지로 장식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노란 바탕에 굵은 검은 글씨로 '강릉사천호떡'이 적힌 간판이 가게의 명함이었다. 겉은 원목무늬의 벽과 고전적인 장식의 3개가 넓은 삼각형을 그리는 위치에 자리 잡고, 붉은색의 창틀 너머로 어묵통과 어묵꼬지들, 지글지글 구워지는 호떡들. 어묵통 너머로는 미리 주문을 넣은 손님들에게 알림을 주기 위한 호출벨 기기가 열을 맞춰 앉았다.



"어서옵쇼!"


빨간색 두건을 쓰시고 말랐지만 몸이 탄탄하고 다부진 체격의 사장님이 높은 톤의 목소리로 우리를 반긴다. 이 '사천강릉호떡'의 대장님이라는 티가 단번에 드러난다.


"우선 꿀호떡이랑 대파호떡을 하나씩 먹자."


"좋아. 나는 어묵도 먹을래."


이미 앞에 호떡 다량의 호떡 주문이 밀려 있어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주문한 호떡이 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고, 그 사이에 이쁜 그녀는 어묵꼬치를 잡아서 밀가루와 생선살로 만든 간식을 탐미했다.


김고로도 어묵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묵 국물은 간이 짭짤하고 간간한 편이 많아 처음 먹어보는 호떡을 먹기 전에 입과 혀에 영향을 미칠까 봐 김고로는 먹지 않았다.


강릉사천호떡집이 올라서 있는 나무데크와 나무계단에서 그 앞에 펴있는 목련과 축구장에서 간간이 들리는 함성소리를 들으며 서 있으니 이 집의 호떡을 먹으려고 사람들이 차를 몰고 오고, 전화를 해서 미리 예약을 해서 호떡을 대량으로 사가는 여러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을 보니 곧 먹을 수 있을 호떡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올라갔다.


"호떡 나왔습니다, 꿀호떡부터 드릴게요."



여느 호떡 노상에서 볼 수 있듯이 종이컵에 반달 모양으로 슬쩍 접힌 꿀호떡이 나왔다. 신기하게도 호떡 중간에 이쑤시개가 같이 꽂혀 나왔는데, 강릉사천호떡집의 호떡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안내문에는 대략적으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꿀이 많이 뜨겁고 옷에 묻을 수 있으니 머리는 앞으로 내밀고 허리와 엉덩이는 뒤로 쭉 뺀 그 자세로 조심히 드세요. 같이 드린 이쑤시개는 호떡을 다 드시고 나서 컵 밑바닥에 흘러서 쌓인 꿀을 긁어드실 때 쓰시면 됩니다.]


어느 호떡집을 가봐도 이렇게 손님을 생각하여 친절하게 쓴 안내문은 본 적이 없었던 김고로는 상당히 배려심 넘치는 주인장이라고 생각하며 꿀호떡을 물었다.


바삭


버터나 마가린을 녹여서 나온 기름에 튀기듯 구운 호떡은 아니다, 철판에서 식용유만을 사용해서 눌러 구운 호떡이지만 기름에 튀기고 철판에 바싹 구운 듯 느끼함이 거의 없는 바삭한 호떡이다. 평범한 꿀호떡이지만 김고로의 눈이 크게 떠진다.


"오? 기름만 쓰셨는데 이렇게 바짝 구운 느낌이라고?"


흑설탕, 참깨, 흑깨와 땅콩이 들어간 평범한 조합이지만 이미 반죽의 품질부터 평범하지 않다. 꿀처럼 달콤한 설탕물과 견과류가 고소하면서 달달하게 김고로의 침샘을 자극하며 전채요리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로만 듣던 대파호떡이 나온다.


중국에서 먹던 대파나 쪽파, 부추를 잘게 썰어서 얇게 부쳐먹던 중국의 남방식 전병이 생각이 나는 모습이다. 호떡의 모양에 꿀은 없지만 잘게 다져진 파가 푸릇푸릇하거나 투명하게 호떡 반죽을 빈틈없이 채우고 그 사이사이에 굵고 검은 점인 통후추 조각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호떡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에서 달콤하면서 향긋한 대파 특유의 맛이 김고로의 코를 간지럽힌다.



