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봉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성장기'의 혼란과 공포를 키워드로 삼아 작품의 서사와 정서를 조직하고, 거기 맞춰 빌런 캐릭터와 액션까지 일관성 있게 밀어붙인다. 동시에 스파이더맨을 성장시키며 <어벤져스: 둠스데이>로의 포문을 연다. 한 마디로 베테랑들의 작품. 우리가 마블에서 바라던 그 맛이다. 이 영화가 성장기를 어떻게 다루는 지에 관해 'PD저널'에 기고했다. 익숙한 소재이지만 좀 다르게 느껴진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정작 서른이 됐을 때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노래에 마음 편히 취할 수 있었다. 그의 창법도 약간 따라 해 보면서. 그런 때는 과거를 떠나보내는 멋진 어른 여자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가사의 무서움을. 여기에는 인생이 상실의 연속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진리가 배어있다. 그래서 도리어 취하기가 힘든 것이다. 마음이 서늘해서.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에서조차 이별을 감지하는 이 노래의 화자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잃어 본 사람만이 아까움을 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 파커(톰 홀랜드)도 같은 열병을 앓고 있다.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던 여인 MJ(젠데이아)와 친구 네드(제이콥 배덜런)는 더 이상 피터를 기억하지 못한다. 스파이더맨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위험해질까 봐 기억을 지운 것이다. 그들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피터는 외로움을 견디기 어렵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피터 파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큰 힘에는 큰 바카라임이 필요해. 너는 사랑했던 것들을 잃게 되겠지. 그때가 온다면 어떻게 할래? 해사한 얼굴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우리 앞에 등장한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이제 앳된 티를 벗고 완연한 영웅으로 향하는 길목에 섰다. 그 길은 험난할 터다.
또한 이건 혹독한 상실과 성장을 반복해야 하는 우리 삶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물론 익숙한 소재다. 하지만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이 시기만의 혼란과 공포를 포착하고 마블의 색으로 묵직하게 엮어내며 시리즈를 훌륭하게 갱신한다. 거기에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넌지시 숨겨둔 답도 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까.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에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특유의 발랄함과 쾌활함이 여전하다. 하지만 초반부터 반복되는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혼란'이다. 갑자기 거미 호르몬이 치솟아서 힘이 주체가 안 되는 피터는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이 모습은 어른이 되기 전 호르몬의 격동을 경험하는 사춘기와 겹친다.
혼란을 부르는 것은 '상실'의 경험이다. 피터는 옛 기억을 잃은 MJ가 다른 남자 친구와 다정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본다. 그녀가 더 이상 나의 연인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 이후 거미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피터는 건물에 매달린 누에고치 안에서 잠을 깬다. 이걸 찢고 나오는 연출은 '새로운 탄생'을 아름답게 은유한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건물 아래로 추락하고, 절뚝대며 집에 돌아온다. 이 장면은 결말의 중요한 장면과 연결된다.
혼란은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시그널이다. 익숙했던 세계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던져질 때 인간은 패닉한다. 하지만 이 혼란은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진 그레이(세이디 싱크)도 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 순간 엄청난 힘을 얻는다. 성장은 이토록 치열하고 잔인한 것인가.
성장한다는 것. 과거의 나를 부수고, 새로운 나를 얻는 일은 기본적으로 두렵다. 변태 후의 내가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괴물이 돼버리면 어떡하나. 영화에는 그런 공포가 장르적으로 연출돼 있다. 호르몬이 요동치는 피터도, 몸속에 헐크를 품고 사는 배너(마크 버팔로)도 통제력을 잃고 괴물같이 변할까봐 두려워한다. 그 공포를 극대화한 인물이 진 그레이다. 남의 몸에 빙의하여 제 맘대로 움직이는 그녀는 통제력 상실의 공포를 표상하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피터가 진과 친구가 되는 것은 그런 두려움과 동행하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힌다.
자신의 변화를 대하는 피터의 첫 번째 선택은 '통제하기'다. 그는 몸에 억제기를 부착한다. 이것은 피터가 초반에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조직을 도운 것과 연결된다. 피터는 이곳이 슬롯의 위험을 관리한다고 생각해 협조하다가, 이후 별종을 잡아들여 이용하는 곳임을 깨닫고 쳐들어간다. 변화를 억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개인과 슬롯 모두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영화가 넌지시 건네는 답은 '몸을 던지는 일'이다. 눈을 꼭 감고 혼란 속으로 뛰어드는 일. 유독 이 영화의 중요한 국면에서, 인물들은 자꾸 몸을 던진다. 스파이더맨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몸을 던져 진을 구한다. 헐크로 변한 배너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 꼭대기에서 기꺼이 낙하한다. 그리고 초반에 언급한 장면. 누에고치에서 탈출하던 피터는 그답지 않게 아래로 떨어진다. 그의 성장은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화한다. 결국 격변하는 시기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온몸을 내던지는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영화는 읊조린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곁에는 이웃이 있으니까. 헐크 속의 배너를 깨우는 것도, 진의 아픔을 도닥이는 것도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다. 외로웠던 피터도 새 친구를 얻는다. 그들은 폐허 위에서 아파하는 우리를 일으켜 새로운 세계를 재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관계 안에서 지독한 아픔은 비로소 성장통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피터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는 데 성공한다. 변화에 베인 상처는 이제 자랑스러운 흉터가 될 것이다. 그 과정 끝에 영화가 보여주는 건, 피터를 기억해 낸 네드다. 잃은 줄 알았던 시절은 때로 반가운 얼굴로 홀연히 돌아온다. 이 재회는 최선을 다해서 변화를 겪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 이별하는 일도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과 때때로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니. 저 노래의 화자도 알고 있었을까. 이별과 탄생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상실한 이들을 응원하며 오래된 진실에 안착한다.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54