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협의회에서 발행하는 '로스쿨타임즈' 오피니언 란의 필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의 기고는 영화 버전의 MBTI, 영화를 즐기는 수많은 유형 중 하나, 문제풀이형 관객에 대해서 썼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의 반응은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그중 재미있는 유형이 하나 있다. 영화를 '문제풀이' 식으로 접근하는 타입이다. 이들은 특히 비극에 잘 반응하는데, 눈을 반짝이며 주인공의 실수를 분석한다. 그리고 어떻게 했어야 불행한 결말을 막을 수 있었을지 분석하며 감상을 마무리한다.
최근 개봉한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빌 어윈)의 동굴에서 간신히 탈출한다. 하지만 그 직후, 화를 참지 못하고 폴리페모스에게 해코지를 하여 그의 아버지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다(원작에 등장하는 내용이라 스포일링이 아니라고 판단해 인용함). 이 사건은 그의 귀향길을 험난하게 만드는 큰 계기가 된다.
다른 사례로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이병헌)는 실직 이후 경제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에 빠져든다. 이 영화는 그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를 따라간다.
두 가지 사례 모두에서 나는 문제풀이 도사들의 활약을 보았다. 오디세우스는 화를 참고 조용히 동굴을 떠났으면 될 일이고, 만수는 집도 팔도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으면 끝날 일이다. 충분히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데, 굳이 어리석게 행동하여 인생을 수렁에 빠트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이런 감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주인공의 고난에 감정이입하고, 그들의 역경에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마치 내 일처럼 후회를 하며 "그때 좀 다르게 행동하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주가 되면, 영화는 '위기탈출 넘버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위기에 알맞게 대응하지 못한 바보들의 헛소동일 뿐. 10분이면 끝날 에피소드를 2시간으로 늘리다니 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가.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째서 자꾸 잘못된 선택을 하는가? 답이 뻔히 보이는 선택을. 그건 우리 복장을 터뜨리기 위함도 아니고, 이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한때 '인생 2회차(인생을 다시 사는 것처럼 능숙하고 똑똑하게 행동한다는 뜻)'라는 말이 유행했다. 역설적으로 인생은 모두 1회차일 수밖에 없고, 우리는 뻔한 답을 두고도 굳이 오답을 선택한다. 우리는 어리고 어리석고 욕망하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어서, 사랑을 얻고 싶어서,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가망 없는 길을 걷는다. 누구나 이런 순간을 관통한다. 오류로 범벅된 삶의 장면들은 지나고 보면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로봇이 아니라 복잡하고 신비로운 인간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영화가 그렇듯 우리 인생도 풀 수 없다. 언제 옳고 틀렸는지 알 수 없고, 점수를 매길 수도 없다. 그저 살아낼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제각각 흘러가는 찬란한 1회차 인생을 지켜보기 위하여 영화관에 간다. 그러므로 영화도, 인생도 시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풀이형 관객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상 가장 큰 논쟁이 있다. <타이타닉>의 '문 논쟁(Door debate)'을 아는가? 마지막 장면에서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로즈(케이트 윈슬렛)를 나무 문짝 위에 안전하게 올려놓은 뒤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로즈 옆에 자리가 좀 남는다는 걸 감지한 팬들이, 둘이 바짝 붙어 누웠다면 같이 살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둘 다 살 수 있었네! 어째서 로즈 혼자 널널하게 누워서 잭을 떠나보낸 거지?
이 논쟁은 끊임없이 떠돌다가 마침내 제임스 카메론에게 닿았다. 그는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독약을 안 마셨을까요? 당연하죠! 하지만 그건 포인트를 놓치는 일이에요.
카메론의 말대로다. 우리가 만일 잭의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에 몰두한다면 우린 이 아름다운 장면의 포인트를 놓치고 만다. 그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소중한 인연, 끝내 이뤄지지 않아 영원에 닿은 사랑이다. 카메론이 테트리스를 못 해서 이런 결말을 낸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2023년 2월, 카메론은 <타이타닉> 25주년 기념 재상영에 맞춰 논쟁을 재현하는 실험을 했다(얼마나 분했으면…). 잭·로즈와 같은 체질량의 스턴트맨 두 명, 저체온증 전문가가 참여했고 법의학 분석도 시행됐다. 이 괴상하고 흥미로운 실험의 결과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영화를 향한 문제풀이는 재밌다는 것. 그것이 다른 감상을 압도하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비록 카메론은 진절머리를 치겠지만 솔직히 무슨 상관인가! 영화에 즐겁게 머무는 방법은 다양하고, 당신은 그 모두를 누릴 자격이 있다.
원문 : https://www.lawschoo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