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한 스포 있음
영웅의 귀환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놀란이 재해석한 <오디세이>는 영웅의 장대한 모험기가 아니므로. 그가 하려는 건 오히려 영웅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놀란은 두 가지를 통해 이 작업을 완수한다. 하나는 패자의 이야기를 담는 것. '트로이'라는 문명이 함락되며 어떠한 가치가 무너졌나. 얼마나 많은 병사와 시민이 죽음 속에 던져졌나.
다른 하나는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헬레네(루피타 뇽오)는 아름다움과 무관한 캐릭터다. 그녀가 드러내는 건 아름다움/추함의 구분을 벗어난 희생자의 얼굴이다. 그녀의 흉 진 안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무성의한 손길은 헬레네에 관한 소문이 의미 없다고 속삭인다.
헬레네는 말한다. 나의 '이름'으로 이뤄진 희생들에 사과한다고. 그녀의 이름은 아가멤논(베니 샤프디)의 탐욕을 가리기 위한 명분으로 전쟁터에 끌려와 오명으로 남았다.
페넬로페(앤 해서웨이)는 왕을 잃은 왕비이지만 무력하지 않다. 영화는 그녀가 20년 간 빈 왕좌를 지켜냈다고 강조한다. <오디세이>는 전쟁이 구분지은 남녀의 경계를 흩트러트린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여는 얼굴이 엘리엇 페이지(성전환한 배우, 시논 역할)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놀란이 해체하려는 영웅 신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가멤논'이다. 영화는 전쟁에 이기기 위해 딸을 희생시킨 그를 괴물이라 못 박는다. 가정은 전쟁터와 대비되는 공간이다. 전쟁터는 힘이, 가정은 신뢰가(제우스의 법) 지배한다. 전자에서 승리하고도 후자에서 패배한 그는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에게 전철을 밟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왕좌가 아니라 남편의 자리를 향한다. 그는 자기 나라에 도착해서도, 아들이 알아본 뒤에도 스스로를 왕이 아닌 '비는 사람(beggar)'이라 칭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모든 구혼자를 물리친 후에야 완결된다. 그가 남편의 자격을 되찾은 이후에야. 그가 빈 왕좌에 앉는 대신 페넬로페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하지만 그의 여정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속죄의 의식이다. 그가 버려야 했던 병사들. 그의 부하들이 강간하고 약탈하고 죽인 사람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이 제우스의 법을 악용했다고 비난한다. 선의를 베푸는 그들의 집을 차지하고 돼지처럼 먹고 마셨다고. 이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키르케(서맨사 모턴)의 집에서 한 짓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 자신에 대한 깨달음은 결국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에 관한 소문으로 귀결된다.
여신 칼립소(샤를리즈 테론)가 그에게 끊임없이 요청한 것은 '기억해 내라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그가 저지른 과오를 하나하나 되살려 그 앞에 벌거벗은 채로 서는 일이다. 속죄를 구하며 운명 앞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 구걸하는 사람(beggar)이 되는 것.
결국 모든 깨달음 끝에 오디세우스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이다. 해가 지는 서쪽. 그곳에서 오디세우스가 무얼 할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결국 놀란이 <오디세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가 <오펜하이머>에서 했던 것과 같다. 위대한 승전의 기록 뒤에 남겨진 흔들리고 초라한 인간을 지켜보는 일. 피와 살육의 역사를 회상하며 신의(제우스의 법)를 스크린에 다시 새기는 일. 익숙하지만 결코 쉽게 지켜지지 않는 그 약속을 품은 이번 영화는 장엄하고 유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