바사삭


뜨거운 기름에 완전히 익은 대파이기에 당연히 사각거리는 식감은 없다, 하지만 끝까지 익은 대파는 그 자체만으로 달기에 설탕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혀 위에 단맛을 뿌린다. 하지만 설탕과 같은 단맛이라는 뜻은 아니다, 대파는 대파만의 단맛이 있다, 양파가 양파의 단맛이 있듯이. 매콤함이 막장 드라마가 가끔 달달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질 때가 있듯이 대파의 달콤함은 매운맛은 날아가고 한껏 누그러진 기운의 단맛이다. 그러면서도 뒤끝을 보여주듯 무언가 은근히 알싸하게 코를 감싸는 대파.


와작


대파 폭풍은 지나가는 도중에 잊지 않고 통후추 우박을 뿌리고 간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팍 하고 후추의 매콤함이 폭탄처럼 터지며 가루가 되어 혀 위에 흩날린다. 이내 후추의 향긋한 매캐함이 대파의 단맛과 어우러지고, 그 위를 호떡 반죽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기름과 반죽이 덮으며 입안은 다시 '쾌청'한 기운을 되찾는다.


"와, 압도적인 맛이네. 첫 입부터 달콤하고 향긋한 대파의 향기와 매콤한 후추가 입과 코를 압도하는구나."



김고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파호떡을 한입 더 베어문다. 그리고는,


"사장님, 호떡 맛이 압도적입니다. 대파호떡 만원 어치 주세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손님의 큰 칭찬에 사장님께서는 거의 90도가 될 만큼 허리를 굽히시며 감사를 표하셨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사람들이 계속 와서는 호떡을 포장해 가고 입에 물고 가는 바쁜 시간이 이어졌다. 김고로는 사장님께 이런저런 칭찬과 다른 지방에 있던 호떡집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장님은 현재 판매하시고 있는 대파호떡에 대한 이야기도, 감사히 나눠주셨다.


"사실 대파호떡은 자극적이게 단맛인 꿀호떡 대신에, 나이가 좀 있는 어르신들을 목표로 해서 심심하고 담백하게 만든 음식인데 오히려 비교적 젊은 층이 더 좋아하시고 어르신들은 달달한 꿀호떡만 드시더라고요. 하하하하..."


"재미있네요. 아마도 대파호떡이 조금 더 독특하고 고소한 감칠맛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데요, 이렇게 가열했을 때 단맛이 나는 채소는 대파 말고도 많은데, 왜 굳이 대파였나요?"


"음.... 그건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네요."


사장님은 선 자세에서 잠시 손으로 턱을 괴며 입술을 앙 다무시고 고민하시더니 말을 이어가셨다.


"제가 이 대파호떡을 처음 시작한 게 2024년 3월? 4월? 그쯤이에요. 조금 더 독특한 호떡을 만들어보고자 온갖 채소들을 다 넣어서 구워봤거든요. 사실, 대파 말고 쪽파를 써도 정말 맛있는데 쪽파는..."


"그렇죠, 대파보다 훨씬 비싸죠?"


"네, 맞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보편적인 대파를 사용했어요. 구우면 엄청 달고 맛있는 데다 냄새도 좋으니까요. 그런데 그 이후에, 당시 그렇게 저렴했던 대파 가격이 폭등해 버리는 '대파 사건'이 있어서 잠시 힘들기도 했고요."


"아, 당시에 대파값이 미쳐 날뛰었어요."


"그랬죠. 거기다가 그때 어느 정당이 그 여파로 지방선거에서 불이익을 보기도 했어서 이 동네 어르신들이 제게 와서 '니가 대파호떡 파는 바람에 졌다'라고 하시는 둥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뭐라고 하시고 그랬어서 억울하기도 했죠. 아니, 나도 대파 가격 폭등하는 것 싫고 대파호떡 연구하느라 너무 많이 먹어서 잘 안 먹는데, 어휴."


김고로는 사장님과의 대화를 두런두런 나누며 잠시 주문한 대파호떡을 기다렸다. 그리고 주문했던 대파호떡 만원 어치가 나오자 또 뵙겠다고 인사를 드리며 다시 강릉 시내로 가는 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내 대파호떡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천체육공원 근처 정자에 앉아서 호떡 서너 개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김고로.


대파와 통후추의 맛을 머금은 호떡과 기름의 감칠맛, 통후추의 강렬한 매콤함, 대파조각들의 단맛이 다시 그의 멱살을 잡고 당기니 김고로가 당할 수가 있을쏘냐. 김고로는 사천체육공원에 다시 와야만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음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